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ine 제 42호 (2008년 11월)

日경제 부활의 밑거름 수도권 규제 완화

작년 12월 1일 일본 오사카 인근 사카이시에선 전자업체 샤프의 10세대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공장 기공식이 열렸다. 127만㎡(옛 38만4266평) 규모인 이 공장은 2010년 완공되면 세계 최대 LCD 공장이 된다. 샤프는 이 공장을 발판으로 삼성전자 등과의 LCD 패널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전략이다. 샤프의 사카이 공장 옆엔 LCD 패널 부품 업체 공장도 함께 들어선다. 미국 유리 제조사 코닝, 일본 컬러 필터 업체 토판인쇄, 다이니혼인쇄 등이다. 샤프는 이곳에 박막 태양전지 공장도 함께 짓고 있다. LCD 패널 및 부품과 태양전지 공장 총투자액은 약 1조 엔(약 10조 원)에 달한다.

일본 도쿄 도심에서 남쪽으로 약 6km 떨어진 곳엔 여의도 절반 크기의 인공 섬 오다이바가 있다. 에도막부가 공식 개항을 선언하기 직전인 1853년 서양 함선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든 섬이다. 오랫동안 허허벌판으로 버려져 있던 이곳은 현재 고급 호텔과 대규모 쇼핑센터, 국제회의장 등을 갖추고 도쿄의 새로운 명소로 떠올랐다. 외국인들의 도쿄 시내 관광에서 최우선순위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카이시의 샤프 LCD 공장과 도쿄 오다이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수도권 규제 완화’의 혜택으로 탄생했다는 점이다. 공장 건설로 지금은 활기가 넘치지만 사카이시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장이 들어설 수 없었다. 오사카라는 일본 2대 도시의 주변이고 공항과 항구가 모두 가까운 공장입지로는 최적지였지만 규제에 묶여 있었다.

도쿄뿐만 아니라 오사카까지 공장 신·증설을 제한한 ‘기성시가지 공장제한법’과 ‘공장재배치촉진법’ 등이다. 한국의 수도권 규제와 똑같은 것이다. 사카이 공장은 이 두 법이 각각 2002년과 2006년 폐지됨에 따라 건설이 가능해졌다. 오다이바도 수도권 규제 완화를 배경으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선 요즘 수도권 규제 완화를 놓고 논쟁이 뜨겁다.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김문수 경기도 지사와 그에 반대하는 이완구 충남지사 간 설전은 사상 논쟁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를 보면 수도권 규제 완화 논란은 무의미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수도권 규제 완화가 수도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에 도움이 된다는 건 일본 사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 앞서 수도권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한 일본의 사례는 한국에 반면교사가 될만하다.

일본에서 수도권 규제 완화는 고이즈미 정권 때 본격적으로 단행됐다. 2002년 집권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내세워 규제 철폐에 ‘올인(다걸기)’했다. 지난 2001년까지 무려 11차례에 걸쳐 135조 엔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재정자금을 경기 부양에 투입했지만 실패한 뒤였다. 돈을 쏟아 붓는 경기 부양에 한계를 실감한 일본 정부는 규제를 없애 민간 기업이 스스로 재생할 수 있는 길로 방향을 선회했다.

대표적인 게 50여 년간 유지됐던 ‘기성시가지 공장제한법’과 ‘공장재배치촉진법’을 폐지한 것. 수도권을 묶어 놓고는 국가 경제를 키울 수 없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다. 또 두 법의 실효성도 문제가 됐다. 수도권 규제는 원래 한국보다 먼저 시작됐고, 수도권의 범위도 도쿄뿐만 아니라 오사카까지 적용해 규제 강도도 강했다.

