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과 환상의 차이

망상 장애는 병이지만, 남을 불편하지 않게 하는 가벼운 허구는 때론 행복이 된다. 우리 감성 시스템은 현실과 환상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로맨스 소설만 몰입해서 읽는 데도 진짜 연애하는 것처럼 얼굴이 환해질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언제든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건강한 자아 기능 아래에서의 퇴행이 마음에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법. 이 봄, 로맨스 소설을 권하는 이유다.
[HEALING MESSAGE] 봄날, 로맨스 소설에 빠지다
‘편집증’ 하면 무언가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데 정확하게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망상을 가진 경우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망상 장애라고 부르는데 망상 장애의 ‘망상’은 그냥 들어서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처음에는 알 수가 없을 때도 흔하다. 망상의 내용이 황당하지 않고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의처증, 의부증이 망상 수준에 이른 경우다.

67세 여성이 혼자 필자의 진료실을 찾아왔다.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너무 힘들다며, 잠도 못 자고 불안하고 우울하다고 토로했다. 내용을 들어 보니 70세인 남편이 30대 젊은 여성과 바람이 났다는 것이다. 자신이 없을 때 집에도 데려온 것을 알고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못된 남편 때문에 고생하시는 게 딱해 위로를 해 주고 마음이 편해지는 약물도 처방했다.

그 후 다시 진료실을 찾아와 하는 말이 ‘그 여자’를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남편이 70세인데도 아직 멋있긴 해요”라며 웃는데 직감적으로 ‘어, 이상한데’란 느낌이 왔다. 그래서 ‘수사’에 들어갔다. “여자를 어디서 보았느냐”, “집에 왔던 것은 실제 본 것이냐” 등을 물어 보았다. 결론은 망상이었다. 그래서 망상을 조절해 주는 약물로 바꾸어 처방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필자를 찾아온 환자는 너무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남편이 자신에게 다 실토하고, 다시는 바람을 피우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망상이 호전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 허구였다는 것을 아는 것일 텐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앞의 여성 환자처럼 바람피우던 남편이 더 이상 바람을 피우지 않는다는 정도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가족들이 묻는다. “어머니에게 그 사실이 망상에서 비롯된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려 드리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라고. 필자의 대답은 “그럴 필요가 없다”다. 망상 자체야 신경생물학적 증상이고 그래서 약물에도 호전을 보이는 것이지만, 망상의 내용은 심리학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부정 망상은 스스로 창작해 내는 독한 로맨스 소설이라 생각된다. 70세인 내 남편이 아직도 30세 젊은 여자가 좋아할 만큼 매력적이란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내면적으로 만족감을 준다. 그런 남편의 아내로 살아가는 내 가치도 함께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너무 노골적이면 창피하기에 무의식이 슬쩍 이야기를 치정 사건으로 틀어 버리는 것이다. 자신을 피해자로, 위로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남편이 실토하고 더 이상 바람을 피우지 않아요”라는 말엔 그런 멋진 남편이 젊은 여자를 버리고 나를 다시 선택했다는 뿌듯함이 담겨 있는 셈이다. 부정 망상은 증상이긴 하지만 결국은 사랑에 대한 결핍과 보상 욕구에서 시작된 것이기에 그것을 허구로 받아들이는 것은 본인으로서는 심리적으로 큰 충격이다. 그래서 굳이 허구임을 환자에게 지적하지 않는 것이다. 남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선에서 가벼운 ‘행복의 허구’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건강한 퇴행이 가져다주는 소소한 행복
42세의 한 여성이 달달한 연애를 그리워하다 로맨스 소설 읽기에 너무 빠져 책 읽을 때 남편은 물론이고 아이 생각도 안 나 죄책감이 든다며 자신이 정상이냐고 질문을 했다. 로맨스 소설에 빠지는 것은 병적인 망상은 아니다. 그러나 유사한 측면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과 심리적으로 하나가 돼 소설을 읽는 그 순간에는 마치 내가 연애하는 것 같은 감성을 리얼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맨스 소설만 몰입해서 읽는 데도 진짜 연애하는 것처럼 얼굴이 환해질 수 있다. 우리 감성 시스템은 현실과 환상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이나 영화, 그리고 드라마를 보며 우리는 울고 웃고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면 문학작품으로의 몰입은 일어날 수 없다.

주변 친구들에게 로맨스 소설에 빠져서 헤어나질 못한다고 말한다면 아마도 친구들이 “네 나이가 몇 살인데 로맨스 소설이냐”라고 반응할 것이다. 나이보다 어린 행동을 하는 것을 퇴행이라 한다. 망상도 심각한 퇴행 현상이다. 현실과 환상을 구분 못하는 어린아이의 사고체계로 되돌아가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아가 봉사 차원에서 일부러 해 주는 퇴행(regression in the service of ego)’이라는 복잡한 말이 있다. 이 퇴행 능력이 클수록 예술가적 기질이 크다는 이야기다. 망상 같은 병적 퇴행은 자아 기능 자체가 손상돼 있지만, 언제든 현실 세계로 돌아올 수 있는 건강한 자아 기능하에서의 퇴행은 예술적 체험이고 능력이다. 예술과 문화를 깊이 즐긴다는 것은 논리적인 현실 세계에서 떠나 잠시 감성적인 환상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것을 건강한 퇴행이라 부른다.
[HEALING MESSAGE] 봄날, 로맨스 소설에 빠지다
사람의 가장 강력한 욕구는 생존이지만 생존의 목적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생존만큼 강력한 마음의 욕구이고 삶의 목적이다. 그래서 사랑의 결핍만큼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없다. 각양각색의 증상으로 필자의 진료실에 오는 분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결국은 사랑 결핍의 통증과 그것을 보상하기 위한 과도한 노력이 증상으로 나오지 않나 생각된다.

필자는 로맨스 소설에 흠뻑 빠져 있는 여성의 사례가 부럽다. 문화를 제대로 즐기고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인생과 현실은 항상 완벽하지 않고 결핍이 존재하기에 우리를 위로하기 위한 문화와 예술이 우리 곁에서 발전된 건 아닐까. 프랑스와 일본의 1인당 연간 평균 독서량이 각각 11권, 12.7권인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2.7권이란다. 힐링이 유행인 세상이다. 힐링은 마술적인 테크닉이나 기술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사소한 삶의 변화가 내 마음에 엄청난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 따뜻한 봄이 찾아 왔다. 한 잔의 커피와 함께하는 한 권의 로맨스 소설만으로도 우리 뇌는 그 어느 순간보다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