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ine 제 37호 (2008년 06월)

경기 침체 조기 탈출인가, 착시 현상인가

경기 침체(recession)가 오기도 전에 침체의 늪에서 탈출한 것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착시 현상에 불과한 것인가.

월가의 분위기가 꽤나 좋다. 작년 8월 이후 상실되다시피 했던 자신감이 살아나고 있다. ‘신용 위기가 최악을 지났다’는 얘기는 이제 정설이 됐다.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감도 많이 사라졌다. 국제 유가가 오르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공포감’은 오히려 희석되는 분위기다.

이런 자신감은 시장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뉴욕 증시가 탄탄하다. 물론 ‘베어마켓 랠리(약세장 속의 일시적 강세 현상)’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채권 시장 등에 들어 있던 자금이 증시로 몰리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가 하면 고사 상태이던 모기지 시장도 살아나고 있다. 잔뜩 움츠러들었던 ‘슈퍼 리치(super rich)’의 투자 심리도 살아나 소더비 경매 시장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기업 인수·합병(M&A)도 기지개를 펴는 분위기다.

현상만 보면 경기 침체는 기우일 공산이 크다. 그렇지만 아직은 경계감이 많다. 장마철 때 잠깐 비추는 햇살이나 파란 하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경계감의 골자다. ‘헤지 펀드의 대부’인 조지 소로스는 “신용 위기가 최악을 지났지만 실물경제의 고통은 이제 시작”이라며 ‘일시적 해빙론’을 펼치고 있다.

월가에서는 유보적인 견해가 우세하다. 마음이야 ‘경기 침체 탈출론’에 한 표 던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그렇지만 각종 경제지표는 아직은 ‘일시적 해빙론’을 뒷받침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심리적 지표’와 ‘경제적 지표’가 아직은 헷갈리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한동안 계속될 공산이 크다. 그런 와중에서 일정한 방향성을 찾아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월가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경기 침체 조기 탈출론’이 힘을 얻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경기 침체 예상 외로 짧다-‘경기 침체 조기 탈출론’

신용 위기가 최악을 지났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현재 상당수 사람들은 “신용 위기는 이제 정점을 지나 마무리 국면에 들어섰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월가의 신용위기가 최악을 지난 것은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미 경제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최악의 위기 상황에 들어섰다”고 주장하던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최근 들어선 “신용 위기가 잦아들고 있다”고 수위를 낮췄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월가의 내로라하는 이코노미스트 5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신용 위기가 거의 끝났다’는 사람은 36%, ‘신용 위기가 절반을 지났다’는 사람은 62%로 거의 대다수가 신용 위기는 이제 막바지 단계라는데 동의했다.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조차 “금융시장은 정상을 찾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진단은 자연스럽게 경기 침체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동력으로 연결되고 있다. 물론 미 경제가 이미 침체 상태에 빠졌다는데 이론을 다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지만 경기 침체를 막연히 무서워하는 사람도 많이 없어졌다. “이번 경기 침체는 그 어느 때보다 길고, 심각하며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외치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많이 잦아들었다. 그 틈을 비집고 경기가 2분기를 고비로 침체 상태에서 탈출할 것이란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신용 평가사인 무디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존 론스키는 지난 4월 만 하더라도 경기 침체의 가능성을 90%로 예상했다. 그렇지만 5월에 들어선 60%로 낮췄다. 경기 침체를 공식 판정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 의장인 마틴 펠트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개인적으로 경기 침체에 빠졌다고 생각하지만 심각할 것 같지는 않다”며 “FRB가 기준금리 인하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최근 발표되는 경제지표가 예상보다는 괜찮다. 4월 소매 매출은 전달보다 0.2% 줄었다. 그렇지만 자동차를 제외할 경우 0.5% 증가했다. 소비의 움직임을 알 수 있는 월마트의 1분기 순이익은 예상을 깨고 6.3% 증가했다. 휘발유 값이 갤런(3.7리터)당 4달러에 육박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소비 심리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분석 결과 미 500대 기업의 1분기 순이익은 17%가량 감소했다. 그렇지만 큰 폭의 감소세를 보인 금융 회사를 제외할 경우 오히려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인 것으로 분석됐다.

