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ine 제 46호 (2009년 03월)

불황기 키워드는 ‘저가격’ ‘신시장’ ‘친환경’

‘싸거나, 친환경이거나, 새 시장을 개척하거나.’ 세계 동시 불황으로 주요 기업들이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사상 최고 이익을 올린 일본 기업들의 성공 비결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일본 상장사들을 대상으로 2008 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 법인세차감전계속사업이익(이하 계속사업이익, 옛 경상이익) 전망치를 집계한 결과 두 자릿수 증가율로 사상 최대 이익을 낼 기업은 54개사에 달했다.

이들 기업의 고수익 배경은 불황기에 허리띠를 졸라맨 소비자들 사이에서 저렴한 제품으로 인기를 모았거나, 인터넷 등으로 독창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새 시장에 도전했거나,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친환경 분야에서 호응을 얻은 기업들이었다. 불황기 성공 키워드는 ‘저가격’ ‘신시장’ ‘친환경’이라는 얘기다.

우선 불황기 제품 판매를 늘릴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는 역시 저렴한 가격이다. 소비자들의 가벼워진 주머니를 공략하는 데는 가격 인하가 유효한 수단이기도 하다. 일본의 가구 인테리어 전문 업체인 니토리는 작년 6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소파나 침구 등 1000여 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20% 내렸다. 박리다매를 노린 것이다. 그 결과 손님들이 꾸준히 늘어 매출과 이익이 동시에 증가했다. 이 회사는 올 3월 말 결산에서 계속사업이익이 295억 엔(약 4500억 원)으로 22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신발 판매 업체인 ABC마트도 부츠 등산화 등 저렴한 가격의 자사 개발 상품이 매출 증대를 견인하면서 이익이 211억 엔에 달해 사상 최고 기록을 깬 경우다. 저렴한 가격으로 고객들의 각광을 받기는 캐주얼 의류 브랜드인 유니클로도 마찬가지다. 유니클로는 작년 12월 매출액이 전년 같은 달에 비해 32% 급증하면서 ‘불황 상품의 황제’란 닉네임까지 얻었다. 유니클로의 월간 매출액 증가율이 30%를 넘은 것은 2001년 이후 7년 만이다. 일본의 백화점과 전문점 등을 가리지 않고 의류 매출이 ‘죽을 쑤고 있는’ 상황이란 걸 감안할 때 놀라운 실적이다. 유니클로는 2008 회계연도(2007년 9월∼2008년 8월) 매출액과 영업이익도 각각 5876억 엔과 874억 엔으로 전년 대비 모두 두 자릿수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유니클로의 성공 요인은 고유한 사업구조를 통해 제조원가를 낮춘 것이 핵심이다. 일본 의류 유통업계에서 보기 드문 ‘제조 소매업’이라는 분야를 선구적으로 개척한 것이 유니클로다. 일본 대부분의 의류 업체는 제조업체나 도매상으로부터 제품을 납품받아 판매하지만 유니클로는 제조 단계에서부터 깊숙이 개입한다. 이 때문에 발 빠르게 기획성 히트 상품을 내놓을 수 있고 제조원가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물론 가격만 싸다고 모든 상품이 불황 때 히트하는 것은 아니다. 유니클로의 성공 요인도 ‘싼 가격’만이 유일한 건 아니다. 유니클로가 지난해 히트시킨 제품 중 하나가 겨울 내복인 ‘히트텍’이다. 일본에서만 2000만 장 이상 팔린 히트텍은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이 히트텍은 몸에서 발산되는 수증기를 흡수해 열을 발생시키고 섬유 사이의 공기층이 열을 차단하는 기능성 신소재로 만들어졌다는 게 특징이다. 저렴한 가격에 실용적 기능성을 갖춘 것이다. 이처럼 유니클로는 소비자들의 숨겨진 니즈(Needs)를 찾아내 제품화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유니클로는 실제 브래지어 기능이 합쳐진 민소매 여성 속옷, 겉옷인지 내복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세련되게 디자인한 내복 등 히트 상품을 줄줄이 쏟아내고 있다. 하나같이 ‘저렴하면서도 멋지고 실용적’이라는 특성이 공통점이다. 바로 그 점이 불황기 히트 상품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이다.

