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그동안 우려해 왔던 각국 간의 통화 마찰이 본격화될 태세다. 특히 위안화 절상을 놓고 미국과 중국 간의 마찰이 ‘통화 전쟁’으로 비유될 정도로 표면화되고 있다.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이례적으로 위안화 절상 문제를 거론했다. 이어 신임 재무장관으로 임명된 티머시 가이트너는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목해 위안화 절상 압력을 본격화해 나갈 뜻을 비쳤다. 이에 대해 다보스포럼에 참석했던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미국의 이런 요구에 정면으로 대응해 나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미국이 위안화 절상 문제를 들고 나온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그중 하나는 오바마 정부가 당면한 모기지 사태가 중국이 외화보유액을 이용해 과도하게 미국의 국채를 매입한 결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또 중국이 미국의 저가 시장을 장악해 오바마 정부의 주지지층인 중산층 이하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시각도 작용하고 있다. 이런 요인 외에도 21세기 들어 세계경제와 국제통화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중심국인 미국과 새로운 중심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간의 주도권 확보 경쟁에서 양국 간의 갈등이 비롯되는 측면도 있다.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지난해까지 연평균 9% 이상의 높은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국제 금융시장에서 중국의 부상도 눈부시다. 현재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여전히 유대계 자금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국제 기채(起債) 시장에서만큼은 화교계 자금이 제2선 자금으로 확고한 입지를 굳힌 상태다.더 주목되는 것은 중국이 인접국을 대상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움직임이다. 이미 중국을 재결합하는 작업은 본궤도에 올랐다. 최소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국 본토와 대만, 홍콩 간의 중화 경제권은 태동했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화교 자본을 매개로 한 화교 경제권 움직임도 구체화되고 있다.미국이 모기지 사태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이후 이런 세력 확장 작업은 더 빨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인접국 이외에 다른 지역에 속한 국가, 심지어는 아프리카 국가를 대상으로 중국과의 결제 시 위안화를 사용하라고 압력을 넣는 등 위안화 블록권까지 형성할 태세다. 위안화 블록권이 형성되면 세계경제 질서는 본격적인 팍스 시니카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중국의 팍스 시니카 움직임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는 것이 오바마 정부다. 이 때문에 위안화 평가절상을 시작으로 한 중국에 대한 압력은 중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섬유 쿼터 문제 등 다른 분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중국이 미국의 견제를 받을 정도로 국제사회에서 급부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위안화 가치가 중국 경제 여건(fundamentals)에 비해 지나치게 낮게 운영해 왔던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오바마 정부는 보고 있다. 고정환율제 포기 이후 위안화 가치는 꾸준히 절상돼 왔으나 최근 들어서는 달러당 6.8위안 내외에서 주춤거리고 있다.실제로 실질실효환율, 환율 구조 모형, 경상수지 균형 모델 등 한나라 통화의 적정 수준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위안화의 적정 수준을 추정해 보면 달러당 5.0위안 후반대로 나온다. 이에 따라 오바마 정부는 중국이 시장 잠식을 뛰어 넘어 ‘산업찬탈(産業簒奪)’을 하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중국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다.따라서 미국은 갈수록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국제사회의 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이 경제 여건에 맞게 위안화 가치를 절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절상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중국에 대해서만 인위적인 달러화 평가절하 경쟁으로 맞설 것이라는 입장도 밝히고 있다.중요한 것은 중국이 미국의 이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부시 정부 시절에도 위안화 절상 요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행히 당시 중국은 고도성장을 유지해 불만 속에서도 미국의 이런 수용해 나가 실제로 큰 마찰은 없었다.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그 후 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8.28위안에서 6.8위안대로 떨어진 것이 단적인 예다.하지만 이제 중국은 경착륙을 우려할 정도로 경제 사정이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은 6%대로 잠재 수준인 9%를 훨씬 밑돌았다. 이 때문에 중국도 당면한 최대 현안인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위안화를 절하해야 한다. 이미 외환시장에서는 이런 여건을 반영해 지난 3년 동안 지속돼 온 절상 추세가 주춤거리면서 절하되는 움직임이 감지된다.세계경제의 양대 축인 미국과 중국 간의 이 같은 통화 평가절하 경쟁은 인접국들에게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이론적으로 한 나라가 자국 통화 약세를 통해 개선한 경쟁력은 자체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접국들의 경쟁력을 빼앗는 근린 궁핍화 정책에 해당되기 때문이다.만약 이런 점을 외면하고 미국과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평가절하 경쟁을 할 경우 양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와의 통화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의 평가절하로 경쟁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들도 자국의 통화가치를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세계 통화 전쟁으로 비화되는 것이다.우리나라는 어떤가. 어떻게 보면 우리는 미국과 중국 간의 샌드위치에 놓여 있다. 제3국 시장이 중국에 의해 빠르게 잠식당하고 있고 대부분 국내 기업들이 중국 진출을 서두름에 따라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1990년대 초 일본이 겪은 산업 공동화 문제가 심각한 경제 현안으로 대두됐다.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위상이 크게 달라진다. 만약 표면화되기 시작한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 구조 속에서 양대 국가에 대한 수출 비중이 40%를 웃도는 우리가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할 경우 지금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미국의 아시아 정책 변화에 대비하는 과제가 중요하다. 현재 미국과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마찰을 빚을 수 있는 현안이 적다지만 미국이 아시아 정책을 추진할 때 국제무역상의 상호주의 원칙을 자주 활용해 온 점을 감안하면 최종 목표인 중국의 우회 목표로 우리에 대해서도 압력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여러 현안 중에서 지금 약세를 보이고 있는 원화는 절상 압력이 가장 우려된다. 과거와 달리 우리 수출 구조가 많이 변했지만 추세적으로 원화 절상이 예상되는 만큼 수출 상품의 고부가·고기술화에 박차를 가하고 수출 지역의 다변화에 노력할 필요가 있다.중국의 정책 변화에도 대비해 놓아야 한다. 갈수록 중국이 주변국에 대해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시점에서 무역 불균형이 심하고 제3국 시장에서 중국과 수출 경합 관계가 가장 높은 우리에 대한 압력이 높아질 것은 확실하다. 우리가 당한 수입 규제 중에서 중국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해 주는 대목이다.쉽지 않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미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까지 포함하는 동북아 지역의 협력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런 관계 설정이 갈수록 구체화되고 있는 유럽 경제권과 미주 경제권, 동아시아 경제권 간의 3대 광역 경제권 체제에 적응하면서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표면화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의 주도권 싸움에서 우리 경제의 안정성과 독립성을 보장받는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해설위원 schan@hankyung.comGlobal Econo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