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 [사진 = 서범세 기자] *인터뷰 1에 이어서

[인터뷰②]백형훈 “꿈 향한 열정, 장롱에서도 노래했어요.”

팬들 사이에서 백형훈 하면 착하다, 바르다는 이미지가 강하다고 들었어요. 뮤지컬<팬레터> 때는 극중 정세훈의 이름을 본떠 ‘유교세훈’이란 별명도 얻었다고 하던데요.

“유교세훈이요? 하하하. 와, 기발하다 진짜.”

동시에 엉뚱한 면도 많다고 들었어요. 일전에 <팬레터> 제작사 자체 영상 인터뷰에서 “저는 저에게 영감을 받습니다”고 말한 적도 있다는데 어떤 의미로 한 말인가요.

“아, 그거요?(웃음).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죠. 해당 인터뷰를 할 때 제작사에서 예시로 보여 준 영상이 있었어요. 진지하고 딱딱한 인터뷰 대신 재밌게 답변하길 원하셔서 전 그 예시대로 한 거였거든요. 그래서 당시 그 질문에 재밌게 해 보려고 ‘전 저한테 영감을 얻는다’고 답하고 노래도 우스꽝스럽게 불렀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저만 그렇게 했더라고요. 다른 형들은 ‘제 와이프에게서(영감을) 얻습니다’라며 진지하게 했더라고요. 아니, 저도 결혼했는데.(웃음) 나중에 영상 보고 나서 당황했어요.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에요.(웃음) 아마 그런 부분에서 착하다고 느끼시나 봅니다.”


성실하게 연습한 만큼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팬들이 바르다, 착하다고 평가하는 부분도 있어 보여요.

“사실 제가 착한지 안 착한지는 인간 백형훈을 겪어 보지 않고선 모르는 거겠죠. 결국 직업인 백형훈으로 만나는 거니까요. 물론 일할 때는 예의 바르고, 대체로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성향이긴 해요. 그래도 이제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하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속으로 끙끙 앓더라도 그냥 다 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건 ‘아니다’라고 하고, 간혹 ‘이 부분은 참 힘들었어요’라며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기도 하죠. 하지만 그 외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려고 해요. 공연은 저만의 1인극이 아니잖아요. 텍스트 안에서 수많은 배우들과 스태프들 간 호흡이 굉장히 중요한데 제 입장만 고수하면 무대에서 다 드러나게 돼요. 요즘 관객들은 똑똑하셔서 그런 불협화음들을 바로 알아내죠. 그래서 더 함께 공유하고, 열심히 준비해요. 그런 모습들을 바르고, 착하게 봐 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죠.”

소리가 좋은 배우로 알려졌어요. 목 관리 노하우가 있다면요.

“중·고등학교 때부터 노래를 깔끔하게 부르는 편이었어요. 가수만큼 잘했다기보다 듣기 좋은 정도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렸을 땐 막연히 가수를 꿈꿨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가수로 성공하신 분들은 대개 누가 뭐라고 하든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를 파고드시더라고요. 말 그대로 노래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죠. 그에 비하면 전 좀 안일했던 것 같아요. 어떤 가수가 돼야겠다는 정체성도 못 찾은 상태에서 가수를 꿈꿨으니까요. 이후 뮤지컬 배우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부터는 정말 무식하다 싶을 정도로 연습했어요. 전문적인 레슨을 받을 수 없던 환경이라 시간이 오래 걸렸죠. 정말 열심히 했어요. 하루에 8시간 연습하기도 하고, 심할 때는 연습실에서 3일 동안 안 나온 적도 있으니까요.

최근에 제가 가수 HYNN(박혜원) 씨를 참 좋아해요. 노래를 엄청 잘 부르시더라고요. 무엇보다 그분 관련 기사를 읽었는데 옷장에서도 연습한 적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저도 예전에 장롱에서 노래 연습한 적이 있거든요. 마땅히 연습할 공간이 없어서 옷과 이불로 방음이 되는 장롱 속에서 노래를 불러야 했어요. 아, 정말 누구나 노래를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다들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싶었죠. 서러울 때도 많았는데 열심히 하면서 견뎌 온 것 같아요. 한편으론 말로만 열심히 한다는 후배들은 이런 얘기들을 좀 새겨 들었으면 해요.”

[인터뷰②]백형훈 “꿈 향한 열정, 장롱에서도 노래했어요.”
배우생활에 영감을 주는 사람이나 미래에 이런 배우처럼 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5~6년 전까지만 해도 시야가 좀 좁았던 것 같아요. 그땐 대극장에 오르는 유명한 배우들이 더 눈에 들어왔죠. 그런데 대극장은 물론 중·소극장까지 두루 경험해 보니 주어진 기회나 환경의 작은 차이만 있을 뿐 배우들의 능력치는 비슷하더라고요.

꼭 대극장에 선다고 ‘더 낫다’ 이런 건 아닌 것 같아요. 되레 요즘은 중년에 접어들어서도 20~30대 배우들보다 더 왕성하게 활동하는 선배들을 존경하게 돼요. 류정한 선배, (송)용진이 형, 고형빈, 마이클 리 선배 모두 긴 세월 동안 쌓은 연륜은 물론이고, 어떠한 역할이라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들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예전에는 훗날 ‘그 넘버, 그 작품엔 백형훈 아니냐’라는 평가받길 꿈꾸기도 했는데, 지금은 작품을 같이 하는 후배들이 저를 불편해하지 않고 함께하고 싶은 젊은 감각의 선배,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생활 10년 동안 팬들이 다양한 선물을 해 줬을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은 선물이 있나요. 10주년 기념 콘서트 계획은요.

“우선 콘서트부터 말씀드리자면 꼭 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어려울 것 같아요. 원래 저는 10주년이라고 해서 뭔가 기념하려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그런데 저보다 늘 저를 아껴 주시고 챙겨 주시는 팬들의 모습을 보니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었어요. 지난 3월에도 제 생일과 10주년을 기념해 지하철 광고부터 그간 제가 했던 캐릭터들의 피규어와 발자취를 담은 책 제작 등 정말 다양한 이벤트들을 해 주시기도 했죠.

정작 10주년에도 아무 준비를 안 한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죠. 팬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달하고 싶어 꼭 작은 극장에서라도 공연을 하고 싶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천천히 생각하려고요. 좋은 시기에 꼭 한번 해 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백형훈에게 연기란.

“그게 곧 제 삶인 것 같아요.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에요. 연기를 해서 제가 살 수 있고, 또 살아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죠.”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0호(2020년 0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