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고령화에 따른 상속·증여 이슈가 사회적인 관심을 끌고 있지만 수년째 공론화되고 있는 배우자 상속 지위 개선 논쟁은 아직도 제자리걸음 중이다. 그 핵심 쟁점들을 되짚어봤다.
끝없는 배우자 상속 지위 논쟁
‘배우자 상속 지위 개선 논쟁’이 수년째 식지 않고 있다. 이 사안이 뜨겁게 떠오른 이유는 무엇보다 고령화와 관련이 깊다. 평균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부부가 평생 함께 살아야 하는 기간이 과거에 비해 늘었고, 자녀와 동거하지 않고 부부만 따로 사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9월 발표한 ‘2018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노후 생활비를 본인이나 배우자가 부담한다고 응답한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지난해 사상 처음 60%를 넘어섰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생활비 마련 방법은 ‘본인 및 배우자 부담’ 비율이 61.8%로 가장 높았으며 ‘자녀 또는 친척 지원’(25.7%), ‘정부 및 사회단체’ 등이 그 뒤를 따랐다.

이처럼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배우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현행 민법에 따라 일방 배우자가 사망할 경우 생존배우자의 생활 보장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윤진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배우자의 상속법상 지위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 “우리나라의 배우자의 상속법상 지위 강화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아직도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며 현행법 개정 필요성에 대해 “현행법은 생존배우자 외에 다른 공동상속인이 많을수록 배우자의 상속분은 줄어들게 돼 배우자의 지위가 약화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생존배우자의 부양과 관련이 깊다. 근래에는 민법이 제정될 당시와 비교해 평균수명이 대폭 증가해 상속이 개시될 무렵 피상속인의 자녀는 대체로 이미 성년이 돼 독자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 반면, 피상속인의 배우자는 상속재산에 의존해 생활할 필요가 있지만, 생존배우자의 상속분이 작다면, 생계에 어려움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존배우자가 상속을 받을 수 있는 크기를 늘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현행법 개정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6년 민법 개정안은 혼인 중 재산 분할이라는 제도를 도입하고 혼인 중 재산 분할을 받지 않은 배우자의 상속분을 일률적으로 5할로 하고, 혼인 중 재산 분할을 받은 배우자의 상속분은 공동상속인과 균분으로 하는 것이었는데, 입법이 되지 못했다.

이후 2014년 법무부 산하 상속법 개정특별위원회가 그 해 1월에 내놓은 최종안에 담긴 배우자 선취분 조항은 상속재산의 50%를 배우자에게 먼저 주고, 나머지 재산을 자식과 나눠 갖도록 상속법 개정 시안을 마련한 바 있다.

기존 법 규정에서는 배우자가 직계비속의 상속분보다 5할을 더 가산해 받아 배우자가 1.5, 자식들은 1씩을 받는다. 이 경우 100억 원의 상속분이 있다면 배우자는 60억 원, 자녀는 40억 원을 상속받게 된다.

당연히 자녀들이 많을수록 배우자의 상속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정안이 통과됐다면 배우자는 50억 원을 선취하고, 나머지 50억 원을 1.5:1의 비율로 나눠 자녀가 하나밖에 없는 경우 배우자는 80억 원, 자녀는 20억 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결국 법제화는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민경서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배우자 상속분을 전체 상속재산의 5할로 개정해야 한다는 입법론이 계속 제기돼 왔다”며 “반면, 이러한 입법론에 대해 나이가 많은 부모가 이혼 후 재혼을 하는 경우, 재혼 상대방이 자녀들보다 더 많은 재산을 상속받게 돼 자녀들이 부모의 재혼을 반대하게 된다는 문제점을 제시하는 의견도 분분하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도 반발했다. 상속재산에서 배우자가 절반을 가져가도록 선취분을 둘 경우 후계자에 대한 가업승계는 어려워지고, 기업지배구조 자체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자산 승계율이 낮은 기업의 경우 대주주 의도와는 다르게 자녀가 아닌 배우자에게 상당한 지분이 주어지고, 혹 배우자와 이혼을 하게 될 경우 기업 소유권도 넘어갈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재계의 이 같은 입장은 배우자 선취분에 대해 다소 과장된 거부감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이고, 최대주주 주식에 대한 할증까지 더해지면 최고세율이 65%까지 치솟는다. 사실 애당초 가업승계는 세금이라는 벽에 부딪혀 있었던 셈이다. 또한 유류분이라는 장애물도 있다. 특히 자녀가 많다면 기업 오너가 보유한 회사 주식을 한 사람에게 몰아줘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마치 배우자 선취분 제도 때문에 가업승계를 하기 힘들어진다는 논리는 구시대적인 혈족 상속의 사고방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혼 배우자의 상속 문제
이 밖에도 배우자 지위 개선 이슈와 관련, 사실혼 관계에 있는 배우자의 상속 문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법률혼주의를 채택(민법 제812조 제1항 참조)하고 있으므로 민법 제1003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배우자의 상속에 관한 내용은 법률혼의 배우자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법률상 친족관계가 발생하지 않은 사실혼 관계에서는 상속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최근 헌법재판소 결정(헌재 2014. 8. 28. 2013헌바119)에서도 “사실혼 배우자에게 상속권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것은 상속인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파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상속을 둘러싼 분쟁을 방지하고, 상속으로 인한 법률관계를 조속히 확정시키며, 거래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며 “사실혼 배우자는 혼인신고를 함으로써 상속권을 가질 수 있고, 증여나 유증을 받는 방법으로 상속에 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근로기준법’, ‘국민연금법’ 등에 근거한 급여를 받을 권리 등이 인정되므로 사실혼 배우자에게 상속권을 인정하지 아니한 민법 규정은 합헌이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민경서 변호사는 “사실혼 배우자의 상속에 관한 권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생전에 사실혼 관계가 해소된 경우 재산분할청구권을 인정하는 것과 비교해 간과할 수 없는 불균형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이에 대한 입법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며 “이는 사실혼 관계에서 배우자가 사망하는 경우 생존배우자가 상속뿐만 아니라 재산분할청구권도 행사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여기에 정부가 올해부터 사실혼 가구를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한 만큼 앞으로도 사실혼 배우자의 상속 지위 이슈는 계속 논의될 전망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7호(2019년 0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