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양정원, 이동찬 기자] 세계 최초의 만년필, 워터맨의 창시자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이 이룩한 위대한 역사.
[SPECIAL] Brand History of WATERMAN
1 창시자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Lewis Edson Waterman) 2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시 기록을 위해 사용했던 만년필 3 고급스러운 금과 화려한 세공 기술을 접목한 워터맨 4 1934년 광고 이미지 5 1928년 광고 이미지 6 워터맨 빈티지 우드 병잉크 7 15번 이상의 까다로운 수공 작업을 거치는 제조 과정


인류는 오랜 필기 문화를 향유해 왔지만 1800년대 초까지 거위 깃털에 잉크를 묻혀 쓰는 깃펜을 사용했다. 금속 펜촉이 발명됐음에도 필기를 할 때만 잉크가 흐르는 만년필은 없었다. 1883년의 어느 날 뉴욕, 45세의 보험 중개인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은 만년필의 잉크가 흘러 넘쳐 중요한 계약을 망치게 되자 제대로 된 만년필을 만들고자 결심한다.

루이스는 완벽한 필기를 위해 잉크의 흐름을 제어하는 공기와 잉크의 교환 방식, 그리고 관 안으로 액체 분자를 끌어당기는 힘인 모세관 인력의 원리를 분석했다. 이를 기반으로 탄생한, ‘세 개로 갈라진 공급 장치’는 곧 모든 만년필 제조사들이 채택하게 된다. 워터맨 최초의 만년필이자 세계 최초의 만년필, 레귤러의 시작이다.

소규모로 만년필을 제조하던 워터맨은 잡지에 광고를 한 후, 주문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에 이른다. 이후 공장을 설립하고 사무실을 이전했으며 판매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921년 부사장으로 취임한 윌리엄 I. 펠리스는 워터맨의 독점적 특징, 포켓에 꼽을 수 있는 클립 타입의 캡을 발명함으로써 브랜드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1926년 쥴스 파가드가 프랑스에서 워터맨의 자회사 JIF-워터맨을 설립하고, 그다음 해 코르크 마개가 있는 작은 유리관으로 된 잉크 카트리지를 발명했다. 펜촉 끝만 잉크에 담그면 되는 팁 필 공급 장치를 개발, 더 이상 사용자가 손가락에 잉크를 닦아낼 일이 없어졌다.

이러한 훌륭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펜의 스타일은 최신 패션을 담았다. 이미 주얼리 가공을 통해 예술 작품의 경지에 이른 워터맨 제품들은 아르누보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한다. 특히 1929년, 오트쿠튀르 하우스의 드레스를 모티프로 워터맨의 명작, 파트리션이 제작됐다. 1939년에는 당시 유행했던 유선형 디자인을 반영한, 투명한 배럴의 100주년 펜 라인을 출시했다.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하다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워터맨 본사에 힘든 시기였다. 반면 프랑스 JIF-워터맨의 새로운 경영자, 마담 파가드는 전후 볼펜이 흥행할 것이라고 예상, 네 가지의 색깔 교환이 가능한 팬타-빌(PANTA-BILLE)을 출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54년 워터맨의 모든 생산 공장은 미국에서 프랑스로 이전하게 된다.

1883년, 브랜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맨100을 소개했는데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기계적인 디자인, 비교 불가한 품질과 기술을 지닌 만년필이었다. 1987년에는 1920년대 스타일을 오마주한 레이디 엘사와 골드와 메탈, 래커의 조화가 돋보이는 레이디 파트리샤, 두 여성용 모델을 세상에 선보였다.

세기를 뛰어넘는 가치를 지닌 펜
1990년대 들어 워터맨의 아이코닉한 제품들이 줄지어 출시됐다. 비즈니스 펜인 엑스퍼트, 창립자의 이름을 딴 상징적인 에드슨, 모던하고 날씬한 라인의 헤미스피어, 그리고 유려한 실루엣의 까렌 등이 그것이다. 2000년대에는 클래식한 찰스톤과 깔끔한 익셉션, 그리고 구조적 인 퍼스펙티브 등 모던한 제품들을 선보였다.

워터맨은 펜을 제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1996년 주얼리 브랜드 부쉐론과 협업해 워터맨과 부쉐론의 탄생 연도를 합한 3741개 한정판을 선보였다. 저명한 브랜드들, 파리 패션위크 등 주요 이벤트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작업들은 워터맨의 디자인을 한층 더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고, 프랑스 특유의 감성과 품격을 지닌 워터맨의 고유한 디자인을 완성시켰다.

역사 속의 워터맨
최초의 만년필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역사 속 주요한 순간들에는 워터맨이 함께했다. 1905년, 러일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해 러시아와 일본이 맺은 포츠머스 조약에선 위테 백작이 레귤러 N 18 만년필로 서명했으며, 1919년, 영국 수상 로이드 조지가 황금으로 장식한 펜으로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했다. 이 때문에 중요한 서명은 만년필로 한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1927년 찰스 린드버그가 역사상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을 완주했을 때는 워터맨으로 지도에 경로를 표시했다. 그뿐만 아니라 소설가 마크 트웨인, 배우 프레드 아스테어, 테니스 선수 수잔 렝글렌 등 유명 인사들 역시 워터맨의 펜을 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