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ine 제 46호 (2009년 03월)

지상 최대의 작전, 미국 경기 부양책의 운명은?

“글로벌 경제 회생은 미국이 리드할 것이다.” 지난 2월 13일 힐러리 클린턴 미국 신임 국무장관은 의미심장한 얘기를 했다. 한국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4개국 순방을 앞두고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에서 가진 공동 기자회견 자리에서였다. 그는 미국의 외교적인 리더십뿐만 아니라 월스트리트발 금융 위기로 망가진 미국의 경제적인 리더십을 되찾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무장관까지 나선 것을 보면 미국의 다급한 경제 사정과 자존심 회복 의지를 가늠할 수 있다.

힐러리의 말 한마디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결자해지 측면에서다. 글로벌 경제 위기의 주범이 미국이고, 세계경제는 미국의 현명한 수습책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 경제와 주식시장이 살아나야 세계 각국의 경제와 주식시장이 회생한다. 연일 대책을 쏟아내는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오바마 대통령은 3대 경제 회생 축으로 승부를 걸었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이를 “세 개의 다리를 가진 의자”라고 표현했다. 전기 충격식 초대형 경기 부양으로 경기를 벌떡 일으켜 세우고, 기업과 가계에 돈이 돌게끔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며, 금융 위기의 진앙지인 월스트리트를 강력히 규제·감독하겠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가 최근 갓 구워 내놓은 대책은 경기 부양책과 금융시장 안정책이다. 경기 부양 규모는 역대 최대로 787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6.7%에 달한다. 1930년대 대공황 때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부양책으로 내놓은 뉴딜정책이 당시 GDP 대비 2% 남짓했던 것과 비교하면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오바마 정부는 내년까지 2년간 근로자와 기업에 2882억 달러의 감세 혜택을 줘 소비와 투자를 진작시키고 4988억 달러의 재정을 지출해 도로·교량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건설·보수할 계획이다. 감세의 경우 근로자 소득세 감면 1162억 달러, 기업 신·재생에너지 시설 투자 등에 대한 세금 감면 140억 달러 등이 포함된다. 재정 지출로는 SOC에 467억 달러 등이 투입된다. 오바마 정부는 경기 부양을 통해 최대 350만 개의 일자리를 보존·창출하고 GDP를 최대 3.5%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1월 4.9%였던 미국의 실업률은 올 1월 7.6%로 치솟았다. GDP 성장률은 지난해 1분기 0.9%에서 4분기에 마이너스 3.8%로 추락했다.

장밋빛 일색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부양 규모 자체가 턱없이 모자란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가계와 기업의 소비 위축을 채우려면 부양 규모가 1조3000억∼1조4000억 달러는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득세 감면 덕분에 근로자들의 주머니에 돈이 들어가도 언제 실직할지 모른다는 우려에 소비보다는 저축이나 빚 상환 등에 사용할 것이라는 감세 무용론도 제기된다. 지난해 부시 정부는 1680억 달러에 이르는 세금을 환급했으나 경기는 침체 일로를 걸었다. 세금 감면이 효과가 나지 않으면 재정 적자만 키울 수 있다. 미국의 재정 적자는 올해 2조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벤치마킹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뉴딜정책은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 정작 대공황을 해소해 준 요인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정교하고 촘촘한 금융시장 안정 대책이 필요하다.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지난 2월 10일 발표한 금융 안정 대책은 금융사 부실 자산 처리, 소비자금융 확대, 주택 압류 위기 해소다. 금융사의 재무 건전성을 높여 금융 불안의 뿌리를 제거하겠다는 뜻이다. 재무부는 최대 1조 달러 규모의 민·관 투자 펀드를 조성해 금융사로부터 부실 자산을 사 주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최대 1조 달러를 풀어 기업과 소비자 대출을 확대하기로 했다. 주택 압류 위기에 처한 주택 소유자 보호를 위한 대책으로는 500억 달러를 지원할 예정이다. 주로 주택 담보대출(모기지)의 월 상환이자 부담 등을 덜어주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부터 미국 은행들이 부실 대출과 자산 가치 하락으로 손실 처리한 규모는 1조 달러대에 달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골드만삭스는 은행 손실이 2조∼3조 달러 더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 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규모는 1조2000억 달러에 이른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 신용카드 대출, 고위험 채권 등의 규모도 7조 달러대에 달해 은행권의 잠재 부실은 계속 늘어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일부 대형 은행들의 부실이 심각해 ‘형장으로 향하는 사형수’와 같다고 비유했다. 이들 은행이 갖고 있는 자산을 현재 시장가격으로 평가하면 대형 은행 중 자본 잠식에 빠진 곳이 나올 수 있으며, 사실상 지급불능 상태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민간 경제 컨설팅 업체인 글로벌인사이트의 니겔 골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금융시장 불안을 진정시키지 못하면 어떤 재정 정책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7870억 달러의 경기 부양책에다 금융시장 안정책으로 최대 2조 달러를 투입하기로 한 것은 이를 감안한 것이다.

금융시장 안정책은 아직 설익었다. 특히 민·관 투자 펀드 방안에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평가다.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여론조사에서 65% 이상의 응답자는 ‘조치가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란 반응을 보였다. 자금 조달 방안이 빠졌고 인수할 부실 자산의 가치를 어떻게 산정할지도 밝히지 않았다. 차라리 부실 은행들을 과감하게 국유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단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재무부는 은행을 국유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민·관 투자 펀드로 은행들의 부실 자산을 사들이고 재무 건전성을 평가해 은행에 자본을 지원해 주는 선에서 그치겠다는 계획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때 부실 은행을 효과적으로 국유화해야 할지 여부를 검토했지만 국유화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결론 냈다”고 밝혔다. 그는 “은행들의 숫자와 경제 규모, 민간 자본이 핵심적인 투자 수요를 충족시켜 온 미국의 전통을 감안하면 정부가 국유화 시스템을 관리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국유화를 끊임없이 주장하는 측은 비관적이다. 부실이 불어나는 등 재무 건전성이 불안한데 정부가 지원한들 은행들이 대출을 늘리겠느냐는 것이다. 지난해 구제금융 1차분 3500억 달러를 359개 은행에 쏟아 부었지만 대출 실효성은 크지 않았다. 미국의 금융 위기를 일찌감치 예견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국유화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는 부실 은행을 국유화한 뒤 우량 자산과 부실 자산을 구분해 이 가운데 일부 부실 자산은 시장가격대로 매겨 민간 투자자들에게 팔고, 우량 자산은 새로 상장하거나 전략적인 투자가들에게 매각하는 방향으로 다시 민영화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남는 부실 자산은 부실 자산 처리 기구를 만들어 처리하면 된다고 했다.

루비니 교수는 1992년 스웨덴이 같은 방식으로 부실 은행을 처리해 성공한 사례를 꼽았다. 사실 은행 국유화의 원조는 미국이다. 미국 정부는 대공황 시절 부도 난 은행 6000곳의 지분을 인수한 적이 있다. 그런 미국이 국유화를 겁낼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재무부가 향후 은행들의 부실을 정리할 수 있는 더욱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국유화 압력은 한층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에 대한 규제·감독을 강화하기 위한 종합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파생상품과 헤지 펀드 규제, 신용 평가사 감독, 각종 감독 기구 통폐합 밑그림이 추가 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경제는 경기 부양, 금융 안정, 월가 개혁이라는 3대 축이 맞물려 돌아가야 본격 회복될 전망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부의 대책이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고 예고했다. 그러면서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Nothing is worse than doing nothing)”고 강조했다.

김홍열 한국경제신문 워싱턴 특파원 com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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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9-03-1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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