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은 뮤지컬 배우 백형훈(34)을 만났다. 아직도 소년 같은 눈망울과 미소가 매력적인 그이지만 무대 위에서는 탄탄한 보컬과 섬세한 캐릭터 분석력, 안정적인 연기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베테랑 배우다. 그런 그에게 지난 10년은 어떤 의미였을까. 고되고 치열했지만, 무대에 설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백형훈표 ‘성장 일기’를 엿들어 봤다. 사진 서범세 기자

[인터뷰①]백형훈 “노래·연기 힘 조금 빼고, 상대와 호흡 늘렸죠.”
꽉 다문 입, 쌍꺼풀 짙은 큰 눈, 갸름한 얼굴선에 들뜨지 않는 중저음 목소리까지. 뮤지컬 배우 백형훈의 첫인상은 그저 잘생긴 ‘차도남’이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70여 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동안 그는 때론 엉뚱하고, 순진한 소년으로, 때론 꿈과 현실에서 고민하는 평범한 30대 남성으로 시시각각 변주했다. 웃기도 잘 웃고, 느릿하지만 조곤조곤 할 말은 다하는 그의 눈빛이 가장 깊어졌던 건 역시 연기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였다. 연기할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며 ‘연기가 곧 삶’이라고 덤덤하게 말하기도 했다.


사실 그의 인생 나침반이 처음부터 뮤지컬 배우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노래를 곧잘 했던 그는 원래는 가수를 꿈꿨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질 않았고, 노래를 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아 보다가 청계천에서 열린 하이서울페스티벌 뮤지컬 갈라쇼를 접하면서 본격적으로 뮤지컬 배우를 꿈꾸기 시작했다.

비단, 지금은 국내 뮤지컬 시장이 거대해지면서 체계적으로 뮤지컬 배우를 양성하는 곳이 많지만 당시에는 그에게 주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가정형편도 넉넉지 못했고, 전문 트레이닝을 받기도 힘들었다고. 결국 믿을 건 노력뿐이었다.

한번 노래 연습을 시작하면 최소 8시간, 심지어 3일간 연습실에서 나오지 않을 정도로 몰입했다는 그는 2010년 서울예대 재학 중 뮤지컬 <화랑>으로 데뷔했다. 이후 군복무 2년여 공백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여신님이 보고 계셔>, <엘리자벳>, <쓰릴미>, <테레즈 라캥>, <팬레터>, <랭보> 등 매해 2~5편씩 쉬지 않고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팔색조 매력을 뽐내고 있다. 또한 JTBC <팬텀싱어 시즌 1>에서 ‘흉스프레소’의 일원으로 최종 결선까지 진출한 파이널리스트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기도 했다.


최근에 그는 뮤지컬 <최후진술>를 통해 갈릴레오 갈릴레이 역할로 완벽히 변신했다. 올해로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한 뮤지컬 <최후진술>은 지동설을 부정하고 천동설을 지지하는 내용의 속편을 쓰기 위해 피렌체의 옛집으로 돌아온 갈릴레오가 생의 마지막 여행길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만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재연에 이어 이번 시즌에서 펼쳐질 백형훈만의 갈릴레오는 어떤 인물일까. 그가 말하는 뮤지컬 <최후진술>과 10년간 배우로서 겪은 희로애락, 앞으로의 꿈에 대해 대화를 나눠 봤다.

우선, 최근작 뮤지컬 <최후진술> 얘기를 해 보죠. 재연에 이어 삼연에도 출연 중인데 이 작품의 매력을 꼽자면요.

“사실 저도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땐 ‘이게 뭐지’ 싶었어요. 작품이 병렬구조식이라 극 내내 계속해서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요. 그러다 보니 이 작품을 한번에 이해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다만, 관련 캐릭터들에 대해 어느 정도 공부를 하고 보시면 훨씬 재밌고,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작품이랍니다.”

이번 시즌에서 좀 더 주안점을 둔 연기 포인트가 있나요.

