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과 자개의 작가 채림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미국 뉴욕과 프랑스에서 막 전시를 마치고 돌아온 작가 채림을 지난 5월 중순 만났다. 서울 원서동에 위치한 작업실에 들어서니 유리벽에 새겨진 ‘옻칠과 자개 연구소(Natural lacquer&Mother of pearl Lab)’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전통의 옻칠과 자개를 보석과 회화의 조합으로 새롭게 풀어내는 예술 실험이 한창이었다.

“빛의 예술 옻칠·자개, 세계도 인정했죠”
“한국의 옻(Ott)이라고 말해요. 우루시가 아니고 옻이라고요.” 작가 채림은 용어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해외 전시에 사용되는 도록이나 자료에 우리만의 단어를 기록하고 언급하는 것도 한국 작가로서 옻칠을 알리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재팬(Japan)이 대문자로는 일본을 뜻하지만 소문자(japan)로는 ‘옻칠, 옻칠을 하다’로 쓰이는 것처럼, 그들은 단어와 기록을 통해 전 세계에 자신들의 문화를 전파했잖아요. 해외에서의 반응 중에 ‘옻칠을 했다’고 하면 ‘우루시 작가냐’고 묻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의 옻칠이라고 답할 때마다 일종의 사명감을 느껴요.”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대규모 옻 산지를 조성하고 산업화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 것과 달리, 한국은 소규모의 각개전투를 통해 옻칠의 명맥을 이어왔다. 나전의 기술과 예술성을 이어 받은 소수의 무형문화재 및 장인들, 옻칠을 회화나 공예 작품에 접목해 새로운 조형예술을 선보이는 작가들이 한 축에 있다.

채림은 옻칠 작가 중 독특하게 주얼리 디자이너로 한국의 전통 문양과 장신구를 연구하던 중 옻칠과 나전에 심취하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웨스턴 스타일 보석을 하다가 전통 보석과 장신구로 관심이 옮겨 왔고, 점점 삶의 무게가 옻칠과 나전 작품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버와 자개의 조합에서 길을 찾고, 옻칠을 알게 되면서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됐어요. 반클리프 아펠 등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의 자개 작품과 비교해봐도 한국적으로 풀어낸 자개 작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옻과 자개의 작가’로 주목받은 후 보폭을 넓히는 중이다.

2014년 파리 살롱 데 앙데팡당을 시작으로 뉴욕 아트 엑스포, 런던 사치 갤러리, 아트 타이베이, 콘텍스트(Context) 뉴욕, 베네치아 아트 엑스포, 칸 비엔날레(International Fine Art Cannes Biennale) 등 25개의 해외 전시회에 참가했고, 올해 초 학고재갤러리에서 전시를 연 뒤 국내에서도 주얼리 디자이너 출신 작가로 점차 이름을 알리고 있다.

대학과 대학원에선 불문학을 전공한 이력으로, 소위 정통파가 아니기에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신인 작가이지만 해외 전시에서는 주얼리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을 포함할뿐더러 다양한 전공과 출신을 오히려 독특한 무기로 인정해줬다.

무엇보다 지금 해외 미술 시장에서 옻칠이라는 소재에 열광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그의 작품을 초대하는 주무대가 동시대 미술인 ‘컨템퍼러리 아트’ 진영이라는 것.

“처음엔 해외 전시에 저를 데려가는 갤러리가 없어서, 솔로전으로 출품을 했어요. 지난해 뉴욕 아트엑스포에선 ‘솔로 어워즈’를 받았는데, 지난 20년 동안 솔로에게 상을 준 적이 없다고 했어요. 로버트 C. 모르건이라는 유명한 미술 평론가가 ‘숲을 가로지르는 빛’이라는 글을 써줘서 놀랐는데, 알고 보니 한국 옻칠에 대해 좀 알고 있는 분이었어요.”

채림은 보석을 다룰 때부터 전통 장신구의 현대적인 해석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 전통 나전의 영롱함에 대해서는 “자개를 얇게 켜서 옻이라는 최고의 접착제를 붙인 후 살살 사포질을 하면 깜깜한 데서 자개의 빛이 확 올라온다. 그것은 ‘보석 찾기’다”라고 말했다. 특히 무지갯빛처럼 반사되는 자개의 반짝임은 다이아몬드를 능가해 “다아이몬드는 영원히(A Diamond is forever: 드비어스의 유명 광고 문구)가 아닌 자개는 영원히(Mother of pearl is forever)”라고 강조한다.

본격적인 옻과 자개의 작가로 활동하면서 그 여정에 ‘옻칠의 재발견, 재해석, 재창조’라는 지난한 고민이 뒤따랐다. 그는 전통의 옻칠과 자개의 조합을 통해 지금 동시대의 미적 코드에 맞는 ‘새로운 예술’을 선보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여러 아트페어를 가본 결과 지금 세상의 아티스트와 미술 시장은 누가 다른 생각과 다른 재료로 어떻게 남들이 보지 못한 세계를 열어주느냐, 그 세상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어떻게 다르게 접근할 것인가. 그 고민을 했습니다.”

