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ine 제 36호 (2008년 05월)

‘후진 정치’에 골병드는 日경제

일본은 선진국이다. 경제 규모로만 봐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다. 간판 기업인 도요타자동차를 비롯해 소니 마쓰시타 미쓰비시중공업 등 세계 톱클래스 기업도 즐비하다.

그러나 정치로 눈을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본이 과연 선진국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자민당이란 한 정당이 50여 년 장기 집권할 정도로 정권 교체가 쉽지 않은 나라, 정치인과 관료 지방 기업이 아직도 삼각 유착 관계로 붙어 있는 나라, 여야 간 정쟁으로 경제는 내팽겨쳐지는 나라가 일본이다.

경제는 일류이지만 정치는 삼류란 지적이 나올 만하다. 올 들어 일본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일본 정치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첫째, 일본은행 총재의 3주일간 공백 사태다. 지난 3월 19일 밤 도쿄역 앞 니혼바시 건너편에 있는 일본은행 현관에선 후쿠이 도시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환송식이 열렸다. 5년간의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자동차에 오르는 후쿠이 총재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후쿠이 총재를 박수로 환송하는 직원들의 표정도 어둡긴 마찬가지였다. 그가 떠난 자리에 앉을 후임 총재가 그때까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총재는 3월 20일 밤 12시를 기점으로 공식적으로 ‘공석’이 됐다. 일본 정부는 3월 초순부터 무토 도시로 전 일은 부총재와 다나미 고지 일본국제협력은행 총재 등 2명을 잇따라 일본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했다. 그러나 모두 참의원(상원 격)에서 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일본은행 총재가 빈자리가 되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었다.

일본은행 총재 공백 사태의 책임은 여야에 똑같이 있다. 1차적으로 정부·여당의 책임을 보자. 정부·여당은 야당이 반대할 걸 뻔히 알면서도 재무성 출신 총재 후보를 두 명이나 잇따라 지명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 등은 일찍부터 ‘금융과 재정 정책의 분리’를 내세우며 “재무성 출신은 일본은행 총재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은 터였다. 그런데도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밀어붙였다. ‘기세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심산과 야당의 반대로 일본은행 총재의 공석 사태가 발생하면 책임을 야당 쪽으로 돌릴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야당이라고 잘한 건 없다. 야당의 잇따른 일은 총재 임명안 반대를 순수하게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고이즈미 정권 시절 총무상 등을 역임한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교수는 “중앙은행 총재는 재무성 출신 여부보다는 필요한 자질을 충분히 갖췄느냐를 따지는 게 중요하다”며 “야당이 정부안을 계속 반대해 부결한 건 후쿠다 정권 흔들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일본은행 총재 공백 사태는 정치력도 없이 꼼수만 부린 정부·여당과 국가 경제보다는 정권 투쟁에만 매달린 야당 등 3류 정치권의 합작품인 셈이었다.

어쨌든 3주일간 공석 끝에 여야가 합의해 임명한 신임 일본은행 총재는 시라카와 마사아키(58) 부총재다. 그는 지난 3월 총재가 아니라 부총재로 새로 임명됐던 사람이다. 일본 정부는 야당이 반대하지 않을 사람을 찾다 찾다가 보름 전 부총재로 임명했던 일본은행 출신의 시라카와 씨를 총재 후보로 지명했다.

그는 부총재로 임명된 지 한 달도 안 돼 총재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했다. 시라카와 총재가 취임 기자회견에서 “갑자기 총재로 임명돼 당황스럽다”고 말할 정도였다. 일본의 통화·신용 정책을 책임지는 중앙은행 총재 인선이 어부지리(漁夫之利)로 이뤄졌다는 얘기다. 삼류 정치 때문이다.

두 번째, 휘발유세를 둘러싼 혼란이다. 일본의 시중 휘발유 값은 4월 1일부터 리터당 평균 150엔에서 125엔으로 25엔 내렸다. 무려 17%나 인하된 것이다. 3월 말로 관련 세법의 시한이 만료돼 휘발유세가 폐지된 결과다.

