[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l 사진 서범세 기자 ]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여기, 글씨의 마법을 믿는 사람이 있다. 글씨에는 뇌의 흔적이 들어 있어 그 사람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황당무계한 주장이 국내 최고 필적 전문가 입에서 나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공부 잘하는 글씨, 일 잘하는 글씨, 합격하는 글씨, 존경받는 글씨, 큰 부자가 되는 글씨, 리더가 되는 글씨, 신뢰를 얻는 글씨가 따로 있다면 당신은 글씨체를 바꿀 의향이 있는가.

국내 최고 필적 전문가로 알려진 구본진 법무법인 로플렉스 대표는 사람의 내면을 바꾸는 방법 중에서 글씨 연습만 한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 쉬우며, 정밀한데 인생을 바꿀 만한 효과가 확인됐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단순 이론이 아니다. 오랜 시간 그가 지켜본 결과물이다.

구 대표는 20년 넘게 검사로 일하면서 살인범, 조직폭력배들의 글씨에서 특이점을 발견하고, 글씨와 사람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친필을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그 수만 무려 850점에 달한다. 필체가 의미하는 것을 찾아 필적학을 심도 있게 연구한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글씨체에는 성격, 성장 과정, 취향, 질병, 빈부가 집약돼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써 글씨는 끝났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격 수양으로써의 글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special] 구본진 법무법인 로플렉스 대표 “글씨, 소통이 아닌 수양의 도구”


신간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를 내셨는데, 어떤 배경에서 나온 책인가요.


“글씨 분석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이 책은 지난 2008년부터 기획했는데, 글씨체를 바꾸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오늘날 흔히 글씨 쓰는 것을 ‘서예’라고 생각하는데 ‘글씨=서예’가 되면서 마치 글씨가 예술이고, 멋있게, 보기 좋게 쓰는 것만이 글씨를 잘 쓰는 것으로 치부됐어요. 그렇지 않은 글씨들이 날아간 것이죠. 글씨는 소통의 수단으로 시작했지만, 수많은 선인들이 글씨를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는 소통보다 인격 수양의 수단으로써, 내면을 바꾸기 위한 수단으로써 활용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서예라고 칭하면서 글씨를 멋있게 쓰는 것 이외에는 글씨 연습이 필요 없는 세상이 돼 버렸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이르면서 소통의 수단으로써 글씨는 거의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내면을 바꾸는 수단으로 글씨만 한 게 없습니다. 이 점을 알리고 싶었어요.”

글씨가 인격 수양으로써의 수단이 된다는 말씀인가요.

“인격 수양을 위한 방법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종교, 참선, 운동, 독서 등 많은 것들을 말하지만 사실 내면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습니다. 추상적이고 모호할 뿐이죠. 글씨는 간명합니다. ‘돈을 많이 벌려면 이런 글씨를 써라’, ‘공부를 잘하려면 이런 글씨를 써라’ 이렇게 구체적으로 방법을 전달할 수 있지요. 사람의 내면을 바꾸는 방법 중에서 글씨 연습만 한 것은 없습니다.”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어떠한 원리일까요.

“원하는 인간상을 설정하고, 거기에 맞는 글씨체로 바꾸어 가는 과정은 글씨를 수양의 도구로 삼아 자기 자신을 발전시킵니다. 예를 들어 과잉행동장애(ADHD)를 지닌 사람의 경우 글씨 쓰기를 통해 장애를 극복해 효과를 봅니다. 저는 이 사례를 보다 구체화·세분화시키고 싶습니다. 첫째 방법은 자신이 모델로 삼는 사람의 필체를 흉내 내는 방법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가 쓴 글씨를 본뜹니다. 이때 비교군이 확실해야 하는데 정말 누구나 인정할 만한 롤 모델이어야 효과가 더 좋습니다. 둘째 방법은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필적의 특징을 부분적으로 바꿔 나가는 방식입니다. 글씨 크기, 둥글기, 필체의 압력(필압) 정도, 방향, 간격, 속도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을 찾아가면 됩니다.”

[special] 구본진 법무법인 로플렉스 대표 “글씨, 소통이 아닌 수양의 도구”

(사진=쌤앤파커스 제공) 고 정주영 회장의 글씨 ‘마음을’, ‘당신을’, ‘총명하게’, ‘만들’에서 특징이 잘 드러나므로 이 부분을 따라 쓰면 좋다.

예를 들면요.

“먼저 글씨 크기를 생각해 봅시다. 큰 글씨는 열정, 열광, 격정, 성취 욕구가 강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진취적이고 자존심이 강하고 표현 욕구도 강한 편입니다. 밝고 거리낌 없이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고 행동할 수 있는 리더나 연예인, 정치인 중에 큰 글씨를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글씨가 대표적입니다. 반면 글씨가 작은 사람은 파격적이거나 무모한 행동을 싫어하고 무리하지 않으며 소극적이고 얌전한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글씨를 쓰는 직군으로는 과학자나 발명가, 편집자, 엔지니어, 수학자 등이 많은데, 일반적으로는 나이가 들면서 사려 깊어지고 조심스럽게 되고 행동이나 사고에 제약을 받으면서 글씨가 작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씨의 방향도 매우 중요합니다.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글씨와 내려가는 글씨가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글씨의 기울기는 대개 기분, 마음가짐, 감정을 나타냅니다. 기초선이 오른쪽으로 가파르게 올라가는 경우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행동파가 많은데 마이클 잭슨과 타이거 우즈의 글씨체를 한 번 보십시오. 이보다 더 극적인 예시가 바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필체입니다.”

