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는 책을 통해 어떠한 가치를 실천해야 하는가
[big story-
리더의 文章] 장은수의 ‘책을 통한 자기경영’

[한경 머니 =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예전에 기업가는 다소 ‘신비의 존재’였다. 그러나 만인과 만인이 이어져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초연결사회에서는 그때까지의 모든 규칙이 바뀐다.

경영자 자신이 기업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무형자산이 된다. 기업가가 책을 써서 독자를 설득하거나 열광시키는 일은, 자신의 내적 가치를 증명하는 장대한 모험에서 결국 보물을 획득하는 일과 마찬가지다.

경영자로서 사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인생이다. 고도로 집중된 의식을 요하는 날카로운 통찰과 오직 현장에서만 쌓이는 풍부한 경험과 변화무쌍한 시장의 파도에 올라타는 과감한 용기가 중첩되면서 만들어지는 한없는 갈증이야말로 경영의 내면을 드러낸다. 특히, 출판 산업의 경영은 아주 특별하다. 책은 단순히 제품이 아니라 문화이기도 한 까닭이다.

출판은 저자가 쓴 원고를 원료로 책이라는 제품을 제조하는 일을 한다. 정확히 말하면, 읽기를 창조하는 것이 출판의 업(業)이다. 더 확실히 말하면, 출판은 쓰기와 읽기를 연결하는 일을 한다. 그러나 책(읽기)을 둘러싼 매매 행위는 분명히 경제활동에 속하지만, 책이 궁극적으로 남기는 것은 하나의 문화다. 책은 사유의 경로를 형성하고, 취향의 나침반을 제공하며, 가
치의 정수를 표현한다. 그래서 책의 세계에는 세상에서 가장 지적이고, 가장 감성이 예민하고, 가장 지혜로운 인간들이 드나든다.

만약 어떤 경영자가 책을 쓰고 싶다면, 바로 이러한 세계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인생 전체를 다루는 자서전이든, 특정 기간의 활동을 다루는 회고록이든, 또는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해서 경영이나 마케팅이나 자기계발 등에 대한 노하우를 이야기하려는 전문 서적이든 별로 상관없다. 그가 어디로 가든지 간에 이미 그곳에는 인류 역사를 한 차례쯤 바꾸어 놓았을 거인들이 죽음과 망각마저 거부한 채 열변을 토하는 중일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 엄연한 사실 앞에서 놀랍도록 겸손했다. 애플 같은 거대 혁신 기업의 잘 알려진 독재자였지만, 죽음을 앞둔 그는 자기 삶에 영원성을 부여하는 일에 착수하면서 최고의 전기 작가이자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름 높은 월터 아이작슨을 초대했다. ‘집필 과정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해서는 안 되며 사전에 보여 달라고 해서도 안 된다는 조건’에 선뜻 응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당신 책이니까요. 읽어보지도 않겠습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스티브 잡스>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려 나간 전기 중 하나가 됐으며, 인류는 애플의 혁신 정신을 역사적 뿌리를 갖춘 내밀한 부분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책의 세계에서는 독자 역시 만만하지 않다. 독자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다. 책에는 특정한 효용이 없기에 독자가 책을 고르는 일은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과정에 속한다. 하나의 책을 선택해서 읽고 서가에 꽂아 두는 일은 자신의 자아를 시험하는 것과 같다. 한 인간이 무슨 책을 읽었는가를 보면 우리는 틀림없이 그 인간 자체를 알 수 있다.

서가에 꽂힌 책들은 한 인간의 내면적 가치의 목록과도 같다. 서가를 되는 대로 방치하는 것은 자기 내면에 쓰레기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책 기획이나 출판 관련 컨설팅 등으로 경영자 사무실을 방문할 때마다 가끔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브랜드 이미지 관리에 커다란 비용을 들이면서 서가를 보면 얼굴이 화끈댈 정도의 도서 목록으로 손님을 맞는다. 서가 전문가 도움을 받든지, 단골 서점을 정해 두고 책방 일꾼과 정기적으로 대화만 나누어도 참변을 피할 수 있을 텐데.

독자들은 유별나게 까다롭다. 사소한 부분까지 주목해서, 호오를 기록하고 자발적으로 퍼뜨린다. 전체가 훌륭하다면 더욱더 좋지만, 독자가 기억하고 공유할 만한 구절 한 줄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한 인간의 가치는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 초패왕 항우는 역사의 승리자가 아니었다. “힘은 산을 뽑을 수 있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다”는 말 한 마디로 그는 인류에게 ‘비분’이라는 감정을 알 수 있도록 했기에 불사의 존재가 됐다.

“멈추지 않고 계속 가는 거다. 그곳에 도달할 때까지는 멈추는 것을 생각하지도 말자. 그리고 그곳이 어디인지도 깊이 생각하지 말자.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멈추지 말자.” 나이키의 창립자 필 나이트는 아마도 이 말을 남기려고 <슈독>을 썼을 것이다. 무언가 운동화 회사의 창립자답지 않은가. 운동이란 무엇인가. 정지가 없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스물네 살 때 운동의 본질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세계 최대의 운동화 회사를 창립할 만하지 않은가. 멈추지 않는 자만이 승리의 여신을 만날 수 있고, 승리의 여신에게서 축복받은 자만이 멈추지 않을 수 있다. 이처럼 잘 정제된 문장 한 줄은 독자를 한 기업의 중핵에 놓인 무형의 가치에 동참하도록 만든다.