그가 옻칠을 새롭게 풀어내는 해법은 다음 아닌 ‘협업’. 기존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요소를 더했는데, 실버와 자개, 자개와 옻칠, 보석과 회화 등이 키워드다. 전통적인 듯 현대적이고, 조형적인 듯 회화적이고, 평면적인 듯 입체적인 작품의 특징들은 그러한 고민의 산물이다.

“저의 작품 세계는 ‘자연과 자연의 만남, 예술과 예술의 만남(Nature meets nature, Art meets art)’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표현 기법은 옻칠과 자개라는 고전성을 부여받고 있는 재료들을 활용하는데, 이 두 재료를 함께 쓸 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작업이 완성됨을 느낍니다. 전통 나전기법은 도안된 자개에 아교칠을 해서 인두로 지져 붙이는 ‘자개붙임’을 하지만, 제 작품은 자개들을 옻판 위에 실버 난집으로 세팅해 브로치처럼 표현함으로써 입체감을 주는 방식입니다.”
“빛의 예술 옻칠·자개, 세계도 인정했죠”
그래서인지, 옻칠 위에 자개는 조명에 따라 ‘그림자’를 갖게 된다. 채림 작가가 주얼리 디자이너 시절부터 함께 작업을 해 온 보석세공 장인의 손에서 탄생한 자개 조각들이 저마다 다른 높낮이로 옻칠 위에 자리하고 있어, 옆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숲’과 같이 느껴진다. 나전이 평면의 옻칠에 평면의 자개를 붙이는 방식이라면, 평면의 옻칠에 보석을 얹어 입체감을 주는 방식으로 변주한 셈이다.

가까이서 바라보면 작품들은 익숙한 모습의 옻칠이나 나전의 느낌은 아니다. 옻칠을 한 배경은 어둡고 까만 바탕이 아닌, 오히려 자연친화적인 캔버스의 색감과 질감에 닮아 있다. 실제로는 삼베에 황토를 쓰고, 생칠에 여러 안료를 섞어 옻칠을 굳히는 경화 작업의 반복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채 작가는 실제 옻칠을 하는 과정에 대해 “까다로운 여자친구나 부인보다 더 까탈스러운 게 옻칠”이라며 “옻의 두께나 모양을 잡아 가고 색을 내는 과정에서 아주 미세한 차이로 변형되고 틀어지고 색이 변하는 일이 허다한데, 그것은 작가의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옻칠이 스스로 완성되기 원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어느 순간에 색이 변할지 몰라 잠도 작업실에서 자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고생 끝에 탄생하는 옻칠의 매력은 한 마디로 ‘빛의 예술’이다. “옻칠은 여러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칠을 해 놨을 때 유화에 비교해 깊이감이 다릅니다. 반짝거리는 느낌이 안에서부터 올라오는데, 과거 송나라 사신 서긍이 <세밀과귀>에서 ‘나전공예는 세밀해 귀하다 할 만하다’한 것처럼 정말 귀한 느낌이 있어요. 천년의 빛이라고 하잖아요. 특히 옻칠과 자개가 어우러지면서 같이 올라오는, 거기서 오는 오묘함이 있어요.”

그는 자신이 만든 옻칠 회화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숲 속을 거닐며>를 꼽았다. “작은 작품들이 7개, 9개, 11개로 늘어나면서 숲이 확장되는 이미지로 우리나라의 쪽빛에 가까운 회색의 바탕을 만들었다”며 “옻칠을 통해서도 그러데이션이 가능하고, 주얼리와 만나 더 멋있는 작품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돌아보면 근현대에 들어 딱 한 번 나전이 전국적인 광풍을 일으킨 적이 있다. 1970~1980년대 부의 상징으로 통한 자개장롱이 그것이다. 아파트 문화가 들어서며 자취를 감추기까지 큰 인기를 누렸었다. 최근 옻의 효과가 재조명되면서 조금씩 옻의 재발견이 이뤄지고 있다. 다시 한 번 한국의 옻칠 문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저는 시간이 걸려도 분명히 가능할 것이라고 봐요. 해외 전시를 하면 전시장 벽면에 기록해 놓은 옻칠의 역사와 기법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만나요. 옻칠은 한·중·일을 비롯한 아시아의 문화이지만 독일에는 바스푸사가 운영하는 옻칠 박물관이 있어요. 우리만 모를 뿐 해외에서는 이미 그 가치를 충분히 알아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옻칠 문화를 회복하기 위한 조건에 대한 채 작가의 생각을 물었다.

“전통 공예도 아트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같아요. 옻칠 분야에서도 전국에 숨어 있는 장인들이 많이 계시죠. 현대 작가들도 옻칠 회화나 공예로 작품 활동을 열심히 하십니다. 조선의 마지막 칠기 공인이었던 수곡 전성규 선생은 제자 김봉룡과 함께 그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 미술공예품 박람회에 조선 대표로 출품해 나전 작품으로 입상을 한 기록도 있죠. 그렇게 그분들이 닦아온 길에 존경심을 갖고 우리가 조금씩 힘을 모으면 무언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채림 작가는…
이화여대 불문과 학사와 같은 대학원 석사를 마쳤다. 2009년 국제보석감정사를 취득한 뒤, 주얼리 디자이너로서 각종 전시 및 수상 기록을 갖고 있다. ‘옻과 자개의 작가’로 새로운 예술 실험에 나선 후 주로 해외 전시를 통해 옻칠의 매력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