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배인구 법무법인(유) 로고스 변호사]우리나라에서 나날이 이혼과 재혼이 늘어나면서 상속 분쟁도 재혼 가족 사이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다. 그중 재혼 전 이뤄진 증여가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하는데 그 쟁점들을 정리해봤다.
재혼 가족, 증여 분쟁 어쩌나
2017년 2월에 법원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변호사라는 자유를 얻으면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연구를 할 수 있는 여러 기회를 갖게 됐다. 그중 하나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연구위원들과 같이 과제를 수행한 것인데, 주제가 재혼 가족 부부의 재산상 평등권 제고 방안이었다. 이 주제를 듣자 사건 하나가 기억났고, 덥석 합류를 결정했다. 사안의 내용은 이렇다.

망인(남성)이 전처와 사이에 자녀 2명을 두었는데, 자녀들이 모두 성인이 된 뒤에 전처가 사망했다. 당시 전처 재산으로는 망인과 공유로 등기된 아파트 한 채와 사망보험금이 있었는데, 망인은 전처의 장례를 치르고 아파트를 정리한 뒤, 자녀들에게 각 2억 원씩 주면서 작은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사도록 했다.

본인도 작은 아파트로 옮기고 계속 대리점을 운영하다가 5년 후에 재혼했는데 재혼한 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망인은 상속재산으로 작은 아파트와 대리점 건물의 임대차보증금과 재고 제품, 예금을 남겼고, 모든 상속재산은 재혼한 처와 자녀들이 3분의 1씩 상속하도록 하는 내용의 유언을 남겼다.

망인은 이러한 내용의 자필증서유언을 작성해 대리점 서랍에 넣어 두었는데 장례 후 대리점을 정리하면서 그것이 발견됐다. 그러자 재혼한 처는 유류분에 침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얼핏 보기에 재혼한 처의 법정상속분은 7분의 3이고(나머지 자녀들이 각 7분의 2), 유류분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이니 14의 3이 된다.

이 비율은 망인이 유언으로 정한 3분의 1을 초과하므로 유류분을 침해받았다고 보기 어렵지만, 재혼한 처는 본인이 재혼하기 전에 자녀들이 망인으로부터 받은 2억 원을 문제 삼았다. 자녀들이 받은 2억 원은 상속분을 미리 받은 특별수익이고, 이것을 상속재산에 더해 계산하면 본인의 유류분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민법이 제1112조 이하에서 규정하고 있는 ‘유류분제도’란 상속인 또는 근친자에게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해 일정한 형태의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다. 즉, 법률상 상속인에게 일정 비율의 상속재산을 보장한다. 만약 앞 사례에서 망인이 전 재산을 생전에 자녀들에게 모두 증여하고 사망했다거나 자녀들에게 전 재산을 준다는 유언을 했다면 재혼 배우자 입장에서는 당장 망인의 사망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반대로, 망인이 전 재산을 재혼한 처에게 생전에 증여하거나 유언으로 전 재산을 처에게 상속하도록 하면 자녀들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법은 이와 같이 배우자와 직계비속이 상속인인 경우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을 유류분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민법 제1008조는 공동상속인 중 피상속인으로부터 재산의 증여 또는 유증을 받은 자가 있는 경우에 그 수증재산이 자기 상속분에 달하지 못한다면 그 부족한 부분의 한도에서 상속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피상속인으로부터 재산의 증여 또는 유증을 받은 공동상속인이 있는 경우에는 상속분을 산정할 때 이러한 증여 또는 유증가액을 참작하지 않으면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불공평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공평을 기하기 위해 증여나 유증을 받은 재산을 상속분의 선급으로 다루어 구체적인 상속분을 참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상속재산 분할과 특별수익
민법 제1114조는 유류분 산정에 산입되는 증여는 상속 개시 전 1년간 행한 것에 한해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에 포함되고, 당사자 쌍방이 유류분권리자에게 손해를 가할 것을 알고 증여를 한 때에는 1년 전에 한 증여도 포함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혼 가족, 증여 분쟁 어쩌나
따라서 원칙적으로 피상속인의 사망 시로부터 1년 전에 받은 증여는 유류분 산정 재산에 포함되지 않지만 공동상속인에 대해 유류분 반환을 청구하는 경우에는 제1114조의 제한 기간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 이유는 상속재산 분할 시 간주되는 상속재산에 포함되는 특별수익에 피상속인으로부터 증여 또는 유증을 받은 시기를 제한하고 있지 않는데, 민법 제1118조가 이러한 제1008조를 준용하고 있기 때문에 통설과 판례는 유류분을 산정하기 위한 기초재산에 대해서도 공동상속인에 대한 증여에 대해서는 기간의 제한을 두지 않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망인이 사망하기 7년 전에 공동상속인에게 증여한 경우에 공동상속인들 중 유류분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 증여를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으로 포함해 부족분을 계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안에서는 망인이 재혼 전에 자녀들에게 돈을 나눠준 것이다. 돈을 나눠준 당시 재혼한 처가 존재하지 않았는데도 과연 재혼한 처와의 관계에서 특별수익에 해당할 수 있을지 문제가 된다.

