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 연세한의원 원장·대한 여한의사협회 총무이사

2014년 4월 16일.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 참담한 사건이 온 나라를 우울의 심해로 가라앉혀 버리고 말았다. 많은 희생자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둔 필자 역시 그 사건 이후 며칠 밤을 생존 소식을 기다리는 기도로 불면의 밤을 보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대응에 분노하고,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진료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무기력감이 심해져 수년 동안 해 오던 운동도 중단하고, 진료 시간 외에는 사람들 만나는 것조차 피하게 되는,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지독한 우울감에서 한동안 헤어나지를 못했다. 내 자신이 의사가 아니었다면 그 과정에서 헤어나지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도 지금 대한민국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사람이 이러한 우울감으로 고통 받고 있을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은 두가지 증상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우울증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로 보기(補氣)시켜 기운을 업(up)시켜 주는 치료가 필요하고, 다른 하나의 경우는 화병 형태로 증상이 나타나니 청열사화(淸熱瀉火)해 다운(down)시켜 주는 치료가 필요하다.

우울감이 주증상인 경우를 모두 우울증으로 진단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변화된 상황에 의해 나타나는 일시적 우울감을 우울증으로 잘못 진단한다면, 본인 스스로나 주변의 작은 도움으로 극복할 수 있는 정서의 변화를 중증의 우울증 환자로 결정지어 자신을 골방에 가두어 무기력, 대인기피증 등으로 상황을 악화시킬 수가 있으므로 감별 진단이 필요하다.

생활환경의 변화나 스트레스 등의 원인으로 단순히 우울한 기분이 일시적으로 지배하는 우울감과는 달리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 외에 수면장애, 식욕부진, 소화 장애, 성욕 감소, 체중 감소 등의 신체적 증상과 일에 대한 의욕 감퇴, 행동이 둔하고 느려지며 본인이 무가치하고 부적절하다는 죄책감을 느끼는 사고의 변화가 동시에 일어난다.

일시적 우울감은 본인의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이야기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상태가 호전되지만, 병적인 우울증은 단지 본인의 의지나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만으로 회복되지 않으므로 반드시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병적인 우울증을 최근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고의 영향으로 일어나는 일시적, 사회적 우울감으로 가볍게 방치할 경우, 최근 자주 기사로 접하게 되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과 등 심각한 상태로 악화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 전체는 자신은 물론 주변에 관심을 가져 혹여 방치돼 고통 받는 이가 없는지 서로를 격려하며 도와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우울증의 치료는 몸 치료와 마음 치료가 모두 필요하다. 수면장애나 소화기 장애 등의 증상은 그 증상을 호전시켜 주는 치료 자체가 정서의 변화에도 도움이 된다. 우울감으로 무기력할 때는 기를 보충해 주는 보기(補氣)제를 처방받아야 하고, 기혈의 흐름이 막히는 기체(氣滯)증으로 통증(흉통이나 복통이 많다)이나 담음(痰陰: 몸이 붓거나 무겁고, 머리가 아프고 맑지 못하며 어지럽기도 하며 심하면 구역질이 나기도 한다)의 증상이 있을 때는 침 치료를 병행해 기혈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 주어야 한다. 마음 치료는 전문가와의 상담 치료를 통해 본인의 정서와 사고의 변화를 외부로 표출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치료받아야 한다. 우울감으로 힘들 때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함으로써 그 감정을 공유해 함께 극복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