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ine 제 43호 (2008년 12월)

경기부양책 놓고 시끌벅적한 일본

일본이 요즘 정부의 경기 부양책을 놓고 시끌벅적하다. 글로벌 경제 위기에 흔들리고 있는 일본 내수 경기를 진작하기 위해 전 국민에게 1만2000엔(약 16만 원)씩 나눠 준다는 ‘특단의 대책’이 논란에 불을 댕겼다.

그냥 쓰라고 돈을 나눠 준다지만 적지 않은 국민들은 “국민 세금을 그렇게 낭비해도 되느냐”며 시큰둥해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 진작에 실효성이 없다”며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전 국민에게 돈을 나눠 주려면 시간과 인력이 엄청나게 필요하다”며 볼멘소리다. 야당은 선거를 의식한 정치성 이벤트라며 공세를 취하고 있다. 누구 하나 반기는 사람이 없다.

현금 지급 논란 때문에 일본 정부가 발표한 다른 경기 부양책들도 그 의미가 퇴색하는 분위기다. 일본 정부로선 내심 가장 인기를 끌 것으로 여기며 내놓았던 ‘현금 지급’이 오히려 애물단지 경기 대책이 돼 버린 셈이다.

일본 정부는 세계 금융 혼란으로 인한 국내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지난 8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내놓았다. 두 대책에 일본 정부가 직접 지출하는 재정은 7조 엔(약 94조 원)이지만 내수 부양 효과는 32조 엔에 달할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책에서 민간 소비를 부추기는 데 초점을 맞췄다. 대책 내용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2조 엔의 현금을 가구별로 나눠 준다는 것. 일본 정부는 당초 2조 엔 규모의 소득세·주민세 감세를 검토했다. 그러나 더욱 광범위하고 신속하게 소비를 유발하기 위해 감세 대신 일반 가구를 대상으로 한 현금 지급으로 방향을 틀었다.

현금은 1인당 1만2000엔씩 나눠 주되 18세 미만 어린이나 청소년과 65세 이상 고령자에겐 2만 엔씩을 지급할 예정이다. 18세 미만 자녀 2명을 둔 부부의 경우 총 6만4000엔(약 86만 원)을 받게 되는 셈이다.

일본 정부는 이 밖에도 지방 고속도로 통행료를 주말과 공휴일에 한해 주행거리에 상관없이 상한액을 1000엔으로 조정하는 한편 평일 통행료도 낮추기로 했다. 도쿄를 관통하는 수도고속도로와 간사이 지역의 한신고속도로의 통행료도 하향 조정하기로 했다. 주식 양도 차익이나 배당에 대한 세율을 20%에서 10%로 낮춰 주는 증권우대세제가 금년 말로 시한이 끝나지만 내년 이후에도 연장 시행하기로 했다.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 보증 한도도 확충해 기업들이 원활하게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가 이처럼 대대적인 경기 부양에 나선 것은 실물경제 둔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세계 금융 위기의 충격으로 인한 일본의 실물경제 악화는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민간 신용조사 회사인 데이코쿠 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올 10월 중 기업 도산 건수(부채 총액 1000만 엔 이상)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3.7% 증가한 1231건에 달했다. 같은 기준으로 조사가 진행돼 비교가 가능한 2005년 4월 이후 가장 많은 것이다. 올 1월 이후 10월까지의 도산 기업 누계치도 1만524건으로 집계돼 연간 기준으로도 2005년 이후 최고를 기록할 예상이다.

내각부가 발표한 경기 상황 조사에서는 현재의 상황을 3개월 전과 비교한 10월중 경기판단지수가 전달에 비해 5.4포인트 하락한 22.6을 기록했다. 2000년 1월 조사 개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한 달 전과 비교했을 때의 하락 폭도 가장 컸다. 이 지수는 택시 운전사나 슈퍼마켓 종업원 등 경기 동향에 민감한 직업군을 대상으로 경기 상황을 조사한 수치여서 현장의 느낌을 잘 반영한다.

