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덜어주는 진짜 위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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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머니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위로의 사전적 의미는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줌’이다.
이따금 진짜 위로를 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질문을 받는데, 진짜 위로라 하니 가짜 위로도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위로에 진짜와 가짜가 있다고 한 번 설정해본다면, 위로라는 훌륭한 명품에 진품과 가품을 구별할 수 있는 핵심 포인트는 무엇일까.

방송, 신문 등에서 마음 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위로에 대한 질문들을 받게 된다. 예를 들면,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어떤 말은 해야 하고 어떤 말을 하지 말아야 할까요” 또는 “취업에 실패한 친구, 원하는 시험 결과를 얻지 못한 후배 등 주변에 우울한 사람들이 많은데,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섣불리 위로의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요”라는 사연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진짜 위로로 슬픔을 덜어줄 수 있을까. 진짜 위로와 가짜 위로의 차이는 무엇인가. 관건은 나르시시즘과 공감에 있다고 본다. 나르시시즘은 감정 에너지의 흐름이 상대방에서 나에게 흐르는 것이다. 반면에 공감은 에너지 흐름이 나에게서 상대방에게 흐르는 것이다.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해도 에너지의 방향은 다를 수 있다. ‘소중한 내가 너를 사랑한다’일 수도 있고 ‘소중한 너를 내가 사랑한다’일 수도 있다. 소통엔 말, 즉 단어로 나열된 문장으로 구성된 언어 소통 이상으로 비언어적 소통이 큰 역할을 한다. 특히 지식의 전달이 아닌 위로처럼 마음을 전달하는 소통에 있어서는 비언어적 소통이 더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공감 에너지 체크하기

좋은 말을 상대방이 나에게 많이 해주었는데 왠지 시간이 지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경우를 경험할 수 있다. 상대방이 화술은 뛰어나나 나르시시즘적인 소통을 했을 때 이런 경험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 친구가 위로를 해준 것 같은데 은근 본인 자랑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경우가 한 예다. 반대로 말투가 세련되지 못하거나 말수가 적은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니 따뜻함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이 언어적 소통에 서툴지만 진심을 가지고 나를 바라봐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누구를 공감한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에너지가 나에게서 빠져 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감은 함부로 해서도 안 되고 내 에너지가 얼마나 있는지 체크해볼 필요도 있다. 내 에너지도 별로 없는데 함부로 공감하기 시작했다가는 나도 모르는 사이 본능적으로 나르시시즘인 소통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

따뜻한 공감 능력을 가져 많은 사람을 위로하던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까칠한 소통이 나와 본인도 주변도 놀라게 할 수 있다. 공감 에너지는 마음의 반응이기에 논리적으로 조정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마음 가는 대로 공감 에너지를 쓰게 되면 순간 스마트폰이 방전되듯 에너지가 고갈되고 공감 에너지가 떨어지니 나도 모르게 까칠한 언행이 나올 수 있다. 공감 능력을 갖고 태어난 것은 멋진 일이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에너지 소모가 많은 마음을 갖고 태어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공감 에너지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살펴도 보고 방전된 상태라면 주기 전에 내가 먼저 충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꼭 필요하다.

묵묵히 경청해주기

앞의 언급한 사연으로 돌아가 보면, 우선 공감 소통을 할 준비가 돼 있다. 무슨 말을 꺼낼지 모르겠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의 마음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다는 증거다. “힘들지. 어서 힘을 내. 여행이라도 가서 마음을 다 풀고 와”라는 말이 공감 소통일 수도 있지만, 상대방의 마음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면 나르시시즘적인 소통에 그칠 수 있다. ‘계속 공감하려고 하니 너무 힘드네. 야, 그만 힘들어하고 일어나. 어찌됐건 난 위로의 말을 했으니 좋은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하는 것일 수 있다. 나르시시즘적인 소통을 한다고 탓을 할 수만은 없다. 내 생존이 제일 중요한 것은 본능이기에 우린 순간 너무 에너지가 고갈된다고 느껴지면 자동으로 나르시시즘적인 소통이 튀어 나갈 수 있다.

정리를 해보면 ‘내가 말로 얼른 회복되게 위로해보자’라는 생각은 일단 접고 ‘비언어적 소통으로 힘든 내 친구의 마음을 위로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접근하기를 권한다. 정말 힘들 때, 위로의 달변을 주는 친구보다도 커피 한 잔이나 소주 한 잔을 함께하며 묵묵히 옆을 지켜주고 경청해주는 친구에게 진짜 위로를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위로는 에너지 소모가 있기에 내가 어느 정도 위로해줄 수 있을지 미리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식사하며 친구를 위로해보자와 같이 말이다. 상대방이 의존적일 경우 끊임없이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처음에 많이 공감하다가 그 에너지가 고갈돼 줄이게 되면 상대방도 힘들어지고 고갈돼 가는 이도 힘들어질 수가 있다.

그리고 공감받기 위해서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본능이 사랑을 받으면 나중에라도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이 오래 가는 좋은 친구가 되려면 이번에 내가 공감 위로를 받았다면 언젠가 친구가 힘들 때 나도 잘 공감해주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게 필요하다. 일방적인 마음 에너지의 흐름만 있다면 그 관계는 오래가기 어렵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6호(2019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