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노트]따로 또같이 웃는 지혜
[한경 머니=한용섭 편집장]어느 날 중학생 딸이 혼자 거실에서 웃습니다. 마치 누군가와 즐겁게 담소를 나누듯 말이죠. 무슨 일인가 하여 거실에 나와 보면 딸은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누군가와 게임을 하거나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가끔씩 얼굴이나 이름도 모르는 말 그대로 ‘누군가’와 말이죠. 이 모습에 마냥 웃을 수는 없지만 주말에도 학원에 가야 하는 사교육에 지친 아이들이 궁여지책으로 만들어 낸 ‘느슨한 연대’가 아닌가도 싶습니다.

해마다 발간되는 유명 트렌드 서적 <라이프 트렌드 2020>에서는 올해 가장 주목할 트렌드 키워드로 ‘느슨한 연대(weak ties)’를 지목했습니다. 또 빅데이터를 통해 트렌드를 전망하는 <2020 트렌드 노트>는 다양한 문화 현상 가운데 하나로 ‘느슨한 연대’를 꼽기도 했죠.

수많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상의 여러 관계 등을 통해 우리는 이미 ‘느슨한 연대’를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인 가구의 증가와 그에 따른 혼밥, 혼술 등 나 홀로 즐기기 문화의 확대. 어쩌면 ‘끈끈하게 함께’라는 것이 조금 불편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는 빅데이터 분석기업 다음소프트의 생활변화관측소가 <2020 트렌드 모니터>에서 올해를 이끌 키워드로 ‘혼자만의 시공간’을 꼽은 이유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따로 나 홀로’는 행복하고 ‘또 같이 함께’는 불편하기만 한 걸까요. 아무리 홀로 즐기는 넷플릭스 감상과 코인노래방이 대세라지만 여전히 우리는 개인의 취향을 찾아 다양한 온·오프라인의 커뮤니티에서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좋아합니다. 단, 과거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개인의 취향보다 조직의 결속력을 강조하는 것에 다소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죠.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 ‘끈끈한 연대’의 주어가 ‘우리’였다면 최근 ‘느슨한 연대’의 주어는 ‘개인’이라고 말이죠.

<라이프 트렌드 2020>의 저자인 김용섭 날카로운 상상력 연구소장은 우리가 ‘끈끈한 연대’라고 믿어 왔던 대표적인 3가지가 가족, 직장, 인맥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최근 집단주의적 문화가 퇴조하고 개인주의적 문화가 부상하면서, 전통적인 가족관과 직장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이 그의 전언입니다.

김 소장은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시점에 우린 선택을 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연결돼 있는 관계가 가지는 장점은 일부 취하되, 그런 연결이 주는 부담스러움이나 복잡함은 덜어 내겠다는 태도가 ‘느슨한 관계’를 만들어 냈다”며 “집단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다소 이기적인 태도로 보이지만,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태도다. 그리고 이건 개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선택이다”라고 전했습니다.

한경 머니는 3월호 빅 스토리 ‘新 동반의 법칙, 느슨한 연대’에서 이 같은 트렌드를 풀어냅니다. 느슨하게 연대하면서 누가 누구를 구속하지 않는, 내 감정에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웃음의 지혜를 말이죠.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8호(2020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