규제 관련법도 △대도시권 내에서 공장 신·증설을 금지하는 ‘공장제한법’ △기업의 지방 이전을 장려하기 위해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주는 ‘공업재배치촉진법’ △공장 설립 시 녹지 등 환경 시설을 일정 비율 이상 확보하도록 한 ‘공업입지법’ 등 다양했다. 급속한 산업화로 수도권이 비대해지자 인구와 산업의 집중을 억제하고 국토 균형 발전을 꾀한다는 취지의 법들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수도권 규제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수도권에 공장을 짓지 못하게 되자 기업들이 지방으로 가는 대신 동남아시아 등 외국으로 빠져나가 버린 것.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본 정부는 수도권으로 다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지방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기업들이 원하는 수도권에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순리라는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2000년 ‘21세기 국토 계획의 모습’이라는 보고서에서 21세기 수도권 계획 구상을 밝힌다. 여기엔 일본의 수도권 지역을 도쿄역으로부터 반경 300km의 넓은 배후 지역으로 설정해 수도권의 개념을 확대하고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과정에서 고이즈미 정권은 2002년 기성시가지 공장제한법을 과감히 없애 버렸다.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변한 데다 핵가족화 진전으로 공장과 대학 등의 증설이 더 이상 대도시의 산업과 인구 집중 요인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일본 정부가 푼 규제는 수도권 규제만이 아니었다. 2001년 이후 대기업·노동·창업 등 분야에서만 총 1500여 건의 규제를 풀었다.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가 출자총액규제의 모델로 삼았던 ‘대규모 회사의 주식보유총액제한제도’도 2002년 철폐했다. 노동 유연성 확보를 위해 파견 사원의 파견 기간을 최대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조치도 취했다. 환경오염 방지 기술 발달로 현실성이 떨어진 환경 규제도 대폭 완화했다.

기업들의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선 합병 절차를 간소화하고 연결결산제도를 도입했다. 창업을 독려하기 위해 최저자본금 규제 특례를 도입했고, 자본금 1엔으로도 주식회사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지난 1995~2005년 중 일본의 제조업 규제는 67%, 비제조업의 규제는 77% 정도 줄었다.

규제 철폐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이 일본으로 유턴(U-turn)하기 시작했다. 소니가 2002년 중국에서 만들던 수출용 8mm 비디오카메라 공장을 일본 나고야 인근으로 옮긴 것을 신호탄으로 주요 기업들이 속속 국내 투자를 늘렸다. 혼다자동차는 도쿄 인근 사이타마현에 300억 엔을 투입해 차세대형 엔진을 생산하기로 했다. 혼다가 일본에 새 공장을 짓기는 30년 만에 처음이었다. 히타치는 20억 엔을 투자해 평판 TV용 필름 생산 능력을 현재의 5배로 늘리기로 했다.

그 결과 2002년 마이너스 7.4%였던 수도권의 설비 투자 증가율은 2005년과 2006년 각각 23.4%와 18.0% 등 두 자릿수대로 뚜렷이 회복됐다. 주목할만한 건 수도권에만 공장 설립이 늘어난 게 아니란 점이다. 일본 전국의 공장 착공 면적도 2002년 850만㎡였던 게 △2003년 930만㎡ △2004년 1250만㎡ △2005년 1410만㎡ △2006년 1570만㎡ 등으로 꾸준히 늘었다. 수도권 규제 완화가 기업들의 설비 투자 확대의 ‘불쏘시개’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이로 인해 2002년 844건이던 일본 내 신규 공장 건립 건수는 지난해 1782건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반면 2002년 434건이던 해외 공장 설립 건수는 지난해 182건으로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일본 재계 단체인 게이단렌 관계자는 “정부가 수도권 규제를 풀어 국내 투자 환경을 개선한 만큼 굳이 생산 관리가 어렵고 기술 유출이 우려되는 동남아나 중국에 투자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투자 활성화는 일자리 창출로 연결됐다. 국내 투자를 확대한 기업들이 하나둘씩 신규 채용을 늘리기 시작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공업 통계에 따르면 2006년 종업원 10인 이상 제조업체의 종업원 수는 747만3379명으로 전년보다 2.3% 증가했다. 그동안 줄기만 하던 제조업체 종업원 수가 15년 만에 늘어난 것이다.

내각부 관계자는 “1990년대 ‘10년 불황’을 탈출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수도권 규제 완화였다”며 “수도권 공장 신·증설 허용 등 지난 15년간 단행한 규제 완화로만 얻은 경제적 효과는 18조3000억 엔(약 180조 원)으로 국민 1인당 14만4000엔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규제만 풀어 경제도 살리고 국민도 배를 불렸다는 얘기다.

차병석 한국경제신문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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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8-11-1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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