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공인호 기자]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 가운데 신한을 제외한 3곳이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인터넷은행의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과 함께 결국 시중은행 중심의 시장 경쟁 구도가 더욱 고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인터넷전문은행, '4대 은행' 경쟁 축소판 되나
“모회사의 많은 충성 고객을 기반으로 일반 은행과 차별화된 독특한 서비스를 보유한 인터넷전문은행은 성공했지만, 단순히 가격 경쟁 위주로 고객을 확보한 인터넷은행들은 실패했던 해외 사례들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2017년 4월 인터넷은행 도입을 앞두고 금융권 안팎에서 쏟아진 우려 가운데 일부다. 국내 금융시장에 처음 도입되는 새로운 형태의 은행이라는 점과 함께 무려 20여 년 만에 은행업 빗장이 열렸다는 상징성도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은행 1·2호인 케이(K)뱅크과 카카오뱅크 출범 2년을 눈앞에 둔 현재, 이들 은행이 기존 4대 은행 중심의 경쟁 구도에 균열을 낼 만한 ‘파괴적 혁신’을 가져왔는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오히려 기존에 제기됐던 ‘가격 경쟁’ 우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쓴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혁신’ 빠진 가격 경쟁
인터넷은행발(發) 가격 경쟁은 올해 들어 더욱 가열되는 양상이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지난 3월부터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대출의 가산금리를 0.15%에서 최대 0.35%포인트까지 인하했다. 이로써 인터넷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3%대 초중반까지 떨어졌다. 주요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금리가 4%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공격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들 인터넷은행은 중금리 대출 확대에도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존 대출 영업이 주로 고신용자들에게 집중되며 인터넷은행의 설립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된 데 따른 행보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 2월 한 달간 은행권 사잇돌대출 건수는 약 1만1440건으로, 이 가운데 카카오뱅크를 통한 대출 건수는 8050건, 비중은 70.4%로 집계됐다. 카카오뱅크는 오는 2022년까지 매년 1조 원 규모의 중금리 대출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사잇돌대출은 4~10등급의 중·저신용자 대상 정책 중금리 대출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오히려 인터넷은행의 공격적인 금리 경쟁을 놓고 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은 연체율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주택 경기 침체 등의 위기 상황이 재현될 경우 부실채권이 급격히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터넷은행들은 가격 경쟁력 확보에 열을 올리다 보니 적자 탈출에도 애를 먹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인터넷은행의 독자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차별화 전략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미국 인터넷전문은행의 사업성과 분석’ 보고서를 통해 “인터넷은행의 가격 우위 모델이 지배적일 경우 은행 산업 내 금리 경쟁이 촉발될 수 있으며 산업 전반의 건전성과 금융 전반의 안정성은 크게 저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반면 서비스 확장 모델이 지배적일 경우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금융서비스의 범위가 크게 확장될 것이며, 이를 통해 산업 내 유효 경쟁이 금리 경쟁이 아닌 서비스 경쟁으로 발전할 수 있다”며 “또한 서비스 경쟁을 통해 은행 산업의 효율성이 높아질 경우 은행 산업의 건전성뿐만 아니라 금융 산업 전반의 안정성 제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인터넷전문은행, '4대 은행' 경쟁 축소판 되나
결국 시중은행 경쟁 축소판?
이와 관련해 정부는 은행 산업 내 새로운 시장 플레이어 등장이 혁신 경쟁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융당국이 제3 인터넷은행 인가를 추진 중인 것도 이런 판단이 작용했다.
문제는 제3 인터넷은행이 기존 시중은행의 경쟁 구도에 편입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인터넷은행 예비인가 신청이 확실시되는 곳은 키움증권, SK텔레콤 등과 손을 맞잡은 KEB하나은행 모회사인 하나금융 컨소시엄.

신한금융은 핀테크 서비스인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와 컨소시엄을 꾸렸으나 결국 자본조달 우려로 막판에 발을 뺐다. 인터넷은행의 흑자 전환 시기도 가늠하기 힘든 데다 수익성에 대한 담보 없이 수년에 걸쳐 수천억 원의 자금을 쏟아붓기에는 적잖은 부담이 뒤따른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차 인가 당시에도 신한금융은 인터넷은행 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스탠스를 취해 왔다.

금융당국은 5월 중 진행될 예비인가에서 최대 2곳까지 인터넷은행을 신규 허용할 방침이었지만, 토스 측이 충분한 자본력을 갖춘 새 파트너를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럴 경우 KB국민은행(카카오뱅크, 지분율 10%)과 우리은행(케이뱅크, 지분율 14%)에 이어 KEB하나은행이 인터넷은행의 지분을 보유하게 되며, 직간접적으로 인터넷은행 모두 시중은행의 영향권 아래에 놓이게 된다.

앞서 금융당국은 인터넷은행의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기존 금융사보다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지만, 국내 대표 ICT 기업인 네이버 등이 발을 빼면서 사실상 흥행몰이에 실패한 셈이 됐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대주주는 은행이 아닌 ICT 기업이니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밝혔지만, 대형 시중은행과의 이해관계에 얽힌 인터넷은행이 파괴적 혁신에 나설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미국 아마존의 금융업 진출이 지속적으로 이슈화되는 것은 아마존이 금융서비스를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라며 “시중은행이 참여하는 인터넷은행이 기존 서비스를 위협할 새로운 혁신 기술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는 어불성설이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경제의 잠재 위험요인인 가계부채 부실 등 극단적 위기 상황이 재현될 경우 지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와 유사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의 부실채권이 급격히 늘어나자 자금력과 부실대출 관리 능력을 갖춘 대형 시중은행들이 일제히 저축은행들을 떠안아 자회사로 편입시킨 전례가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7호(2019년 0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