“사실 재연에서는 연기할 때 힘이 좀 들어갔어요. 노래든 연기든 모든 장면을 꽉 채우려고 한 느낌이죠. 그 당시 공연 실황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을 들어봐도 객관적으로 좀 부담스러운 부분도 없잖아 있더라고요. 이번 시즌에는 그걸 좀 덜어 내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래서인지 20개 넘버를 소화하는 것도 편해진 느낌이에요. 단, 덜어 낸 만큼 더해지는 부분은 상대방과의 호흡이죠.

재연에서는 갈릴레오의 내면에 집중하고, 파고들었다면 지금은 상대의 마음까지 생각해 보려고 한 것 같아요. 가령, 윌리엄이 극중 ‘증언’이란 넘버에서 갈릴레오를 매섭게 혼내요. 그가 썼던 비극 속 캐릭터들과 콤플렉스를 나열하면서 갈릴레오를 향해 ‘너는 그 캐릭터보다 못하다’고 비난하죠. 지난해 공연에서는 그걸 굉장히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고집스런 모습으로 표현했다면 이번 시즌에서는 어쩌면 갈릴레오도 자신을 향한 수많은 비난들이나 과정들을 어느 순간 통달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좀 변화를 시도한 것 같아요.”


이번 시즌에 유독 춤 솜씨가 늘었다는 평이에요. 따로 춤 연습을 하나요.

“아뇨, 아뇨.(웃음) 따로 춤 레슨을 받지는 않아요. 뮤지컬 배우라면 춤을 포함해서 잘해야 하는 덕목들이 있어요. 물론, 그걸 모두 다 잘하기란 쉽지 않죠. 저는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더 잘하자는 생각이에요. 다만, 뭘 하든 열심히 하려고 해요. 안무할 때도 무한대로 반복하고, 연습하는 편이에요. 아무리 완벽하게 연습해도 무대 위에서는 연습 때만큼 안 나올 때도 많으니까요.”


뮤지컬 <최후진술>은 어쩌면 후회 없는 삶이 무엇인지 깨닫는 과정인데, 본인에게 후회 없는 삶은 어떤 것인가요.

“음, 거짓 없는 삶이 아닐까요. 간혹, 대중매체를 통해 선하고 온화한 이미지로 사랑받는 연예인들 가운데 추악한 과거가 드러나 비난받는 사례가 있잖아요. 심지어 자기 본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거짓으로 만들거나 연기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런 거짓된 삶을 살지 않는 것, 제겐 그게 후회 없는 삶 같아요.”

[인터뷰①]백형훈 “노래·연기 힘 조금 빼고, 상대와 호흡 늘렸죠.”
벌써 데뷔 10년 차입니다. 데뷔 초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나요.

“네, 달라진 점들이 많죠. 제가 데뷔했을 때만 해도 공연계가 지금처럼 체계적인 제작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았어요. 배우들이 연기 외에도 스태프로도 투입돼 공연을 만들었죠. 반대로 지금은 배우, 제작사, 스태프 등 제작 영역이 잘 나뉘어졌고, 유기적으로 운용되고 있어요. 본업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거죠. 요즘 데뷔하는 후배들에게 가장 부러운 점이에요.”


개인적인 변화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배우를 한 것에 후회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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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지에 이르려면 10년은 걸린다고들 하잖아요. 그 시간을 저도 나름 잘 버티고, 발전해 온 것 같아요. 후회는 안 하죠. 저란 사람이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것을 허락해 주고, 알아봐 주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니까요. 다만, 앞으로 마주할 10년은 지금껏 제가 거쳐 온 10년과는 조금 달라졌으면 해요. 아쉬웠던 부분을 채우고 싶다고 할까요.”

어떤 부분이 아쉬웠나요.
“군대 제대 이후 제 예상보다 빠르게 큰 기회들이 찾아왔어요. 그런데 제 의도와는 다르게 그 기회들이 부당한 이유들로 빗겨 나갔죠. 화도 많이 났고, 지금도 당시 상황이 불합리했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요. 어쩌면 그때 제가 한 발자국(기회) 더 나아갔으면 제 목표를 더 크게 펼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앞으로는 그런 잘못된 부분들이 변하길 바라죠. 또한 저에게 그런 기회가 또 온다면 이번에는 반드시 잡고 싶어요.”

*[인터뷰②]백형훈 “꿈 향한 열정, 장롱에서도 노래했어요.” 로 이어집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0호(2020년 0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