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글쓰기’ 특강, 글이 곧 그 사람이다
[big story-리더의 文章]
[한경 머니 = 강원국 전 대통령 연설비서관·<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리더는 글 쓰는 사람이다. 글은 생각 쓰기다. 생각은 말로도 할 수 있지만 다듬어진 생각은 글로 표현된다.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이 빈곤한 것이다. 글로 쓰지 못하는 생각은 존재하지 않거나 정리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을 쓰지 못하면 리더 자격이 없다. 세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말을 많이 하고 말을 잘해야 한다. 그래야 잘 쓸 수 있다. 말 없는 불도저는 더 이상 필요 없다. 리더는 말과 글로 일하는 사람이다. ‘말보다 실천’이 아니라 말이 곧 실천이다.

첫째 말을 많이 하라. 글 쓸 일이 있으면 먼저 말해보라. 말하면 생각이 나고 생각이 정리된다. 생각이 없으면 말할 수 없다. 말하기 위해서는 자기 의견, 견해, 입장, 시각, 관점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말해보면 쓸거리가 생각난다. 아니, 생각날 때까지 말해보라. 반드시 가닥이 잡힌다. 그렇게 말해본 후 쓴 글이 이해도 쉽다. 말하듯 쓴 글이 읽기도 쉽다.

말하는 것이 글쓰기보다 쉬운데, 왜 곧장 글을 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나의 졸저 <대통령의 글쓰기>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후 5년여가 지난 시점에서 썼기 때문이다. 그사이 나는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 술자리 등에서 두 대통령에 관해 얘기했다. 말하다 보니 책이 써졌다.

나는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고 믿는다. 특정 주제에 관해 10시간 말할 수 있으면 그 주제에 관한 책 한 권을 쓸 수 있다. 10시간 동안 말한 내용을 녹음해서 거기에 살을 붙이면 책 한 권이 된다. 출판사에서 3년간 일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

둘째 국어사전을 끼고 살라. 글쓰기는 어휘력 승부다. 생각의 범위는 어휘력 분량만큼이다. 독서를 많이 못해서 어휘력이 빈약하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을 열어놓고 글을 쓰면 된다. A4 한 장 정도 글을 쓰면 적어도 3~5개 단어를 국어사전 검색창에 쳐보게 된다. 쳐보면 비슷한 말이 나온다. 유의어라고 한다. 그중에 더 맞는 단어 혹은 평소 안 쓰는 단어를 찾아 바꿔주면 된다.

어휘력이 늘지 않는 것은 늘 쓰는 단어만 써서 그렇다. 안 쓰는 근육을 사용해줘야 한다. 평소 쓰지 않던 단어를 내 글에 쓸 때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글이 좋아진다. 내 어휘력이 향상된다. 왜 이처럼 쉬운 일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가장 쉽게 글을 잘 쓸 수 있는 길이다. 소설가 김훈을 보라. 국어사전을 찾아보는 것만으로 명문을 쓴다. 이는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부하직원이 써 온 글을 검토할 때에도 몇 개 단어는 국어사전에 쳐보라.

결국, 글쓰기는 더 맞는 어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더 맞는 단어를 쓸수록 글이 좋아진다. 이해하기 쉽고 명료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 왜 그렇게 글을 고치냐고 물었다. 더 맞는 단어로 바꾸기 위해서라고 했다. 마크 트웨인도 그랬다. 적당히 맞는 단어와 딱 맞는 단어는 번갯불과 반딧불 차이라고.

셋째 세 가지 틀을 갖춰라. 먼저, 생각 틀이다. 글쓰기는 나름의 틀이 필요하다. 틀이 없으면 막연하다.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거나 글을 쓰려 할 때,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것은 틀이 없어서다. 내가 모신 두 대통령이 갖고 있는 생각 틀은 이런 것이다. 어떤 사안이 벌어졌을 때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이다.

쟁점에 대해 나는 찬성과 반대 어느 쪽인가. 장점과 단점, 긍정과 부정, 낙관과 비관이란 측면에서 생각하면 어느 쪽에 가까울까. 이 문제를 한쪽 면만 보지 않고 좀 더 다각도로 볼 수는 없을까. 혹은 이 문제를 일으키게 한 원인을 더 한층 다단계의 인과관계로 따져볼 수는 없을까. 이 사안을 보수와 진보의 입장 차이로 정리하면 어떻게 될까. 이상과 현실, 이론과 실제, 원칙과 실행, 이성과 감정이란 견지에서 보면 어떻게 될까.

이것을 했을 때 명분과 실리는 무엇인가. 위협요인과 기회요인, 거시와 미시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통념이나 고정관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부분과 전체, 보편성과 특수성이란 관점에서 볼 수는 없을까. 이 생각과 저 생각을 합하고 융합하면 어떤 생각이 나올 수 있을까. 사안에 따라 거기에 맞는 틀을 적용해 생각해보는 것, 이것이 첫 번째 틀이다.