[special] 구본진 법무법인 로플렉스 대표 “글씨, 소통이 아닌 수양의 도구”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글씨. 도전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성향이 녹아 있는 우상향 글씨체

부자의 글씨체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구 필적학자는 중앙일보 ‘홍병기의 CEO탐구’에서 CEO 다수의 글씨체를 분석한 이력이 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부자의 특징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부자들은 대개 일을 잘하고, 인내심이 뛰어나며, 적극적이고 진취적입니다. 절약정신도 투철하고요. 보통 큰 부자가 되는 사람들은 고집도 있지만 융통성도 있습니다. 매우 각진 글씨를 쓰는 사람은 강직하지만 완고해서 융통성이 없고, 글씨에 모가 나지 않고 마무리가 약한 사람 역시 융통성은 있지만 계획성과 끈기가 부족해 번 돈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고 이병철 회장의 서명을 보면 글씨에 힘이 있고 마무리 부분이 확실하게 돼 있습니다. ‘미음(ㅁ)’의 오른쪽 윗부분은 둥글게 하고, 오른쪽 아랫부분은 닫는 것을 유념해서 보세요. 고 정주영 창업주의 글씨도 이와 유사합니다. 또한 글자 간격이 좁은 것도 특징입니다. 이병철, 정주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석유 재벌 록펠러 역시 글자 간격이 좁은데 이는 적극적이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모음을 길게 쓰거나 글자의 끝부분을 꺾어 쓰는 것도 성공한 사람들이 주로 쓰는 서체입니다. 부자가 되려면 일을 정확하게 처리하며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특징이 반영된 것이지요. 부자가 되고 싶다면 고 정주영 회장의 글씨를 따라 쓰기를 추천합니다.”

공부를 잘하고 싶다면 어떤 글씨체가 필요한가요.

“작은 글씨는 빠른 머리 회전, 집중력, 논리력 등 정밀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특성입니다.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토머스 제퍼슨, 아인슈타인 등의 글씨를 보면 작고 균일합니다. 글씨 크기는 한글 기준으로 높이 8mm 이하여야 하는데, 이 역시 작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크기, 기울기, 방향 등이 일정하면 논리적이고 충동성이 적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글씨도 대표적입니다. 글씨마다 같은 간격을 유지하는데, 재주가 있고 논리적이며 균형 감각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간혹 모차르트나 톨스토이 같은 천재들의 글씨는 알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머리가 너무 좋아서 글씨 속도가 빠르고, 비범한 생각을 하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해서 나쁜 글씨는 아닙니다.”

이런 글씨체를 익혀야 한다면, 피해야 하는 글씨체도 있을까요.

“어떤 글씨체든 나름대로 장단점을 지니지만, 성공하고 싶다면 이런 글씨는 피하는 게 좋습니다. 지나치게 불규칙하거나 알아보기 힘든 글씨, 행 간격이 지나치게 좁은 글씨, 오른쪽 아래로 기울어지는 글씨입니다. 이런 글씨체는 대개 범죄자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글씨체이기 때문에 지양하는 것이 좋습니다. 천재들의 글씨 또한 알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있지만 이 역시 정밀하게 비교해 보면 범죄자나 무능한 사람들의 글씨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특히 우하향하는 글씨체는 알코올 중독자나 우울증이 깊은 사람들이 가진 글씨체이기도 합니다. 독재자 히틀러, 러시아의 라스푸틴 등의 서체가 우하향하는 서체였습니다.”

필적학은 과학적 뒷받침이 없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글씨와 사람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주장은 낯선 이론이 아닙니다. 공자, 주자, 이황, 송시열 등 동양의 선인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아인슈타인, 셰익스피어, 괴테 등 서양의 선인까지 수많은 인물들이 글씨의 훌륭함을 주장했습니다. 글씨 연습을 통해 사람의 내면을 바꾸는 방법은 이미 동양에서는 3000년 동안 그 효과가 입증됐으며, 프랑스에서는 실제 20세기 초반부터 글씨를 통해 심리를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해 적용하고 있습니다. 우울증 환자나 알코올 중독 환자의 우하향 글씨를 바로 쓰게 하는 글씨 교정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가로선을 길게 만들면 보다 나은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인내심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주장에 반기를 드는 의견이 있습니다. 저는 반문하고 싶습니다. 제 분석과 다른 경우 근거를 들어 논쟁하자고.”

디지털화되며 글씨를 직접 쓰는 일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병을 치료하는 약이 대중에게 많이 안 팔린다고 해서 그 약의 효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글씨도 그렇습니다. 많이 쓰지 않는다고 해서 그 효과가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써 글씨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있지만, 인격 수양의 수단으로써 글씨의 중요성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마저 포기하기에는 (글씨의 기능이) 너무 아깝지 않겠습니까.”


글씨 연습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매일 글씨 연습을 하면 됩니다. 하루 20분, 단 6주간 꾸준히 하면 효과가 있을 겁니다. 롤 모델의 필체를 따라 쓰거나, 필체를 부분적으로 바꿔 쓰는 방법을 사용하면 됩니다.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롤 모델의 서체와 비슷해졌다면 변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백년대계도 아닙니다. 단 6주라면 투자해 볼 만하지 않을까요.”

구본진 대표는…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21년간 검사로 근무하면서 살인범, 조직폭력배의 글씨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의 필체가 일반인들과는 달랐다는 점이다. 필체와 사람 사이에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필적학의 세계에 입문했다. 2017년 10월 국방부 요청으로 북미 정상의 글씨로 한반도 정세를 예측하는 등 현재 대한민국 제1호 필적학자로 활약하고 있다.



3 다산 정약용의 글씨
필적학으로 접근해도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다산의 글씨. 전남 강진군 제공.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8호(2020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