블루 오션 같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성공한 기업들도 있다. 일본의 세븐은행은 주로 현금자동입출금기(ATM)만을 운영해 금융업을 하는 독특한 회사다. 최근 편의점과 공항 증권사 등에 ATM 설치를 늘리면서 수익이 늘어난 경우다. 세계적 금융 위기로 대부분 은행이 적자를 내거나 수익이 급감했지만 세븐은행은 전년 대비 12%의 이익 증가율을 기록할 전망이다.

최근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게임기 업체인 닌텐도도 블루오션에서 성공한 케이스다. 닌텐도의 성공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2004년 내놓은 게임기 닌텐도DS와 2006년 선보인 비디오 게임기 위(Wii)가 대히트했기 때문이다. DS와 위는 작년 말까지 전 세계에서 각각 9622만 대와 4496만 대가 팔렸다. 덕분에 닌텐도는 2004년 이후 3년간 매출액이 3.2배, 영업이익은 4.4배로 불었다. 불황에도 불구하고 판매 호조가 지속돼 2008 회계연도엔 매출 1조8200억 엔, 영업이익 5300억 엔을 달성할 전망이다. 예상대로라면 이익 규모로는 일본 최대 기업인 도요타자동차를 제치고 일본 상장사 중 1위를 차지하게 된다.

특히 DS는 단순 게임뿐만 아니라 영어 학습, 지능 개발 등 교육적인 게임 타이틀을 개발해 게임기에 대한 부모들의 저항감을 최소화했다. 위는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운동 삼아 즐길 수 있는 게임기라는 게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DS는 ‘교육’, 위는 ‘가족’과 ‘건강’이란 게임기의 블루 오션을 개척한 셈이다.

세계적인 환경 보호 의식 확산이 좋은 실적의 밑거름이 된 기업들도 있다. 공장에서 나오는 폐유를 보일러 연료로 재활용하는 독자 기술을 갖고 있는 다이세키는 기업들의 환경의식이 높아지면서 계속사업이익이 전년 대비 12% 늘어날 전망이다. 원자력발전소 부품과 자재에 특화된 일본제강소도 원전 건설 확대로 급성장하고 있다. 불필요한 디자인이나 색상 등 ‘거품’을 뺀 실용 위주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무인양품(無印良品, MUJI)’도 ‘친환경’이란 시대 흐름을 탄 브랜드 중 하나다. 무인양품은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싼 가격으로 확보할 수 있는 양질의 친환경 소재 발굴, 제품의 핵심 기능과 관계없는 광택 염색 등 불필요한 공정의 생략, 로고 등의 장식을 최소화한 포장의 간략화 등이 특징이다.

한마디로 ‘거품을 뺀 친환경 실용성’으로 불황기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무인양품의 콘셉트는 심플한 디자인과 기능을 추구하는 소비 트렌드와 맞아떨어져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일본에서 요즘 잘 팔리고 있는 전동자전거도 비슷한 경우다.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자동차 운행을 줄이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각광 받고 있는 게 자전거다. 특히 전기 모터를 달아 언덕도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는 전동자전거는 노인이나 주부는 물론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기름 값이 크게 올라 승용차를 갖고 다니기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자전거를 타기엔 체력이 부담인 직장인들이 전동자전거를 선택한 것이다.

불황이라고 시장에서 소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소비가 줄어들긴 하지만 그래도 필요한 소비는 이뤄진다. 다만 소비 여력이 줄어든 만큼 소비자들의 눈은 더 까다로워진다고 봐야 한다. 단순히 싼 것만으론 소비자들을 잡을 수 없다. 저렴하면서도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플러스알파’의 가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최근 히트 상품과 성공 기업들은 불황기 소비자들이 원하는 ‘플러스알파’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차병석 한국경제신문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

유니클로 런던매장 광고판

뉴욕에 있는 닌텐도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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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9-03-1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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