지수 악화는 7개월 연속이다. 그동안 지수가 최악이었던 때는 2001년 10월의 27.2였다. 2~3개월 뒤의 경기 전망 지수도 전달에 비해 6.9포인트 낮은 25.2로 역시 과거 최저였다. 전문가들은 미국발 금융 위기가 가장 큰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내수가 얼어붙고 있는 중이지만 정부의 현금 지급을 통한 경기 부양책엔 반응이 썰렁하다. 거리의 시민들 사이엔 “기대된다”는 긍정적인 목소리도 없지는 않지만 “경기 활성화에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란 회의적 시각이 더 많다. 상가에선 “상품권이라면 소비로 이어지겠지만 현금을 주면 저축하고 쓰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도쿄 시내 신바시에서 만난 30대 회사원 가토 야스에 씨는 “가계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경기 활성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며 “그러면서 나중에 소비세를 올리겠다고 하는 것은 반갑지 않다”고 말했다. 지바현에 사는 여성 회사원인 사토 게이코(48) 씨는 “1만2000엔이면 밥값 밖에 더 되느냐”며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중화 요리점 종업원인 마쓰모토 도모시(51) 씨는 “이 돈을 지급하기 위해서 들어갈 경비가 아깝다. 그러면서 소비세 인상을 거론하니 점점 더 정치를 믿기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도쿄 다이토구에서 의류점을 경영하는 야마시타 노부오 (63) 씨도 “현금을 나눠 주면 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퍼주기로 끝날 뿐”이라고 주장했다. 유명 양복 체인점인 아오야마양복의 간부는 “휘발유 값이나 생활용품, 식사대 정도로나 사용하지 않겠느냐. 우리에겐 별 이익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은 기대하고 있다. 기꺼이 바로 사용할 것이다. 상점 측에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택시 운전사·57세·기타가와 다쓰야)는 목소리는 소수의견일 뿐이다.

국민들의 반응이 차가운 건 9년 전에도 비슷한 정책을 썼지만 재정만 축내고 내수 부양 효과가 없었다는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거품 경제 붕괴 후 ‘10년 불황’의 터널을 지나던 일본은 1999년 ‘지역진흥권’이란 상품권 7000억 엔어치를 전 국민에게 나눠 준 적이 있다. 움츠러들 대로 움츠러든 소비 심리를 부추기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당시 나눠 준 상품권 중 32% 정도만 실제 소비에 쓰이고 나머지는 현금화돼 저축된 것으로 분석됐다. 소비 진작 효과가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오히려 상품권을 찍어 나눠 주는데 들어간 행정비용 415억 엔만 헛되게 낭비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이번에도 경기 부양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전문 기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미즈호종합연구소는 이번 현금 지급 정책도 소비로 이어지는 것은 30%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본 국내총생산(GDP) 기여도는 0.1~0.2%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번에 전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 줄 경우 필요한 인건비 통신비 등만 약 2000억 엔이 필요할 것이란 추산도 있다.

야당인 민주당 등은 국민들의 비판적인 시각에 힘을 받아 정부와 여당에 대한 정치 공세의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제1 야당인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로 간사장은 “제대로 된 정권이 할 일이 아니다. 정권을 교체하면 그런 바보 같은 제도는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결국 돈을 줄 테니 한 표 달라는 것 아니냐”고도 비판했다. 시이 가즈오 공산당위원장도 “세금이 들어가는 퍼 주기로는 경기가 좋아질 리가 없다. 결정 경위 자체가 선거 대책에서 출발했다”고 지적했다.

현금 지급 정책에 비판이 더욱 거세진 건 아소 다로 총리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한몫했다. 아소 총리는 지난 10월 30일 경기 부양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는 “현금을 모든 가구에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요사노 가오루 경제재정상이 “고소득자는 지급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아소 총리는 지난 11월 4일 “소득 제한을 법률로 정하지는 않겠다”면서도 고소득자를 대상에서 제외할 뜻을 밝혔다. 불과 며칠 만에 국민에게 한 약속을 뒤집은 것이다.

더 나아가 11월 12일에는 연 수입 1800만 엔 이상의 가구는 스스로 현금 수령을 포기해야 한다는 지침을 정했다. 그러면서도 이를 적용할지 여부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결정하라고 떠넘겨 지자체로부터 “곤란한 것만 지자체에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일본 정부나 아소 총리 입장에선 선심을 썼는데도 뺨을 맞았다며 억울해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실패 사례를 무시하고 실효성도 없는 정책을 밀어붙인 자업자득이니 그리 억울해 할 일도 아니다.



차병석 한국경제신문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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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8-12-1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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