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때 뇌 안에선 무슨 일이?

사랑은 중독성이 다분하다. 실연의 고통은 일종의 금단 증상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사람을 강박적으로 만들어 집착하게 한다.

이 무모하고 비합리적인 사랑은 남녀 간 사랑이나 부모자식 간 사랑이나 마찬가지다. 뇌 안에서의 사랑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부부 간, 부모자식 간 ‘관계의 답’이 바로 이 안에 있다.
[HEALING MESSAGE] 아들 같은 남편, 딸 같은 아내가 백년해로의 길
자유, 사랑, 그리고 힘 중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면 다양한 대답들이 나온다. 아내는 사랑이라 이야기하는데 남편은 자유라고 해서 아내가 섭섭해하는 경우도 있다. 기업을 경영하는 친구에게 물어 보니 자신은 줄곧 ‘힘’이었는데 요즘 들어 생각이 바뀌고 있다고도 한다. 물론, 살다 보면 우선순위에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자유, 사랑, 그리고 힘에 대한 갈망은 사람의 가장 본질적인 욕구라 여겨진다. 그런데 이 세 요소는 서로 배타적이면서도 보완적이다. 힘에 대한 집착은 자유와 사랑을 희생시키기도 하지만 힘이 없이는 자유와 사랑을 지킬 수도 없다. 자유는 독립성을 지키고자 하는 분리개별화의 욕구인 반면 사랑은 내가 없어지고 완전히 상대방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융합의 욕구다. 그런데 자유는 사랑을 향한 선행조건이기도 하다.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자유를 가져야 내 사랑을 찾아 새로운 가족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첫사랑은 매우 중요한 심리 발달을 위한 경험이다. 수십 년 키워 준 부모 입장에서 얼마 만나지 않은 애인에게 폭 빠져 부모도 잊은 듯한 자녀를 보고 있자니 너무 속상해 화가 난다며 화병이 걸려 찾아오는 분들도 있다. 그분들에게 드리는 의사로서의 대답은 “사랑을 하면 부모도 못 알아본다는 것이 사실입니다”이다.


사랑에 대한 신경생물학적 연구 결과
그렇다면 왜 사랑을 하면 무모해질까. 최근 들어 문학, 예술의 영역이었던 사랑에 대해서 신경생물학적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흥미로운 연구 결과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사랑은 중독 경향을 가진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도파민이라는 쾌락 물질이 나오는 뇌의 영역이 활성화 된다. 이 쾌락 물질은 마음의 즐거움을 주는 보상 시스템의 스위치를 켜게 한다. 마치 마약처럼. 동시에 심장을 빨리 뛰게 하고 혈압을 올리는 흥분 호르몬도 사랑할 때는 쏟아져 나온다. 중독적인 흥분제가 작용할 때와 유사한 반응인 것이다. 사랑이 중독적이란 것은 금단 증상이 있다는 것이다. 사랑의 대상이 떠난 것이 힘든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랑이라는 뇌의 활동이 중단된 것이 실연이 주는 고통의 더 큰 원인일 수 있다.

또 사랑은 사람을 강박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집착하게 한다. 그 집착 때문에 상대방을 힘들게 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은 그 특성 자체가 예측 불허이고 불안정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 감정을 안정적으로 조절해 주는 세로토닌이라는 뇌 안의 물질이 사랑을 할 때면 줄어들어 불안정한 특성을 가진 사랑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이다. 중독이든 강박이든, 그 모든 건 첫사랑일 때 가장 강렬하다. 말 그대로 ‘미친 사랑’을 만드는 신경생물학적 변화다.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 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간절함이 담긴 명작이긴 하지만 둘의 행동을 냉정하게 보면 무모하기만 하다. 얼마든지 합리적인 다른 방법으로 사랑을 쟁취했을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마저 든다. 비극적인 예술 작품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캐릭터는 아니다. 강렬한 사랑에 무모한 용기가 동반되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내 행동을 조절하는 전전두엽이라는 뇌의 영역의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위험에 반응하고 상대방의 부정적인 것을 느끼는 선조체라는 뇌의 영역도 기능이 저하된다.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느껴지고 비이성적인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사랑을 하면 사람이 실제 변하게 된다.


남녀의 사랑과 부모자식 간 사랑은 한 끗 차이
그렇다면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남녀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은 과연 다를까. ‘당연히 다르지 어떻게 같을 수 있겠나’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지만, 뇌 과학을 기반으로 한 신경생물학 연구 결과를 보면 뇌의 반응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남녀가 서로를 사랑하는 낭만적 사랑과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 뇌가 활성화되는 영역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앞에서 사랑을 하면 무모해진다고 했는데, 남녀의 사랑 이상으로 부모의 사랑도 비합리적이고 자기희생적일 때가 많다. 누가 봐도 뻔히 날려 먹을 사업을 하겠다는 아들에게 속고 또 속고 여러 번 돈을 내어 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옳건 그르건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

고부 갈등이 ‘한 남자를 둔 두 여인의 경쟁’이라는 것은 비유가 아닌 과학적 사실이다. 사랑은 중독성과 강박적 성향이 있어 대상에게 집착하게 만든다. “아들 잘 키워서 좋은 여자와 결혼하면 됐지 뭘 그리 슬퍼하느냐”라는 이야기는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한테 갔는데 축하해 주라는 이야기와 뇌의 반응에 있어서는 비슷하다는 것이다. 장가간 아들에게 집착하는 엄마,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상한 엄마가 아닌 것이다.

다만, 남녀의 사랑과 부모의 자식 사랑에 있어 한 가지 다른 부분은 육체적 사랑과 관련된 영역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는 남녀 간 사랑에서만 활성화된다. 반면 친밀도와 관련된 옥시토신 분비와 연관된 시스템은 부모의 자식 사랑에서 훨씬 강하게 활성화된다. 남녀의 사랑은 모든 것을 내줄 듯 불붙지만 순식간에 꺼져 버리기 쉽고, 부모의 자식 사랑은 평생 지속되는 이유다.

남녀 간의 사랑에 관한 연구에 있어서도 사랑의 3요소, 친밀감, 육체적 사랑, 의지적 사랑 중 사랑의 지속성과 가장 깊은 연관이 있는 요소는 친밀감으로 돼 있다. 부부가 오래 잘 산다면 그 사랑의 특성이 부모의 자식 사랑과 신경생물학적 반응이 유사하다는 이야기다. 남편이 아들 같고 아내가 딸 같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모들은 자식들이 애인처럼 데이트를 해줄 때 행복하다고들 한다. 뇌 안에서의 사랑 반응은 크게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