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부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가 해를 넘기면서 올 들어 전 세계인의 관심사는 과연 실물경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몰리고 있다. 예측 기관들이 내놓은 전망치를 보면 한마디로 어둡다. 선진국의 경우 마이너스 성장 국면에 빠질 것으로 내다봤다.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찾아올 새로운 트렌드에 대비해 놓지 못할 경우 영원히 어려워질 수 있다. 올해 실물경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금융 불안이 5부 능선을 지남에 따라 앞서가는 경제 주체들은 증권 금융 분야를 중심으로 앞으로 찾아올 새로운 트렌드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현재 각국들이 글로벌 위기 대처법으로 ‘브라운식 모델’을 유행처럼 추진하면서 침체된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이다. 브라운식 모델이란 영국의 현 총리인 고든 브라운의 이름을 따 붙여진 용어로, 국가의 컨트롤 타워 기능을 강화해 모든 정책을 적기에 결정하고 국민들이 확실히 느낄 수 있도록 대규모로 신속하게 추진해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을 말한다.심지어 지금의 상황을 전시 체제로 보고 모든 국정을 비상경제 체제로 운영하는 국가들도 있다. 현 이명박 정부가 대표적이다. 그만큼 모기지 사태로 국정 상황이 비정상적인 데다 어느 분야보다 경제 부문이 타격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이 비상경제 체제 하에서는 시장보다 국가의 역할이 강조되고 민영화보다 국유화가 더 선호될 것으로 보고 있다.세계 각국들이 뉴딜 정책을 일제히 표방한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발표된 뉴딜 성격의 재정 지출 규모는 세계 국민소득(GDP)의 12%에 이른다. 미국만 하더라도 1930년대보다 더 많은 재원을 쏟아 붓겠다는 계획이다. 케인즈 학파와 혼합경제주의 부활 등 학계와 경제 운영 방식을 중심으로 큰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각국 중앙은행들도 이제는 기준금리를 최소 두 단계 이상 내리는 ‘빅 스텝(big step)’ 금리 인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빅 스텝 금리 인하로 주요국의 기준금리가 당초 예상보다 빨리 ‘제로’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이제 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더 이상 내릴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미국과 일본 이외의 다른 국가들도 올 상반기까지는 기준금리를 계속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기준금리가 ‘제로’ 시대에 접어들면 투자자를 비롯한 경제 주체들은 양면성 때문에 혼란에 빠진다. 금리를 더 이상 내릴 수 없다면 앞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경우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 하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대한 우려다. 반면 기준금리가 ‘제로’가 될 만큼 돈이 많이 풀린 점을 감안하면 유동성 장세에 대한 기대도 떨쳐버릴 수 없다.이 때문에 미 연방준비이사회(FRB)가 들고 나온 것이 ‘양적 완화 정책(quantitative easing policy)’이다. 이 정책은 △기준금리를 ‘제로’로 내리되 △금리 인상 예상 심리를 차단하기 위해 물가가 일정 수준 이상 오르기 전까지 ‘제로’ 수준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앞으로 민간 채권을 사들이거나 팔아서 유동성을 조절해 나가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이 정책이 추진될 경우 무엇보다 국민들의 디플레 기대 심리를 차단해 지갑을 열게 하는 소비 자극 효과가 가장 크게 기대된다. 또 단기 금리보다 장기 금리를 끌어내려 기업들의 설비 투자와 달러 약세로 수출을 증대시킬 수 있는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성장의 세 가지 중심축인 소비와 투자, 수출이 살아난다면 경기는 회복된다.최근처럼 글로벌 위기 시대에 양적 완화 정책을 추진할 경우 유동성을 공급하는 수단으로는 ‘문고리 정책(door knob policy)’이 예상된다. 이 정책은 최소한의 담보로 침실의 문고리만 있으면 돈은 얼마든지 공급할 수 있다는 중앙은행의 특권을 비유해 만들어진 용어다. 돈이 많이 풀리면 금리가 곧바로 오르지 않겠느냐는 이 정책의 약점은 물가가 일정 수준 이상 오를 때까지 기준금리를 ‘제로’로 오랫동안 유지해 보완해 나간다.투자 유망 지역과 유망 산업이 바뀔 가능성이 높은 점은 특히 기업인과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당분간 ‘브릭스’보다 ‘ICK’ 국가들이 더 유망할 것으로 지목했다. ICK는 인도 중국 한국의 영문 첫 글자를 따 만든 용어로 우리가 포함된 점이 눈길을 끈다. 금융 위기가 5부 능선을 지나면 그 이전까지 외자 이탈이 심해 주가와 통화가치가 많이 떨어졌던 ICK 국가들이 앞으로는 저가 메리트와 환차익 기대로 외자 유입과 주가 간의 ‘황금률(golden rule)’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물론 길게 보면 브릭스 국가들이 세계경제를 주도한다는 기존의 시각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특히 중국이 글로벌 금융 위기 속에서도 위안화 블록권을 확대하는 등 세계 곳곳에 힘을 확대해 나가고 있어 ‘팍스 시니카’ 시대가 당초 예상보다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올해 ICK 국가들이 유망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포트폴리오적인 관점이다.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유망 산업으로는 환경 분야가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환경 분야에서만 50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아폴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우리 정부도 저탄소 녹색 성장 정책을 추진해 차기 성장 대안을 마련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유럽 일본 중국 등 대부분 국가들도 이와 비슷한 정책을 추진해 나갈 방침을 표명했다.단기적으로 뉴딜정책과 빅 스텝 금리 인하 등으로 글로벌 금융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고 하더라도 위기 극복 이후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끌어가기 위해서는 성장 대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종전에도 1929년 대공황 이후 군수산업,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정보기술(IT), 2001년 9·11테러 이후 금융 산업 등이 유망 산업으로 부각됐다.세부적으로는 사회간접자본(SOC)과 관련된 업종이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 각국들이 표방하고 있는 비상경제 체제의 최대 목표인 신속한 경기 부양과 고용 창출을 위해서는 허시만의 전·후방 연관 효과(backward or forward linkage effect)가 높은 도로 교량 항만 댐 등 SOC 투자에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같은 재원을 투자할 때 SOC가 다른 분야보다 고용 창출 효과가 최대 2배가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곳이 금융 분야다. 전통적인 시중은행과 투자은행을 혼합한 형태의 CIB, 고객인 투자자의 역할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모기지 사태 이전까지 감독이 소홀해 비교적 활동이 자유로웠던 투자은행과 헤지 펀드를 비롯한 각종 투기성 펀드들은 활동이 위축될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금융상품은 최우선적으로 투자자들이 알 수 있는 단순한 상품일수록 각광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모기지 사태를 계기로 복잡한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대신 투자자 보호에 치중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금융상품 개발자든, 투자자든 간에 탐욕과 기대 심리에 젖어 거품을 발생시키는 등의 또 다른 위기 소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면서 투자 수단별로 기대 수익률을 평준화해 경제 각 부문별로 자금이 골고루 유입될 수 있도록 해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에서다.새로운 트렌드가 확실하게 정착되기 전까지는 언제든지 일탈(noise)현상이 발생해 경제 주체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이번에도 △엔·달러 환율 80엔대가 붕괴될 가능성 △올해 말께에는 재정 적자 누적으로 국채 발행이 급증돼 채권 투자에 일대 혼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 △부동산 경기가 2010년 이후에나 회복 가능할 정도로 침체 국면이 지속될 가능성 등은 기업인과 투자자들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Global Econo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