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ine 제 45호 (2009년 02월)

신용시장 풀렸는데 대출시장은 꽁꽁…미국 금융 시장 두 얼굴

대공황 이후 최악의 신용 공황을 겪으면서 붕괴 위기에 몰렸던 금융시장은 최근 들어 표면적으로는 다소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금융사 간 대출이 재개되면서 리보금리(런던 은행 간 금리)는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3개월짜리 런던은행 간(리보) 금리와 하루짜리 초단기 대출인 오버나이트 인덱스 스와프(OIS) 금리 간 스프레드가 15일 현재 0.91%포인트로 줄었다. 리보금리가 지속적으로 떨어진 데 따른 결과다. 작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이 스프레드는 3.64%포인트까지 치솟았다. 리보금리는 전 세계 360조 달러에 달하는 금융시장에서 금리 벤치마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리보 금리 하락은 자금시장 안정의 청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재무부와 은행들이 돈을 빌릴 때 각각 부담해야 하는 금리 차(3개월 기준)인 트레저리 유로 달러(TED) 스프레드도 1%포인트 이내로 줄었다. TED 스프레드도 리먼 사태 이전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다.

자금시장이 급속히 안정을 되찾아가는 이유는 각국 정부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 이후 은행권에 총 1조 달러의 신규 자본을 투입한데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공격적으로 자금을 풀고 있는 덕분이다.

이처럼 신용 관련 수치는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지만 거래 자체는 여전히 위축돼 있다. 활발하게 돈을 빌리고 빌려줄 정도로 신용시장이 완전 정상화됐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은행 간 자금 흐름은 어느 정도 정상을 되찾아가고 있지만 소비자 금융과 기업 대출은 여전히 침체돼 있다. 이는 침체된 경기가 되살아나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전체 경제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하는 미국은 카드론 오토론 등 소비자금융이 살아나야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비전통적인 수단까지 동원해 시장에서 모기지 관련 증권을 매입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결과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는 연 5% 수준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주택 시장 침체에 대한 우려와 은행들의 모기지 대출 기준 강화 영향으로 모기지 대출은 아직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 대출 쪽 상황은 더 심각하다. 섬유 업체인 아메리칸어패럴은 지난해 12월 1억2500만 달러의 채무를 가까스로 재연장하면서 230만 달러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다. 또 일정 규모 이상의 자본을 소비하지 않기로 은행과 약속했다. 아드리안 코알레스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정상적으로 경영을 할 수 있는 기업조차 합리적인 조건으로 대출을 얻지 못하고 있다”며 “신용시장이 여전히 얼어붙은 상태”라고 말했다. 실제로 작년 11월 말까지 3개월 동안 대기업에 대한 대출은 이전 3개월에 비해 3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차입이 어려워진 기업들은 채권시장에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정크본드를 발행하고 있다. 에너지 기업인 엘파소는 작년 12월 5억 달러의 정크본드를 연 15% 금리로 발행했다. 정상적인 시장 금리의 두 배 이상을 지급한 것이다. 자금 시장 상황에 불투명하다고 보고 일단 자금을 확보해 놓았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미 재무부가 2500억 달러의 구제금융 자금을 대형 상업은행에 투입했는데도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미국 현지에서도 세금을 수혈 받은 만큼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은행들이 금고 문을 열어야 하지 않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은행들은 신규 대출을 할 상황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단 기업에 대출이 나가면 자산 가치가 달러당 60∼80센트 정도로 떨어진다. 대출이 부실화되면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져 자본을 더 확충하거나 자산을 매각해야 한다. 이 때문에 신규 대출보다 이미 디스카운트된 기존 대출을 매입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는 게 은행들의 입장이다. 게다가 대출을 하기 위해선 레버리지(차입)를 일으켜야 하는데 대부분의 은행들은 레버리지를 줄이려고 하고 있다. 또 좋은 조건으로 차입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주택 시장 침체와 소비자금융 분야에서 발생할 추가 부실을 감안하면 대형 은행조차 자본이 충분하다고 얘기하기 어렵다. 신용카드와 상업용 모기지 등이 또 다른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 스쿨 교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전 세계 신용 손실이 2조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 했다.

세계경제 침체의 골이 얼마나 깊고 오래갈지는 금융사들의 디레버리지 정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 위기가 터지기 직전 세계 금융사들은 5조 달러가량의 리스크가 없는 자본을 갖고 있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3조3000억 달러의 자본으로 43조 달러를 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경제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시장가를 적용하는 마크투마켓(mark-to-market) 룰을 적용하면 글로벌 금융사들의 자본 중 85%의 손실을 본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상당 부분 손실을 자본 확충으로 보전했다. 그래도 추가로 손실이 발생하면 레버리지 비율이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특히 은행 자산 손실은 경기 침체에 따른 미래 손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 소비자 신용, 차입매수(LBO), 이머징 마켓, 기업 외화 부채 등의 손실이 8000억∼9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되면 적어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1조7000억 달러 규모의 신용 손실이 발행하는 것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이를 반영하면 전체 금융권의 레버리지가 18배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레버리지를 줄이려면 자본을 확충하거나 자산을 매각해야 한다. 예금을 늘리거나 대출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당장 은행들이 단기에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대출을 줄이는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의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성장하려면 신용 확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은행들의 디레버리지 작업이 한동안 더 진행된 후에야 미국 경제는 회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 위기 관련 손실은 1조 달러]>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에 따른 금융사들의 손실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해부터 금융사들의 손실 및 자산상각 정보를 축적해 온 블룸버크통신의 집계에 따르면 작년 12월 중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 가운데 미국 금융사들의 손실 규모가 6780억 달러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유럽 금융사들의 피해 규모로 보면 된다. 이 같은 손실은 주택 시장 침체로 모기지 증권의 시장가격이 폭락한 데 따른 것이다. 피해 규모에 비춰볼 때 금융사 연쇄 도산이 불가피했지만 상당 수 금융사들이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거나 스스로 자본 확충을 통해 파산 위험을 가까스로 넘겼다. 이 기간에 금융사들이 확충한 자본 규모는 총 9280억 달러. 미국 정부는 7000억 달러의 금융권 구제금융 자금(TARP) 중 3350억 달러를 은행 보험사 등에 투입했다.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는 미국 금융사들만 이미 1조 달러 이상의 손실을 기록했고 앞으로 1조4000억∼2조2000억 달러까지 피해 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1조 달러 붕괴(The Trillion Dollar Meltdown)’를 발간해 서브프라임 사태에 따른 신용 피해 규모를 예견했던 찰스 모리스 씨는 “앞으로 은행들은 상환 받을 수 있는 곳에만 대출을 하는 기본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익원 한국경제 뉴욕 특파원 ik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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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9-02-1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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