예전에 기업가는 다소 ‘신비의 존재’였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소비자들이 알지 못할 장막 저 너머에서 기업의 빛을 조절하는 일을 했다. 소비자들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혁신이 불러일으키는 성과에 주로 주목했을 뿐, 기업이 지향하는 가치(사명)를 따지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만인과 만인이 이어져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초연결사회에서는 그때까지의 모든 규칙이 바뀐다. 연결 가치가 사실상 기업 가치의 전부를 이루는 세상에서는 경영자 자신이 기업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무형자산이 된다.

물리적 제품을 파는 굴뚝기업은 아직 이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지만, 정보 기반 디지털 기업에서는 경영자라는 브랜드 자산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편이다. 그들은 자신을 찬양하고 기업을 홍보하는 일에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돈과 지위를 활용하는 그러한 종류의 일방적 메시지는 문화적으로 촌스러울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자기 이미지를 부식하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 에릭 슈미트, 마크 저커버그 등은 글을 쓰고 연설을 하며 책을 출판하는 활동을 통해서 전혀 다른 쪽으로 움직인다. 그들은 인류의 미래를 향한 비전을 마련하고, 일하고 살아가는 방식의 혁신을 촉구하며, 인류 공영을 향한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한다. 잭 웰치가 기업의 내부에 갇혀 있었다면, 이들 실리콘밸리의 후예이자 히피의 자손은 사회로 직접 파고든다.

하버드대에서 있었던 최근의 연설에서 저커버그는 말한다. “우리는 밀레니얼 세대입니다. 목적을 찾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 세대의 도전은, 모든 사람들이 목적의식을 갖는 세상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략)… 목적이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커다란 어떤 것의 한 부분이며, 그것에 필요한 존재이고, 우리가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목적은 진정한 행복을 창조합니다.”

한 개인이 자신을 넘어서는 초연결체의 일부가 돼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애쓰는 세상, 즉 페이스북의 세상을 ‘목적’이라는 고결한 언어를 찬탈해서 우아하게 표현함으로써 저커버그는 전 세계인의 열광을 순식간에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모두가 연결된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확산되는 것은 ‘가치 있는 생각’이다.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가 아직도 남아 있지만, 인류는 유례없는 풍요를 누리는 중이며 공존을 향한 위대한 한 걸음을 나날이 걷고 있다. <사피엔스의 미래>에서 스티븐 핑커가 설파했듯 인류는 갈지(之)자 걸음일지라도 더 나은 삶을 향해 꾸준히 나아간다. 오늘날 기업은 전쟁터에 존재하지 않는다. 적자생존을 향한 치열한 경쟁이 있을지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도덕적 불감증과 잔혹한 자기 형성으로는 위대함을 이룰 수 없다. 전장의 비유는 이제 전적으로 낡았다.

기업은 차라리 긴밀하게 연결돼 서로를 견인하는 친족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낫다. 이런 세계에서는 모두의 번영을 가치의 중심에 놓지 않는 기업은 곧바로 탄핵될 것이다.
최근에 나온 <마켓 4.0>에서 필립 코틀러는 말한 바 있다. “마케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는 연결성이다.”

이제 소비자는 더 이상 지역이나 성별이나 나이에 구획된 채 고립된 상태로 기업이 전하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받는 존재가 아니다. 이른바 ‘고객 세분화’ 전략은 이제 마케팅의 노멀(normal)이 아니다. 소비자들은 이제 지역과 성별과 나이를 뛰어넘어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간다.

소비자들은 제품의 효용(마케팅 1.0)이나 결핍된 욕구의 실현(마케팅 2.0)이나 인간 가치의 표현(마케팅 3.0)도 뛰어넘는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일 것을 기업에 요구한다. ‘평가와 참여’다. 소비자들은 제품만이 아니라 기업 활동 전반을 평가하는 한편으로, 기업 내부까지 깊숙이 들어와서 제품이나 서비스의 개발에서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에 함께하기를 원한다. 코틀러는 기업 활동의 모든 과정에 고객 참여를 전제로 하는 이러한 시대의 마케팅을 ‘마케팅 4.0’이라고 한다. ‘뉴노멀(new-normal)’이 생겨난 것이다.

코틀러의 통찰이 옳다면 경영자가 출판을 통해 어떠한 가치를 표현해야 하는가는 더욱 분명해진다. 당신 같으면 전쟁터에 참여하고 싶겠는가. 아니면 무릉의 복숭아밭에서 노닐고 싶겠는가. 벌과 나비는 달콤한 향기와 맛 좋은 꿀로 끌어들여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영자가 책을 출판하는 일은, 기업의 주력 제품과 지향하는 가치를 정밀하게 설계하고 도덕적으로 민감하고 언어적으로 세심하게 표현하는 고도의 과정을 수반한다. 이 일이 어려운 것을 독자들이 알기에 공유할 만한 이야기가 담긴 책에 대해서 그토록 대단한 열광을 보내는 것이다.

장은수 대표는 …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출판편집자 겸 문학평론가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민음사 대표이사(편집인)를 거쳐 현재 순천향대 미디어콘텐츠학과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편집문화실험실을 열어 주로 읽기 중독자로 살아가면서 책이라는 미디어의 가능성과 인간과 읽기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 저서로 <출판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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