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일식당 스시 을 찾은 건 순전히 한 패션 브랜드 최고경영자(CEO)의 추천에 의해서였다. 재일교포인 이 CEO는 단골집인 스시 을 꼭 소개해 주기를 부탁했는데, 미식가로 이름난 그의 입맛을 사로잡은 이 집의 비결이 궁금했다.
[GOURMET REPORT] 여의도 일식당 ‘스시’ 스시와 수다가 맛있는 집
여의도 인도네시아 대사관 옆 진주상가 2층에 위치한 스시 의 겉모습은 사실 특별할 것이 없었다. 목조식 내부 인테리어에 벚꽃나무 장식, 정갈한 스시바 등은 여느 일식당의 그것이었다. 다른 풍경이라면 스시를 부지런히 쥐어 가면서 손님과 열심히 ‘수다’ 중인 사장님. 손님 앞 접시에 정갈하게 모양새를 다듬은 도미 스시 두 개를 얹어주면서도 연방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모르면 모를까 그를 아는 사람은 결국 팬이 된다는 ‘여의도 마당발’ 정관교 사장은 일본 히로시마에서 11년간 초밥을 만들어 온 스시맨이다. 부산 광안리에서 동명의 일식집을 운영하다 2년 7개월 전 여의도에 스시 을 오픈했다.
사시미 상차림.
사시미 상차림.
스시 은 정통 일식을 표방한다. ‘경상도 남자’ 정 사장은 철저하게 히로시마에서 배운 대로 음식을 만들어 낸다. 매일 새벽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신선한 해산물을 고르는 것부터 밥 짓기, 육수 뽑기, 각종 재료 데치고 삶기까지 조금 번거로워도 까다로운 맛의 기준을 지키기 위해 고집스럽게 한길만을 걷고 있다. 특히 스시에 자부심이 강한 정 사장은 조금이라도 선도가 떨어졌다고 생각되는 밥은 곧바로 쓰레기통에 넣는다. 이곳에서 맛보는 모든 음식이 신선하고 깔끔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매일 아침 공수해 온 횟감과 밥 알갱이 한 알 한 알이 살아 있는 김포산 스시 쌀 고시히카리미(米)의 조화는 일품이다. 오전 9시, 스시 의 주방에 연기가 난다. 스시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밥을 짓는 시간이다. 고시히카리미를 1시간 5분 정도 불린 뒤 물을 넣고 가스 불에 밥을 한다. 밥에 넣는 물의 양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약간씩 조절한다. 15분간 뜸을 들인 후 배합초를 섞는데, 이때 밥과 잘 섞이도록 일본에서 직접 제작해 가지고 온 목조 식힘판을 이용한다.
목조식 실내 스시바.
목조식 실내 스시바.
정교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 밥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촉촉했다. “생선보다 밥이 더 맛있다”는 손님들의 농담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일본에서 배운 대로 스시를 만들다 보니 일본 토박이의 입맛도 기가 막히게 맞춘다. 오랜 일본 생활로 인해 일어도 유창하게 구사하니 일본 손님들과의 소통도 문제없다.


일본의 맛 구현…맛의 강약 조절해야 초밥 더 맛있어
뭉글뭉글한 계란찜(차완무시) 역시 스시 에 왔다면 꼭 주문해야 할 메뉴. 계란찜과 붕장어(아나고) 초밥을 먹어 보면 일식집의 수준이 보인다고 했던가. 고급 다랑어포를 우려 낸 육수로 만든 계란찜은 부드럽게 식도를 따라 흘러 위장에 그대로 흡수됐다. 미리 만들어 놓지 않고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재빠르게 만들어 따뜻하고 식감이 부드럽다. 속을 덥힌 다음 참치, 농어, 광어, 도미 순으로 스시를 맛봤다. 하나하나 눈앞에서 사라지는 초밥에 애달픈 마음마저 들었다. 4월부터는 제철을 맞아 살이 한층 쫀득한 도미가 메인 요리가 된다. 정 사장은 그날 들어온 생선을 위주로 스시를 만들되, 맛의 강약을 조절해 서비스한다. 스시 맛에도 높낮이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 가령, 참치나 등 푸른 생선, 붕장어와 같이 맛이 강한 스시를 맛본 뒤에는 흰 살 생선이나 한치, 새우처럼 맛이 약한 종류를 먹는 식이다. 비슷한 초밥만 먹다 보면 고유의 맛과 향을 잘 못 느낄 뿐만 아니라 쉽게 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스시를 만들고 있는 정관교 사장.
스시를 만들고 있는 정관교 사장.
스시를 간장에 가져가려는 찰나, 정 사장이 만류한다. 이곳의 스시는 이미 조미가 돼 있어 그대로 먹어도 맛있단다. 점심 특선으로 스시 10개에 장국, 차완무시 등이 나오는 스시나 상자 스시와 장국 등으로 구성된 히로시마식 아나고 상자 스시, 주방장 추천 오마카세 스시 등 스시 코스가 있다. 저녁 특선은 사시미와 곁들여진 스시가 세트로 나온다. 따뜻한 봄날 차가운 사케 한 잔과 곁들여도 좋을 상차림이다.

여의도의 지역적 특성상 주 고객은 정치인, 기업인, 증권맨, 방송사 관계자 등이다. 이들은 밀실(룸)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 손님들은 웬만해선 바에 앉기를 좋아한다는 게 직원의 귀띔이다. 두어 번만 찾으면 고객의 취향을 금세 파악하고, 구미에 맞는 메뉴를 척척 내오니 스시 의 단골이 될 수밖에. 배고프고, 수다는 더 고픈 고독한 현대인에게 딱 맞는 식당으로 추천하는 바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