1분기 세계 경제성장률도 예상보다 나았다. 미국은 0.6%(연율 기준)로 잠정 발표됐지만 상향 조정될 전망이다. 유럽이나 중국 등의 성장률도 비교적 양호했다. 이러다보니 미국의 경기가 침체에 빠진 건 분명하지만 오래가지는 않고 하반기부터 플러스 성장률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경기 침체 이제 시작이다-‘일시적 해빙론’

그렇지만 경기에 대해 경계의 끈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여전하다.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끝 모르게 추락하고 있는 주택 경기와 국제 유가를 앞세운 인플레이션 우려감이다. 주택 경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파문의 출발점이자 미 경기 침체의 근본 원인이다. 주택 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아니 적어도 하강세를 멈추지 않는 한 미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아직은 아니다. 지난 1분기 미국 집값은 평균 12.7% 하락했다. 사실상 사상 최대 하락 폭이다. 주택 사업자들의 체감 경기를 나타내는 5월 중 주택경기지수도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반면 모기지를 갚지 못해 집을 빼앗기는 주택 압류율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발표되는 주택경기지표 대부분이 ‘사상 최악’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을 정도다. 물론 완전히 깜깜한 굴속은 아니다. 지난 4월 중 주택착공 실적은 8.2% 증가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실적이다. 콘도미니엄 착공이 늘어 별 의미가 없다는 분석이 우세하지만 그래도 증가한 건 증가한 것이다. 더욱이 4월엔 주택 경기의 선행지표라고 할 수 있는 건축 허가 실적도 늘었다. 일시적 현상일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좋지 않은 주택경기지표에 익숙한 투자자들로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택 경기에 대해선 아직은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내년에나 가야 바닥이 보일 것이란 전망이 많다. 주택 압류가 줄지 않으면 매물이 감소하지 않고 그렇게 되면 집값 하락은 쉽게 그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경제가 침체에서 탈출한다고 하더라도 당분간 ‘0~1%대 성장률’에 머무를 것이란 전망도 주택 경기가 쉽게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전제를 깔고 있다.

인플레이션도 변수다. 국제 유가와 곡물가는 여전히 상승세다. 국제 원자재 값의 뜀박질이 한풀 수그러들었다고 하지만 아직은 높다. 더욱이 국제 유가가 오르는 것은 투기 수요라기 보다는 실수요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 국제 유가와 곡물가 원자재 값 상승은 물가 상승으로 고스란히 연결될 수밖에 없다.

실제 미국의 4월 중 수입 물가는 전달보다 1.8% 올랐다. 1년 전에 비하면 15.4% 올라 지난 1982년 통계가 발표된 이후 가장 큰 폭의 연간 상승률을 보였다. 고유가가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 결국 제조업의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 물가를 끌어 올리게 된다.

이는 소비 심리를 위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실제 5월 미국 소비자심리지수는 28년 만에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휘발유 소매가가 갤런당 4달러에 육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어떡하든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경기 침체 조기 탈출론’은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여전히 무게를 갖고 있다. 일시적으로 금융시장이 안정돼 모든 게 좋게 해석되고 있지만, 먹구름이 일시적으로 걷힌 것인 만큼 금세 다시 하늘이 흐려질 수 있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노던 트러스트의 이코노미스트인 폴 캐스리엘은 “태풍의 눈은 항상 조용하게 마련”이라며 “신용 위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주택 경기 침체가 경제 전반으로 이제 확산되기 시작한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상태는 태풍의 눈으로 보는 게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로선 어떤 게 맞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갈수록 시장 참가자들의 자신감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시장은 심리 게임’이라고 볼 때 자신감의 강화는 각종 어려움에도 시장이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된다는 걸 뜻한다. 현재의 좋은 분위기가 일시적인 현상일지는 몰라도 자신감이 커질수록 그 ‘일시적인 시기’는 길어질 수 있다. 투자의 기회는 1주일에 한 번 작살로 고기를 잡는 순간만큼 빠르게 지나간다고 한다. 그 찰나의 기회를 잡느냐 여부는 결국 평소 얼마나 준비하느냐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었는지, 아니면 비가 오는 와중에 일시적으로 하늘이 쨍해졌는지는 모르지만 그 맑은 하늘을 이용하는 건 순전히 투자자의 몫이다.

하영춘 한국경제신문 뉴욕 특파원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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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8-07-0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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