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외상 후 스트레스 예방은

[한경 머니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하지만 전염병이 야기한 고통의 부정적 영향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지금 마음을 잘 다독거려 주어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끝난 후 찾아올 수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post-traumatic stress) 현상도 잘 예방할 수 있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 후에 “여러 명이 실컷 떠들며 한 잔 기울이는 삼겹살 회식이 그립다”, “꽉 들어찬 극장에서 팝콘 먹으며 영화 보고 싶다” 같은 특별하지 않았던 일상의 활동이 간절한 소망으로 다가오더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삶의 고통은 불안과 우울이란 부정적인 감정 반응을 일으킨다. 그런데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긍정적인 변화도 가져온다고 한다.


삶의 우선순위에 변화가 일어나 일상의 사소한 것에도 더 감사함을 느끼고 몰입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내 삶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유한한 시간(mortal time)’을 더 느끼는 것으로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도 하는데 평소에 멀리 두었던 죽음이라는 단어가 삶에 들어왔을 때 행복에 대한 마음의 역치가 떨어지면서 작은 일상에서도 행복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고통의 긍정적 측면이 있기는 하나 극심한 삶의 고통은 마음과 몸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우선 고통스러운 감정을 가져온다. 불행한 일이 나에게 찾아오지는 않을지 불안하고 두렵다. 가까운 사람에게 불행한 일이 찾아왔을 때 안타까움과 더불어 생존자 죄책감(survivor guilt)이 들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은 구하지 못하고 나만 살아남았다는 괴로운 자책의 감정이다.


또 실제적인 삶의 고통이 사라진 후에도 과거의 기억이 나를 계속 괴롭힐 수 있다. 바이러스가 또 찾아오는 것은 아닌지,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은 아닌지 등 두려움이 지속된다. 과거의 심리적 트라우마가 현재와 미래를 계속 괴롭혀 일상생활을 어렵게 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찾아올 수도 있다.


美, ‘코로나 이혼’ 신조어 등장

‘코로나19’ 외상 후 스트레스 예방은
바이러스 감염 자체가 무서운 일이지만 바이러스에 대한 심리적 스트레스도 잘 다루어 주어야 한다. 스트레스는 마음도 불편하게 하지만 부정적 감정으로 가득 찬 마음은 몸의 기능도 망가뜨린다. 몸이 건강했는데 스트레스로 마음이 속상할 때 감기마저 걸리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마음과 몸은 면역, 신경계 등으로 단단히 엮여 있다. 마음이 불편하면 몸도 불편하고 마음이 편하면 몸도 강해질 수 있다. 바이러스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잘 다루어 주는 마음방역은 실제적으로 면역 기능도 잘 유지하도록 도와줘 바이러스 침투에 방어력을 튼튼하게 한다.


미국에서 코로나(covid)와 이혼(divorce)의 합성어인 ‘코로나 이혼(covidivorce)’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정 안 부부관계를 밀착시키다 보니 내재돼 있던 갈등이 증폭돼 이혼까지 생각하게 하는 커플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중국도 이혼율이 증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최고의 스트레스 솔루션이 관계인데 사회적 거리 두기로 힐링 모임은 줄어든 반면 가정 안에서는 너무 근접한 거리로 오히려 갈등이 증폭되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재택근무를 하게 된 40대 기혼 남성은 이런 하소연도 했다. 일 때문에 아이들과 잘 놀아 주지도 못했는데 기왕 재택근무를 하게 된 이상 아이들과 친해지고 아내에게 점수도 따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고 한다. 그러나 재택근무로 처리하는 업무의 스트레스도 생각 이상이고 사람들을 직접 상대하지 못하니 나만 뒤처지고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도 찾아왔다고 한다.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에서 직장에 나간 아내를 대신해 아이들 점심을 차려 주었는데 음식 투정을 하고 말을 잘 안 듣는 자녀들에게 확 짜증을 내게 돼 아이들과 오히려 멀어지고 퇴근한 아내에게도 섭섭한 이야기를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가족관계도 어렵게 한 셈이다.


스트레스 현상은 자극과 반응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통제가 어려운 엄청난 스트레스 자극을 경험하고 있다. 자극을 쉽게 줄일 수 없는 상황이라면 반응을 줄여야 하는데 반응은 성격처럼 고정된 부분과 연관이 많아 당장 반응을 줄이는 것이 쉽지 않다. 스트레스 받지 말란 말이 스트레스를 주는 이유다. 그래서 자극과 반응을 분리하는 훈련이 스트레스 관리에 필요하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극과 반응을 분리할 때 그 사이에 자유와 힘이 생긴다고 한다. 자극을 반응과 분리하는 첫 단계로 현재의 심리적 고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부정적 감정을 없애려고 너무 노력하지 말고 “지금 내가 힘든 것은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야”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부정적 감정을 너무 억누르려고 하면 오히려 더 강한 반응이 튀어나올 수 있다.


그리고 대화를 통한 공감소통이 큰 도움이 된다. 함께 이겨 낼 수 있다는 사회적 탄력성을 강화해 스트레스 반응을 줄여 준다. 필요할 때까지 물리적 거리 두기는 해야 하지만 마음까지 멀리할 필요는 없다. 화상통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다양한 소통 수단이 존재한다.


면대면 만남은 어렵지만 마음은 얼마든지 전달할 수 있다. 공감소통으로 서로의 어려움도 나누면서 긍정적인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지금의 통증이 향후 외상 후 스트레스 현상이 아닌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으로 이어지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우리는 각자 내 인생이란 영화의 주인공이다. 대화를 통해 긍정적인 우리의 미래에 대해 묘사(narrative)하는 것이 내 인생의 시나리오를 긍정적으로 바뀌게 한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0호(2020년 0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