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택시
[한경 머니= 한용섭 편집장] ‘변두리 어디쯤에 냄새 나는 나의 고향/ 암울한 사랑 하나 싣고/ 나의 아버지 가볍게 술잔 하나 흘리시며 떠나가신다/ 살짝 묻혀 있던 이 술렁거림의 도시는/ 흔한 당신의 추억이 되어/ 바람처럼 쓸려오는 어둔 손님들 모두 다 싣고/ 비린내가 밴 뒷골목/ 작게 빛나는 손가락만 한 담배 하나 물고서/ 나의 아버지 눈물 없던 어머니 울리시며 떠나가신다’

대학시절 노트에 갈겨 쓴 ‘아버지의 택시’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스무 살 언저리에 집을 나가셨고, 15년 뒤 지방의 어느 종합병원에서 임종 직전 마주했던 아버님의 직업은 택시운전사였죠.

이른 아침에 수면제 대신 잔술에 기대어 억지로 잠을 청하고,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이면 택시를 몰고 골목길 술 취한 손님들을 부지런히 날랐을 당신. 언젠가는 등을 돌리시고 누워 자신은 돈벌레 같다며 꺼억꺼억 소리 죽여 눈물을 훔치던 아버지의 모습이 선합니다.

그 시절에는 당연히 가족여행이나 외식은 꿈도 꿀 수 없었죠. 자신의 일에다가 발목을 꽃삽으로 꾹 묻고, 가족과의 소통은 그다음이라고 생각했던 예전 아버지 세대의 노동은 인내 그 자체였을 겁니다. 이제 사람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당연시하고, 간혹 회식이 있을 때면 가족들에게 ‘늦어서 미안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게 기본 에티켓이 돼 버렸습니다.

하지만 유엔 지속가능개발연대(SDSN)가 발표한 ‘2017년 세계 행복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155개국 중 56위에 그쳤다고 합니다. 겨우 낙제를 면한 수준이죠. 또 통계청과 한국삶의질학회가 공동 조사한 ‘국민 삶의 질 종합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6년부터 201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은 28.6%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삶의 질은 11.8% 개선됐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혹자는 부의 양극화가 사회 전반으로 그 온기를 전하지 못한 이유라고 하고, 아직 사람들이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놓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요. 분명히 수치로도 확인되듯 과거보다 부의 질은 올라왔는데 말입니다.

이는 한경 머니가 2018년 무술년(戊戌年) 핵심 트렌드로 급부상한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을 신년호 빅 스토리로 다루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과 삶, 결코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분신들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앞으로는 행복을 위한 밸런스 조절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한창수 고려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것이 무조건 일을 조금하고, 휴식시간을 길게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충고합니다. 행복이라는 레시피가 결코 산술적인 이분법으로 구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쩌면 토마스 리만 주한 덴마크 대사의 충고처럼 ‘아무리 바쁘더라도 여가시간에는 최대한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따뜻한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 노력’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미국의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디어도어 루빈의 “행복은 입맞춤과 같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어야만 한다”는 말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