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의 춘제(春節: 설날) 시즌이 지난 2월 9일 대보름을 기점으로 끝났다. CCTV 신사옥을 태워버릴 정도로 격렬하게 터지던 폭죽 소리도 이젠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은 춘제 이후 전투 모드에 돌입했다. 작전명은 바오바잔(保八戰). 바오바잔은 8%대의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한다는 것. 8%대 성장은 중국 지도부가 설정한 올해 최우선 과제다. 공산당 집권 안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올해 2400만 개 일자리 창출의 마지노선이다.그러나 바오바잔의 결과를 쉽게 예단하기는 어렵다.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의 흐름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낙관론자들은 4조 위안(약 800조 원) 규모의 내수 부양에 기대를 걸고 있다. 중국 내부에선 이 같은 내수 부양 정책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자신하고 있긴 하다. 중국의 경제학자나 관리 치고 8%대 성장률 달성을 자신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외국의 시각은 다르다. 모건스탠리는 5.5%의 성장률을 전망하는 등 비관론이 우세하다. 글로벌 경기 침체의 쓰나미에서 중국만 독야청청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높다.이런 상황을 두고 중국의 한 경제학자는 “중국은 지금 경착륙과 연착륙 사이에 놓인 외줄을 위험스럽게 타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말 경제지표만 보면 중국은 이미 경착륙으로 기운 것처럼 보인다. 작년 4분기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6.8%였다. 1분기 10.6%에 비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7년 만에 6%대 성장률에 진입했다. 1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2%에 머물렀다. 작년 2월 8.7%에 비하면 폭락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성장률과 물가가 동시에 급락하며 완연한 디플레 조짐이 나타났다. 안으로 들여다보면 더 좋지 않다. 지난 1월 중국의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7.5% 감소, 석 달 연속 뒷걸음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대외무역 흑자는 391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중국의 수입이 더 큰 폭(43.1%)으로 감소한 때문이다.작년 12월 산업생산 증가율도 5.7%로 1월부터 11월까지 월평균 13.7%를 크게 밑돈다. 그나마 높아진 것은 소비와 투자다. 작년 소비 증가율은 21.6%로 전년보다 4.8%포인트 높아졌다. 고정자산 투자 증가율도 25.5%로 0.7%포인트 올라갔다. 그러나 이 수치도 정부가 돈을 쏟아 부으면서 내수와 투자 촉진에 올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미동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내구 소비재의 판매가 급감하고 구매 단가가 낮아지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중국삼성 박근희 사장)”는 게 그 주된 이유다. 불경기로 고급 제품을 사던 사람들이 중저가 제품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소비 시장에서 숫자와 체감경기는 완연히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 자동차 시장에선 베이징현대차의 위에똥(아반떼급)등 소형차는 인기 차종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파세트 등 기존 중형 세단 차량은 재고만 쌓이고 있다. 월급을 몽땅 소비한다고 해서 웨광쭈(月光族)라고 불리는 중국의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 100위안(약 2만 원)으로 1주일 살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숫자로 볼 수 없는 요소들도 불안감을 더해준다. 중국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실업이다. 중국 정부는 도산 기업 수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홍콩 언론들은 작년 1~11월 중 광둥성에서만 7만여 개의 기업이 무너졌다고 보도하고 있다. 900만 명의 농민공(농촌 출신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올해 새로 배출되는 610만 명의 대학 졸업생들은 갈 곳이 없다. 중국 정부가 내수 부양을 위기 타개의 키워드로 내세웠지만 내수가 살아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게 문제다. 당장 일자리가 없어지거나 갈 곳이 없는 2600여만 명의 실업자들이 내수 부양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줄 것인지 불확실하다. 불경기에 사회적 불안까지 겹칠 경우 중국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중국 정부의 경착륙 막기 노력은 눈물겹다. 농촌에서 TV나 세탁기 휴대전화 냉장고를 살 경우 판매 가격의 13%를 보조해주는 ‘자뎬샤샹(家電下鄕)’ 정책이 2월 1일부터 전국에서 시행된다. 자동차 철강 조선 등 10대 산업 지원 방안도 업종별로 속속 발표되고 있다. 수출품의 세금 환급률도 대폭 인상되고 외국인이 집을 살 경우 1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는 규제도 없앴다. 경기 활성화에 부담이 되는 규제는 몽땅 풀고 기업에 대한 지원은 부활 중이다.약발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작년 10월부터 14개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자뎬샤샹’ 정책으로 저가 가전제품의 판매가 증가 추세다. 1월 세탁기 판매는 지난해 12월보다 4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경제 체질이 수출 중심에서 내수 중심으로 전환되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세계은행은 당초 9.2%로 잡았던 올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7.5%로 하향 조정했다. 골드만삭스는 6.0%, 피치는 7.2%를 제시했다. 도이체방크 수석경제학자인 마쥔은 “8% 성장률을 유지하려면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4조 위안의 투자로는 크게 부족하다”며 “기업 투자가 대폭 줄어드는 상황에서 8% 성장률을 지킨다면 올해 재정 적자는 1조 위안을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8% 성장률을 지키는데 드는 비용이 과다하다면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6~7%로 낮추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또 다른 부담은 중국을 둘러싸고 미국과 유럽연합(EU)의 환율 조작국 논쟁과 반덤핑 관세 공방 등 전방위적인 경제 마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백악관의 해명과 원자바오 총리의 유럽 순방으로 긴장감이 누그러지고 있지만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서 경제 마찰이 무역 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EU는 최근 중국산 볼트 제품에 대해 향후 5년간 7억5600만 달러의 관세를 매기기로 결정했다. 중국산 스크루와 볼트는 EU에서 수입하는 물량의 60%를 점유하고 있다. 특히 작년 9월까지 12개월간 중국산 제품의 시장점유율은 17%에서 26%로 올라갔다. 이에 대해 중국은 EU가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있다고 강력히 반발하며 WTO에 제소하기로 했다. 중국은 EU가 중국산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조금만 올라가면 덤핑의 올가미를 씌운다고 비난했다.이와 함께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재무장관인 티머시 가이트너가 중국을 환율 조작국이라고 지적한데 대한 중국의 반격도 강경해지고 있다. 중국 사회과학원 금융연구소의 차오훙후이는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이 미국 국채를 계속 사줘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역 흑자를 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부시 행정부의 재무장관이었던 헨리 폴슨은 “금융 위기는 중국의 과도한 저축률 등으로 저금리가 발생한데 따른 것”이라고 주장, 중국 측이 근거 없이 책임을 떠넘긴다며 강력히 반발했었다.중국의 불편한 심기를 고려,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은 1월 26일(현지시간) “가이트너의 발언은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 유세에서 한 말을 옮긴 것이며 이에 대해 정부가 어떤 결론도 내린 바 없다”고 긴급 진화에 나섰다. 가이트너는 상원에 보낸 인준 청문회 서면 답변서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믿고 있다”고 밝혔었다.경제 위기가 심화되면 될수록 보호무역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리며 무역이나 환율 분쟁이 확전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인허증권의 수석경제학자인 줘샤오레이는 “오바마가 경선 과정에서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면서 “미국의 보호주의는 이미 국제사회의 걱정거리가 됐다”고 말했다.조주현 한국경제신문 베이징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