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ine 제 42호 (2008년 11월)

미 경기지표에 나타난 불황의 먹구름

미국에서 불황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불황의 골이 1990년대 초반이나 2001년 경기 침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경제학 교수는 이번 경기 침체가 최대 24개월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도 “이번 경기 침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최악이 될 것”이라며 “주택 시장이 안정되지 않으면 경기 침체가 계속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경제지표가 최악의 상황을 예고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일제히 지갑을 닫으면서 소비 위축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9월 소매 판매는 전달 대비 1.2% 감소하며 3개월 연속 하락, 2005년 8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경기 침체와 금융 위기에 따른 신용 경색이 빚은 소비 위축은 기업들의 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은 이날 뉴욕주의 제조업 활동을 나타내는 엠파이어스테이트 지수가 10월에 마이너스 24.6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2001년 지수 산출 이후 최저치로, 신규 주문 출하 재고 등이 부진했다. 미 노동부가 발표한 8월 기업 판매도 2년 만에 최대 폭인 1.8% 감소했다.

미 중앙은행이 발표하는 경제 동향 종합 보고서인 베이지 북에 따르면 9월 미국 경제활동이 12개 전 지역에서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지북은 대출 기준이 한층 강화되고 노동시장 여건이 악화돼 경기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분석했다.

주택 시장 침체가 계속되고 소비자들의 신용 구매가 감소하면서 사상 최악의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을 맞을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10월 15일 미국 워싱턴 DC. 인근 버지니아주의 타이슨스코너 대형 쇼핑몰. 유명 청바지 브랜드인 게스(GUESS)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스티븐 계 매니저는 “작년 이맘때보다 매출이 확 줄어들어 이런 추세라면 예년 같은 크리스마스 경기는 물 건너갔다”고 말했다. “통상 1∼2월에 두 차례 20∼30%씩 정기 세일을 해왔지만 요즘에는 하도 장사가 안 돼 주말을 잡아 가끔씩 40% 세일을 할 정도”라고 말했다. 주변 다른 명품점들도 사정은 다를 게 없다고 한다. 그는 “경기 침체에다 금융 위기에 따른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생필품 가게를 제외한 대부분의 점포들이 매출 감소로 울상”이라고 전했다.

소비 심리 위축으로 미국 소매 업체들은 사상 최악의 연말 크리스마스 경기를 맞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대부분의 소매 업체들은 통상 10월 말 할로윈데이부터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연간 매출의 30∼35%, 이익의 절반이 발생한다. 그만큼 연말 장사가 중요한 셈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탓에 서둘러 할인 세일에 들어가는 점포들이 늘고 있다.

뉴저지 클러스터에 있는 K마트는 10월 말 할로윈데이를 앞두고 벌써부터 매장 한쪽에 크리스마스트리트리를 전시했다. 하지만 할로윈, 혹은 크리스마스 관련 상품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한 여종업원은 아직 “아직 쇼핑 시즌이 아니기도 하지만 고객들이 꼭 필요한 물건 아니면 사길 꺼리기 때문에 크리스마스트리는 작년보다 훨씬 덜 팔릴 것 같다”고 말했다. K마트는 생필품을 판매하는 곳이어서 그나마 매출이 유지되고 있는 편이지만 노르트스트롬 JC페니 등 백화점 들은 연말 매출이 오히려 작년 말보다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1년 중 최대 호황기인 크리스마스 경기에 대한 미국 소매 업자들의 우려는 괜한 엄살이 아니다. 유통 업체인 월마트가 최근 100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3분 1 이상이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가격이 싼 제품 위주로 사고 선물도 줄이겠다고 응답했다. 월마트가 전국적으로 크리스마스 코너를 열어 미리 가격 할인 공세에 나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홈데포는 페인트에서부터 변기 수리 용품까지 1200개 품목에 최대 50%나 깎아주고 있다. 대부분의 소매 업체들이 생존을 위해 공격적인 할인 행사에 들어가는 분위기다.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는 오는 11∼12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휴일 시즌의 소매 업체 매출이 지난해 3.4%보다 낮은 2.5%∼3.0%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관측했다. 이 기간 상품권 매출액도 지난해보다 4% 줄어든 172억 달러로 줄 것으로 예상됐다. 유통업체인 타깃은 한 장에 25달러 이하짜리 상품권으로 구입할 수 있는 제품들을 판촉하고 있을 정도다. 게다가 올해는 이들 시즌의 휴일 수가 지난해보다 5일이나 적다. 일부에서는 1991년 불경기 이후 17년 만에 최악의 크리스마스 불경기를 맛볼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하고 있다.

미 소매업체협회(NRF)는 2002년 이후 최악의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스콧 크루그먼 NRF 부사장은 “내년 중반까지 소매 경기가 개선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NRF는 오는 110월과 12월 두 달 동안 소매업 매출(자동차, 가솔린, 식당 매출 제외)이 지난 10년간 연평균 신장률인 4.4%에 훨씬 못 미치는 2.2%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소비를 주도하는 고소득자들도 소비를 줄이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해리슨그룹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간 10만 달러 이상 버는 고소득자들은 올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는데 작년보다 평균 6%가량을 줄일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짐 테일러 해리스 그룹 부회장은 “10%의 상위 소득자가 50%의 소매 판매를 좌우한다는 측면에서 미국의 연말 경기가 얼마나 썰렁할 지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뉴욕 월가의 명품점들은 초비상이 걸렸다. 주요 고객 기반인 맨해튼의 금융 귀족들이 금융 위기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총 매출액의 20%를 맨해튼 본점에서 거두는 삭스 등은 매출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른 대도시도 연말 소비 경기가 얼어붙기는 마찬가지다. 시카고에 있는 의류 및 액세서리 소매 업체 아키라의 부매니저인 제나 마티넬리는 “모든 사람이 경제에 대해 신경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200 달러짜리 신발을 망설이지 않고 사던 고객들이 이제는 이런저런 이유를 달면서 구매를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소매 업체들이 매출 저하로 시간제 일자리를 줄이고 있는 통에 고용시장마저 얼어붙을 조짐이다. 인력 업체인 맨파워는 이번 4분기에 17년 만의 최저 도·소매업 고용률이 예상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경제가 회복되려면 주택 시장이 안정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은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경기 침체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주택 시장이 안정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진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시장 전망이 악화되는 모습이다.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애리조나 등지에는 계속 매물이 쌓이고 있는데 구매 희망자들은 오히려 줄고 있다. 경기 침체로 실업자가 늘수록 주택 시장은 고전할 수밖에 없다. 토니 시나이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소득이 떨어지면 집 수요는 줄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의 일환으로 유동성을 공급해도 최근 모기지 금리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10월 15일 30년 만기 고정 모기지 금리가 6.75%로 1주일 전에 비해 0.69%포인트 상승했다.

6월 말까지 주인이 살던 집 중 비어 있는 집 비중이 2.8%나 되고 10가구 중 한 집은 세입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임차료 대비 집값에 비춰볼 때 아직 미국 주택에는 적지 않은 거품이 끼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무디스이코노미탓컴에 따르면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평균 집값은 연간 주택 임대료의 22배에 달한다. 지난 20년 동안 평균적으로 15배 정도였던 점에 비춰볼 때 추가로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내년 말, 혹은 늦어도 내후년께 주택가격이 바닥을 확인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 침체가 오래갈 것이란 예상도 이런 전망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연료가 떨어진 로켓이 땅으로 떨어진 이후에나 미국 국민들이 제정신을 차리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익원 한국경제신문 뉴욕 특파원 ik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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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8-11-1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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