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 최대 복병된 ‘한반도 리스크’
[한경 머니 기고=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최근 국내 증시는 북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문제로 더욱 불거진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에 휘청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낙관론(상승)과 조정론(하락)이 혼재하는 현재 증시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균형감이 시험을 받게 됐다.

정치·경제·사회·군사 현상은 특정한 평균치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고, 평균치에서 멀어질수록 발생 확률이 낮아지는 종(鐘) 모양의 정규 분포로 설명한다. ‘테일 리스크(tail risk)’는 가능성은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변수를 말한다.

올해 하반기 들어 예측기관은 세계와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면서도 ‘테일 리스크’가 언제든지 복병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 내전, 서방 국가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테러, 인도와 중국 간 국경분쟁, 그리고 북핵 문제에 따른 6자(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남한, 북한) 간 갈등 등 대부분 지정학적 위험이다.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용어 중 하나인 지정학적 위험은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다. 미국 중앙은행(Fed) 등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정학적 위험은 상대적으로 모호한 개념이라고 강조하면서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사회적 불안, 경제적 타격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과 사고로 정의하고 있다.

Fed에 따르면 현재 세계 지정학적 위험지수(Geopolitical Risk Index, GPR)는 역사상 최고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GPR 지수는 1900년부터 현재까지 세계 주요 언론에 전쟁, 테러, 정치적 갈등 등이 언급된 비중을 종합해 2000∼2009년을 기준으로 세계 지정학적 위험이 심화 혹은 완화됐는지를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다.

GPR 지수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372(2000∼2009년을 100이라고 할 때)으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그다음으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공습 당시 362, 제2차 세계대전 당시 346,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272까지 올랐다. 올해 들어서는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북핵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 간 갈등으로 GPR 지수가 300대까지 급등하고 있다.

10년 주기로 평가한 GPR 지수도 1990년부터 20년 넘게 상승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010년대 들어 GPR 지수는 월평균 137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1910∼1919년 월평균 140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현재 전 세계 지정학적 위험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으로 평가된다.

원인별로 보면 2010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는 정치 면에서의 군사적·지정학적 위험, 그 이후에는 △ 저성장 장기화 △ 청년층 고용 부진 △ 계층 간 소득격차 확대 등에 따른 기존 정치 질서와 기득권에 대한 반감, 새로운 변화에 대한 요구가 확대되면서 사회경제적 면에서의 지정학적 위험이 부각되고 있다.

지정학적 위험은 다양한 파급 경로를 통해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Fed에 따르면 지정학적 위험으로 인해 각종 예측 불확실성과 우려가 높아지게 될 경우 기업은 투자와 고용에 대한 의사결정을, 가계는 소비에 대한 의사결정을 지연시킴으로써 실물경기가 위축될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지정학적 위험에 따른 불확실성은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보수적인 대출 결정을 내리게 함으로써 기업과 가계의 자금과 신용창출 경로를 약화시켜 소비, 투자, 수출 등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시장에서는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심리가 증가되면서 스위스 프랑, 미국 국채, 금 가격이 상승하게 되는 반면, 위험자산인 신흥국 통화와 주가는 하락한다.

Fed의 계량 모델인 ‘퍼버스(Ferbus=FRB+US)’에 따르면 GPR 지수가 50포인트 상승하면 2년 후 미국 경제 성장률이 0.2%포인트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온다. 그 어느 변수보다 성장률 하락 효과가 크다. 북한과 직접적으로 대치해 있는 한국 경제의 경우는 지정학적 위험이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클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증시 최대 복병된 ‘한반도 리스크’
◆‘다우 2만2000’ 시대에 ‘대공황’ 우려 나오는 이유

증시 입장에서는 잠복돼 있던 각종 위험이 노출되는 계기가 된다. 주가수익비율(PER) 등 전통적 평가기법으로 분석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은 금융위기 이전 수준보다 높다.

수익률 면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Fed의 가치 모형(FVM)을 통해 평가해보더라도 S&P 500의 선행이익률이 국채 10년물 수익률 대비 2.2배로 금융위기 직전 수준이다. 한 마디로 ‘거품’이다.

거품 붕괴 우려와 함께 질적으로 취약해 ‘다우지수=2만2000’ 시대가 열렸는데도 ‘제2대공황’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올해 다우지수 상승분 중 보잉, 애플, 맥도널드, 카터필라, 코카콜라 등 이들 5개사의 기여분은 60%에 달한다. 국내 증시와 마찬가지로 미국 증시도 특정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심하다.

5대 기업의 실적을 내수 기여도(미국 내 비중)과 외수 기여도(해외 비중)로 구분해보면 후자가 60%가 넘는다. 다른 기업 실적도 마찬가지다.

2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전자가 낮다는 것은 미국 경제가 예상만큼 좋지 않은 대신 후자가 높다는 것은 달러 약세 효과가 의외로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채권투자의 구루인 빌 그로스 등은 미국 기업 실적과 이를 반영한 증시가 금융위기 이후 가장 취약하다고 평가한다. 달러 약세는 대표적인 근린궁핍화 정책이기 때문이다. 근린궁핍화란 자국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춰(평가절하) 인접국의 경쟁력(실적)을 빼앗는 보호주의 수단을 말한다.

