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세계 경제를 화폭에 담는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얼마 전 서양 미술사에 대한 책을 뒤적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경제 문제에 해박한 화가가 있어 세계 경제를 소재로 풍경화를 그린다는 상상을 해 본 것입니다. 아마도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고 바다에는 거센 풍랑이 이는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대공황의 악몽을 일깨웠던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가 터진 지 3년이 지난 지금, 세계 경제는 여전히 위기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아일랜드 등에서 시작된 유럽의 재정위기는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불길이 이탈리아 등 유럽 내 다른 국가로 번져가는 양상입니다.

미국 경제 역시 더블 딥의 우려 속에 급기야 국가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사상 초유의 수모를 겪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일본도 이제는 아예 체질화된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모양새입니다. 새로운 국제 질서에서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도 인플레이션 압력 등으로 인해 구원투수 역할에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온갖 악재에 휘둘리고 있는 세계 경제의 이런 모습은 서양화에 종종 등장하는 폭풍우 속의 배를 떠올리게 합니다. 집채 같은 파도가 당장이라도 배를 집어삼킬 듯 으르렁대고 먹구름 가득한 하늘에서는 뇌성벽력이 번득이는 그런 풍경 말입니다.

생각이 미친 김에 인터넷상의 한 갤러리에서 ‘폭풍우’를 검색해 보니 앞에 묘사한 것과 유사한 내용의 작품들이 수십 건 검색됐습니다. 그런데 그중 상당수 작품에서 하나의 공통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 사이로 한줄기 빛이 비치거나 구름의 테두리에 옅은 빛이 비치는 장면이 그것입니다. 폭풍우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 맑은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암시하는 듯 보였습니다.

이 그림들을 보면서 생각은 다시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이라는 서양 속담에 미쳤습니다. 우리말로 의역하자면 ‘아무리 안 좋은 상황에서도 희망은 있다’ 정도일 것입니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1997년의 동아시아 금융위기 때 이 속담을 제목으로 한 칼럼을 발표해 위기 후의 세계 경제에 희망을 던져주기도 했습니다. 당시처럼 세계 경제도 지금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지만 다시 좋은 날이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위안이 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마음속에도 ‘silver lining’의 희망이 깃들기를 기대해 봅니다.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