일본 정부와 여당은 휘발유세 시한을 연장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었다. 그러나 정권 흔들기에 여념이 없는 민주당 등 야당이 쉽게 응해줄 리 없었다. 휘발유세를 재원으로 한 도로특별 재정의 방만한 운영을 문제 삼으며 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참의원(상원 격)에서 법안 심의를 거부했다. 법안은 국회에서 잠을 잤고 그 사이 휘발유세 시한은 끝나 버렸다.

여야 정쟁 덕분에 일본인들은 ‘휘발유값 인하’라는 뜻하지 않은 횡재를 맞았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이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휘발유세 폐지는 일본 경제를 골병들게 할 공산이 크다.

휘발유세가 포함된 재고분마저 가격 경쟁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싸게 팔 수밖에 없었던 주유소들은 큰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주유소 평균 하루 33kl의 재고를 갖고 있어 약 300억 엔(약 3000억 원)의 손실이 났다는 분석이다. 휘발유세로 도로 건설비 등을 지원 받던 지방 자치단체들도 4월 한 달간 600억 엔의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다.

중앙정부 세수는 연간 2조6000억 엔이 펑크가 날 판이다. 소비세의 1%에 해당하는 액수다. 그렇지 않아도 막대한 재정 적자에 짓눌려 있는 일본 정부로선 큰 부담이다. 시장에선 정부가 적자 국채 발행을 늘릴 것이란 예상이 나오면서 이미 금리 상승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더라도 휘발유 값이 떨어지면 소비 진작 효과가 있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나올 만하다. 그러나 천만에 말씀이다. 휘발유 값 인하로 근로자 가구의 가처분소득이 약간(0.3%) 늘어나는 건 맞다. 하지만 임금이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재정 악화 등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 오히려 소비가 위축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작년의 건축기준법 개정에 따른 혼란도 비슷한 케이스다. 일본 정부가 내진 설계 검사를 갑자기 강화한 이 법안을 만들자 작년 여름부터 일본에선 주택 신축이 급감했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도산한 건설회사만 35개사다. 주택 착공이 줄어 50만 명의 고용 기회가 사라졌다는 계산도 있다. 시장 충격을 감안하지 않은 전형적인 아마추어 정치·행정의 피해 사례다.

우쓰다 쇼에이 미쓰이물산 사장은 “만약 기업 입장에서 투자하려는 나라의 정치가 지금 일본과 같은 상황이라면 투자를 보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본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작년 하반기부터 크게 줄었다. 외국인 직접 투자액은 2007년 상반기 약 2조2000억 엔에 달했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엔 5000억 엔으로 급감했다. 특히 11월과 12월엔 투자 철수액이 유입액을 웃돌아 유출 초과 현상을 나타냈다.

미국 경기 침체와 국제 금융시장 불안으로 그렇지 않아도 살얼음판인 일본 경제에 ‘폴리티컬 리스크(정치 위험)’까지 가세하자 경제계에선 탄식이 흘러나온다. 미타라이 후지오(캐논 회장) 게이단렌 회장은 최근 “정치와 경제라는 수레의 두 바퀴 중 정치가 제대로 돌지 못하고 있다”며 “그로 인해 경제마저 삐걱거리면 ‘정치 불황’이란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후쿠다 내각의 인기가 바닥을 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일본의 보수 우익 언론인 산케이신문과 후지TV가 지난 4월 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후쿠다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23.8%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각 언론사의 후쿠다 내각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중 가장 낮은 지지율이다.

후쿠다 내각에 실망한 일본 국민들의 관심은 ‘포스트 후쿠다’로 넘어가고 있다. 일본의 차기 총리감으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가장 인기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산케이신문과 후지TV 조사에서 ‘총리로 가장 적합한 인물’을 물은 데 대해 고이즈미 전 총리를 꼽은 응답자가 21.9%로 가장 많았다. 아소 다로 전 외상은 15.9%,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는 11.4%였다. 후쿠다 총리는 6%에 불과했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알기 쉬운 슬로건으로 우정 민영화 개혁 등을 밀어붙였던 고이즈미 전 총리에 대한 국민적 인기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무기력한 후쿠다 총리와 무능한 정치에 대한 반작용이다.

차병석 한국경제신문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

후꾸다 야쓰오 일은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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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8-04-2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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