더 주목되는 것은 빠른 주가 상승세에 대한 평가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183일 만에 다우지수가 20% 올랐다. 1929년 당선 이후 63일 만에 달성한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에 이후 두 번째로 빠르다. 후버 전 대통령은 초기에 추진한 달러 평가절하와 무역장벽이 경쟁국으로부터 역풍을 맞으면서 대공황을 겪었다.

‘다우=2만2000’ 시대가 열리면서 ‘제2대공황’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는 대외적으로 보호주의를 지향해 무역적자를 줄이는 데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주된 수단은 ‘달러 약세’다. 달러가 강세가 되면 보호주의와 정면으로 충돌된다. 증시도 해외 실적이 악화되면서 경기도 ‘역자산 효과’로 지금보다 더 둔화될 가능성 높다.
한국 증시 최대 복병된 ‘한반도 리스크’
◆ICBM 갈등에 추락하는 대세 상승론?

올해 하반기 들어 대부분 예측기관은 한국 경제 성장률을 상향 조정하고 있고 증시도 대세 상승론을 제기하는 등 장기간 지속됐던 박스권 탈출에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져 왔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최대 지정학적 위험요인으로 작용하는 북한의 핵과 ICBM 발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해소되지 못하고 악화되는 추세다.

1980년대 후반 북한에서 대규모 핵 실험 단지가 발견되면서 촉발된 북핵 문제는 1991년 남북한 비핵화 공동선언 합의로 안정될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다. 이후 북한의 비핵화선언 무효화, 1993년 핵확산방지조약(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NPT) 탈퇴를 결정하는 등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2000년대 중반 들어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고, 2006년부터 지금까지 총 8차례에 걸친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핵실험과 더불어 천안함 침몰사건, 연평도 포격, 비무장지대(DMZ) 목함 지뢰사건은 물론 급기야는 ISBM까지 발사하는 등 각종 군사적 도발을 일삼아 왔다.

북한의 도발은 국내 금융시장에 제한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으로 분석되나 앞으로 더 강도 있게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해서 경제적인 중요성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이 불거지는 과정에서 촉발될 수 있는 위험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최근 들어 트럼프 정부는 북한의 지속된 도발에 응징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히는 동시에 남한에는 사드배치 비용 등을 요구하는 양동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또한 중국에서는 사드배치로 인해 반한(反韓) 감정이 확산되면서 한국 제품의 불매 운동이 고조되고 있어 대중국 수출과 현지에 진출한 기업에 타격이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중국과 북한의 교역은 증가세로 전환했다. 특히 올해 1분기에는 1년 전에 비해 37.4% 증가했다. 이 중 북한의 대중국 수출이 18.4% 늘어난 것보다 중국의 대북한 수출이 54.5%로 더 크게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도발과 관련된 중국과 미국 간의 갈등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북핵과 ICBM 발사에 따른 지정학적 위험은 연평도와 천안함 사태와 같은 종전의 지정학적 위험과 다르다. ‘국지적인 일회성’이 ‘세계적인 상시성’ 성격이 짙다. 더 우려되는 것은 한반도 지정학적 위험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6개국 가운데 남한이 독자적으로 대응하고 개선해 나갈 능력이 가장 적다는 점이다.

하이먼-민스크의 리스크 이론이나 조지 소로스의 자기암시가설에 따르면 증시가 대상승기에서 대하락기로 돌아설 때는 반대의 경우(대하락기에서 대상승기)와 달리 어느 날 갑자기 ‘순간 폭락(flash crash)’이 동반된다고 봤다. 미국의 경기예측론자인 웨슬리 미첼도 “낙관론 뒤에 태어나는 비관론은 신생아가 아니라 거인의 위력을 발휘한다”고 경고했다.

국내 증시도 한반도 지정학적 위험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대세 상승론’이 판을 쳤다. 대부분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코스피 지수가 올해 안에 ‘2600∼2700’대로 오르고 일부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는 ‘3000’까지 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가 예측에 중대한 변수가 발생했는데도 아무런 얘기가 없다. 오히려 ‘2200’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비관론을 제시한다.

북핵과 ICBM 발사에 따른 지정학적 위험 진전 여부와 관계없이 앞으로 주가가 오르더라도 투자자는 2가지 점에 유의해야 한다. 하나는 기저효과 등으로 상승률이 둔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낙관론(상승)과 조정론(하락)이 혼재한 만큼 변동성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외국인은 어느 정도 목표 수익률에 도달했다. ‘체리 피킹’과 ‘환차익’이 줄어든 만큼 한반도 지정학적 위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국내 기업 실적은 괜찮고 경기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뒤늦은 대세 상승론’을 고집하고 ‘성급한 비관론’에 부화뇌동하기보다는 균형감을 유지하면서 합심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할 때다.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