다음으로, 정리의 틀이다. 생각을 글로 쓸 때 정리가 필요하다. 자료를 찾아 요약하는 데도 정리 과정이 있어야 한다. 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일기는 오늘 한 일과 느낀 점, 즉 사실과 느낌이란 틀로 쓴다. 독후감은 줄거리와 저자 소개, 읽은 소감, 책에 대한 평가, 즉 정보와 해석과 평가라는 틀로 쓴다. 칼럼은 현상과 진단, 해법이란 틀로 쓴다. 그런데 우리는 학교에서 서론-본론-결론, 기-승-전-결이란 틀만 배웠다. 이런 틀은 구체적이지 않다. 실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질적인 틀이 필요하다. 내가 겪은 리더들이 사용하는 정리의 틀을 소개하면 이렇다.

쓰고자 하는 내용을 한마디로 정의한 후 그 이유와 근거를 댄다. 첫째, 둘째, 셋째 이런 식으로 세 가지, 혹은 다섯 가지로 정리하는 것도 방법이다. 관찰한 내용을 묘사한 후 그것에 관한 설명과 해석을 붙일 수도 있다. 내 의견을 말하고 그에 관한 반대의견을 소개한 후, 내 쪽으로 결론을 내리는 정-반-합도 있다. 비교와 대조라는 틀로 비슷한 점, 다른 점을 얘기할 수도 있다. 어느 것을 나누거나 합치는 분석과 종합이란 틀도 있다. 주장하고, 그 이유를 댄 후 예시를 들고 다시 주장하는 주장·이유·예시-주장이란 틀도 있다. 무엇인가를 제안하고, 그것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말한 후 실행 방안과 예상 이익을 말할 수도 있다. 목표를 제시하고, 현황을 얘기한 후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전략과 방법을 말하는 틀도 있다. 여러 대안을 제시하고, 이들 안에 대한 장단점을 분석한 후, 일정한 선택 기준을 갖고 하나의 안을 고른 다음, 그것의 기대효과를 설명하는 방식도 있다. 시간 순이나 공간별로 쓰는 경우도 많다.

끝으로, 고치기 틀이다. 고치기의 기본적인 틀은 넣기, 빼기, 옮기기, 수정하기, 다시 쓰기다. 구체적으로 보면 군더더기 없이 쓴다, 구체적으로 쓴다, 정확하게 쓴다, 쉽게 쓴다 등이다. 리더들은 이런 고치기 체크리스트가 20여 개 머릿속에 있어야 한다. 글을 고칠 때는 이런 체크리스트 1번부터 20번까지 하나씩 하나씩 체에 거르듯 걸러봐야 한다. 이런 고치기 틀이 있기 때문에 일관성 있게 고칠 수 있다. 때에 따라 오락가락하지 않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만의 스타일이랄까 문체를 만든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단문으로 쓴다, 접속부사를 사용하지 않는다, 수사법 없이 담백하게 쓴다라는 고치기 틀을 갖고 있다. 이런 틀을 가지고 일관되게 고치면 글만 보고도 누구 글인지 알 수 있게 된다. 고치기 틀의 가짓수가 많아 체가 촘촘할수록 고칠 게 많이 눈에 띄고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리더는 구성원들이 글을 잘 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줘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인지 모른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유해야 한다. 글은 아는 것으로 쓴다. 즉 정보로 쓴다. 글을 쓰는 이유, 목적, 취지, 맥락, 배경까지 충분히 설명해줘야 한다. 글 쓰는 과정에서는 믿고 위임해줘야 한다. 눈치 보면서, 안 혼나기 위해 쓰는 글은 좋을 수 없다. 칭찬받기 위해, 상사를 위해 글을 쓰게 만들어야 한다. 피드백도 중요하다. 쓴 글에 대해 지적보다는 칭찬 비중이 큰 것이 좋다.

글은 사는 만큼 쓴다. 글에는 그 사람의 인격과 살아온 경험이 묻어난다. 글이 곧 그 사람이다. 잘 쓰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

강원국 전 대통령 연설비서관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8년 동안 대통령의 말과 글을 쓰고 다듬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때에는 연설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에는 연설비서관으로 재직했다. 청와대 시절 외에도 김우중 전 대우 회장과 조석래 전 효성그룹 회장이 전경련 회장이던 때에 스피치라이터로 일했고, 대우증권과 벤처기업, KG그룹 등에서 주로 글 쓰는 일로 20여 년 동안 밥 먹고 살았다. 전북대 초빙교수(기초교양교육원)로 학생들도 가르친다. 전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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