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노트]이모티콘과 나
[한경 머니=한용섭 편집장]집을 나서면 시작됩니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디지털의 끈으로 연결된 나와 주변 사람들의 일상이 말이죠. 사람들은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에 고개를 푹 숙여 시선을 고정한 채 앞도 보지 않고 걸어갑니다. 막무가내로 훅 들어오는 그들을 피해 걷는 길은 아슬아슬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오죽했으면 스몸비족(smartphone+zombie: 스마트폰에 열중하며 걷는 사람들을 좀비에 빗댄 말)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싶습니다.

직장에 도착해서도 촘촘한 디지털의 끈은 느슨해지지 않습니다. 직장동료들과 카카오톡으로 업무 상황을 주고받고, 이메일을 확인한 뒤 모니터 앞에 죽치고 앉아 하루를 보냅니다. 틈틈이 모임밴드에서 인사를 주고받고,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안부를 주고받는 일은 덤입니다.

웃습니다. 얼굴을 직접 보여 주는 대신 나의 미소를 대신하는 일은 이모티콘의 몫입니다. 가끔 하루의 고단함을 이모티콘에 담아 보내기도 합니다. 나의 다양한 감정들은 간단하게 몇 개의 이모티콘이 대변합니다. 속내를 들켜서는 안 됩니다. 잘못했다가는 ‘꼰대’라는 비아냥을 듣거나 상대편에게 하루 용량 이상의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모티콘으로 표현되고 남은 나의 잔여 감정들은 매일매일 그대로 내 마음 위로 쌓입니다. 정작 내가 누구인지, 솔직한 마음상태는 무엇인지는 그다지 중요한 관심거리가 아닌 겁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문제가 집을 나선 이후는 물론 최근에는 집 안에서도 종종 일어난다는 겁니다.

최근 ‘스마일마스크증후군’이 심각하다고 합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상대를 대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슬픔과 분노 같은 감정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는 심리적 불안 상태를 말합니다. 특히 최근 현대인들은 시시각각 급변하는 디지털 트렌드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주변 사람들의 SNS를 탐색하며 나 홀로 정체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에서 ‘나다움’에 대한 갈증은 더욱 늘어난다고 합니다.

한경 머니가 2020년 새해 첫 빅 스토리로 ‘디지털 미로 속 나를 찾다’를 내건 이유는 바쁘게만 달렸던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는 가장 기본적으로 ‘나다움’에 주목해 보자는 취지입니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디지털 공간에서는 자기 자신을 과대 포장하거나 자기방어에 급급한 경우가 많습니다. 더구나 이모티콘으로 대변되는 디지털식 소통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기도 합니다.

정여울 작가는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라는 책에서 ‘마음 챙김’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나 자신의 진짜 속내는 셀프(self)’라고 강변하며, “생의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보다 상대를 더 깊이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에고(ego)와 셀프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2020년. 한경 머니의 독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단순한 이모티콘 안에 가두지 말고, ‘나다움’의 소중함을 찾아 헤아리는 그 출발점을 만드시길 빕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6호(2020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