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I 사진 리움 제공] 중년이 사랑에 빠졌다. 위험한 불륜도, 다시 돌아온 순정의 사랑도 아니다. 이들의 줄리엣은 어항 속 헤엄치는 물고기다. 이들은 관상어를 위해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을 투자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관상어에서 반려어로 달라진 시대상을 조명했다.
중년, 반려어에 빠지다
박용길(53) 씨는 오늘도 ‘물멍’ 중이다. ‘물을 보며 멍하게 있는 상태’를 말하는 물멍은 관상어를 키우는 이들이 즐겨 쓰는 신조어다. 박 씨는 지난해 7월 구피(관상어 종류)를 분양받은 후부터 관상어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귀가 후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아이들’의 밥을 주기 바쁘다. 흐르는 물소리에 단잠이 깨기 일쑤고, 매주 어항을 청소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생겼지만 물고기들이 주는 행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재작년에 딸아이가 결혼하면서 집이 텅 빈 것 같았는데 이제는 구피가 제 아이들이에요. 물멍 중일 때면 답답한 것도 사라지고, 스트레스도 다 날아가는 것 같아요.”

관상어에 빠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현재 인터넷에는 회원 1000명 이상인 관상어 동호회만 100여 개가 활동 중이며 이곳 회원 수를 모두 더하면 관상어 애호가만 약 50만여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다.

특히 그중에서도 중년이 관상어에 갖는 관심은 유별나다. 관상어를 키우며 중년의 외로움을 해소하는 것은 물론 ‘브리더(분양업자)’로 거듭나 관상어 재테크까지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관상어 수입 및 판매업을 하는 김원기 리움 대표는 “분양비와 유지·관리비로 어느 정도 목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기 때문에 경제력을 갖춘 4050 중년, 그중에서도 남성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중년들이 관상어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이들은 1980~1990년대에 가정에서 금붕어를 길러 관상어와의 추억이 깃든 세대다.

앞서 우리나라에서는 비단잉어, 금붕어 등을 많이 기르던 1990년대 중반까지 집집마다 관상어를 기를 만큼 관련 산업이 호황이었으나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침체기에 접어든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다시금 관상어가 반려동물로서 사랑을 받고 있다. 개와 고양이에 비하면 시간과 노력을 덜 들이면서도 중년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관상어를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완화와 정서적 안정에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국내외에서 많이 입증됐다.
중년, 반려어에 빠지다
(위)금룡, 홍룡. (아래)플래티넘앨리게이터가아, 블랙다이아몬드가오리. 사진 리움 제공

관상어에서 반려어로 인식 변화

최근 관상어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대형으로, 다양한 어종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이전까지는 비단잉어, 금붕어, 쉬리, 구피, 몰리 등이 대표적인 관상어였다면 최근에는 가오리, 피라루쿠, 아로와나 등 대형어를 키우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몸길이가 최장 3~5m에 달할 만큼 크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치어(어린 물고기)를 길러 추후 분양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희귀한 대형 어종일수록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때문에 관상어로 재산 증식의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이른바 ‘관상어 재테크’다.

관상어 가격은 어종에 따라, 또 품질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일명 ‘용(龍)’으로 불리는 아로와나는 열대어 중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관상어로 인기가 높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특히 자연생태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멸종위기종인 아시아아로와나는 몸값만 억대를 호가한다. 여기에는 아로와나 특유의 상징성도 인기를 더했는데, 중국에서는 예부터 금빛을 띠는 금룡(金龍)은 부의 상징으로, 붉은빛을 띠는 홍룡(紅龍)은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통한다. 현재 중국에서 많은 인기가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어류종이다.

전통적으로 ‘부의 상징’이었던 비단잉어 또한 1등급의 경우 수억 원에 거래될 만큼 고급 어종으로 통한다. 지난해 말에는 중국 광둥성에 거주하는 한 부호가 비단잉어를 1억6000만 원에 분양받고, 이를 경호원을 동반해 배송한 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꼭 대형어가 아니더라도 희귀종인 경우에도 관상어로서 가치를 지닌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명 ‘워터독(물 강아지)’으로 불리는 플라워 혼이다. 이 종은 매우 사나운 성격이지만, 주인과 교감이 이루어질 경우 강아지처럼 따라다니고 만질 수 있어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관상어 애호가들은 관상어 시장에 관심이 커지는 것에 기뻐하면서도 단순 재테크의 관점에서 다뤄지는 것에는 우려를 표한다. 김 대표는 “야생에서 이제는 보기 힘든 물고기가 애호가의 손에서 번식돼 자연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며 “얼마를 줘도 관상어를 팔지 않겠다고 말할 만큼 본인이 공들여 키운 관상어에 자부심을 가진 분들이 상당수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어의 경우 최장 20~30년을 살 만큼 수명이 길기 때문에 반려견, 반려묘와 함께 3대 반려동물로서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며 “국내에서는 ‘반려어(아쿠아 펫)’라는 용어가 아직은 생소하게 들리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반려어가 통용되고 있는 만큼 인식 변화가 필요한 때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6호(2019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