우선 망인이 전처의 재산을 자녀들과 상속재산 분할을 하는 과정에서 자녀들이 2억 원씩 갖게 된 것이라면 자녀들은 망인으로부터 2억 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엄마의 재산을 상속받은 것이니 망인 사망으로 인한 유류분과는 관계가 없고, 재혼한 처는 망인의 유언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부부가 경제공동체라고 하지만 법은 이처럼 엄격하게 누구 것인지 따진다. 하지만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배우자가 상속받은 부분에 관해 많은 혜택을 주고 있으니 어쩌면 이 사안에서 망인이 자녀들에게 준 돈이 모두 사망한 처의 상속재산 중 자녀들 상속분에 해당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상속세를 절약하기 위해 형식적으로는 망인이 대부분 상속받은 것으로 처리했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자녀들이 실질적으로는 엄마의 재산을 상속받은 것에 불과해도 아버지로부터 증여를 받은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법원은 이 사안에서 자녀들이 받은 돈은 엄마의 상속재산이 아니라 피상속인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이라고 인정한 후 계모의 유류분 부족분을 인정했다. 이 사안 이전에 서울가정법원이 2010년 10월 12일 선고한 ‘2009느합101, 165’ 심판에서는 전처소생 자녀들이 청구인이고 계모가 상대방인 사건이었는데, 자녀들이 계모가 피상속인으로부터 증여받은 재산이 특별수익에 해당한다고 문제 삼자, 상대방인 계모는 피상속인이 재혼하기 전에 상속인인 자녀들에게 증여한 재산을 특별수익으로 보아 상속재산의 분할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상대방 주장에 대해 법원은 “특별수익자의 상속분에 관한 민법 제1008조에는 그 명문상 특별수익을 주장할 수 있는 자를 제한하지 않고 있으며, 특정 상속인의 특별수익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중요한 점은 공동상속인들 간의 형평성을 해하는지 여부이지 상속인 자격을 갖춘 시기나 특별수익 시기의 선후는 특별수익 인정 여부에 영향을 끼칠 수 없으므로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면 상대방은 피상속인과 혼인함으로써 뒤늦게 그의 상속인이 될 자격을 갖추었으나 청구인들의 특별수익의 점에 관해 그 수익 일시를 불문하고 이를 다툴 수 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이 부분 청구인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자녀들이 재혼 전에 증여받은 재산은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포함되는 특별수익으로 평가받게 된다. 그런데 법원은 증여받은 재산이 특별수익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판단하면서 “민법 제1008조의 입법 취지에 비추어볼 때 특별수익의 인정 여부는 수증재산을 상속분의 선급으로 보지 않을 경우 상속인들 간의 형평성을 해하게 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하고서, 상대방이 피상속인으로부터 넘겨받은 재산은 특별수익에 해당하나 청구인들이 피상속인으로부터 받은 재산은 특별수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상속인의 재혼 전에 자녀들이 받은 증여재산에 대해 결론적으로 특별수익으로 인정됐는지 인정되지 않았는지 결과가 다르지만 재혼 전에 받은 증여재산이라고 해 특별수익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은 동일하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견해에 반대한다. 이 문제는 피상속인이 사망 시, 상속재산을 특정 상속인에게 증여하거나 유증해 다른 공동상속인의 재산상 권리를 침해하는 것과 다르다. 이는 피상속인이 증여할 당시 상속인이 아니어서 증여에 대해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었던 사람이 그 후에 형성된 관계로 인해 과거에 형성된 법률관계의 효력을 소급적으로 소멸시키는 것이며, 피상속인의 의사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피상속인의 의사가 재혼 전 자녀들에게 증여를 통해 재산을 분재해주고 재혼한 배우자에게는 남아 있는 재산을 상속하려는 것이라면 이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재혼으로 복잡한 상속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황혼 재혼이 거의 사실혼 관계로만 남는 현실에서 법률혼으로서 재혼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와 같이 특별수익의 범위를 제한적으로 판단하더라도 이것이 특별수익을 인정하는 취지에 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혼이나 입양이 되기 전에 공동상속인이 증여받은 재산은 제1114조를 적용하는 것으로 해석돼야 하고, 피상속인의 의사와 상속인들의 유류분 청구권이 상충되지 않도록 궁극적으로는 입법이 돼야 할 것이다.

참고로 독일은 2010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민법 개정을 통해 유류분 반환 비율을 줄였다고 한다. 즉, 상속 개시 전 1년간 증여가 이행된 경우에는 증여재산이 100% 산입되고, 상속 개시 전
1년-2년간 증여가 이행된 때에는 90% 산입, 이런 식으로 해서 상속 개시 전 9년에서 10년 사이에 증여가 이행된 경우에는 10%가 산입되며, 그 이전의 증여는 산입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최근 일본에서도 이러한 유류분 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상속법’을 개정해 특별수익에 산입되는 기간을 명문화했는 바,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6호(2019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