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탈소재로 만들어진 PH아티초크.
메탈소재로 만들어진 PH아티초크.
LIFE • house & story
[한경 머니 = 문혜원 객원기자 | 사진 루이스폴센 제공]

조명은 공간을 연출하는 힘이 가구 못지않다. 게다가 그 조명이 폴 헤닝센의 작품이라면.
공간을 은은하게 감싸는 헤닝센의 조명은 그야말로 화룡점정. 적게는 100만 원대부터 높게는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가격이지만 전문가들은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20세기 초에 디자인된 작품이 왜 지금까지 타임리스 디자인으로 사랑받는지는 스위치만 켜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눈부심 없는 조명
2019년 출시된 PH 시리즈.
2019년 출시된 PH 시리즈.
“나의 목적은 조명을 더 명확하고, 더 경제적이고, 더 아름답게 하려고 과학적으로 일하는 것이다.”

덴마크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폴 헤닝센은 19세기 말 에디슨의 전구 발명 이후 본격적으로 조명 디자이너의 길을 걷는다. 헤닝센의 디자인은 ‘빛을 어떻게 가리느냐’라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산업화와 함께 전기조명에 대한 수요는 늘었지만 가스등의 은은한 조명을 사용하던 이들에게 전기조명은 빛이 너무 강렬했던 것이다.

그는 단순히 갓을 덧대어 빛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빛을 발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빛이 어떤 그림자가 생길지까지 고민했다. 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도 그림자의 형태와 공간 전체의 조도를 밝히는 기능까지 뛰어난 조명을 만들어낸 것이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PH5의 경우 세 개의 갓이 전체 조명의 중심이다. 이 세 개의 갓은 4:2:1의 비율을 이루며 어느 각도에서든 광원이 보이지 않는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PH는 짐작하다시피 폴 헤닝센(Poul Henningsen)의 약자이고 5는 크기를 뜻한다. 조명의 가장 큰 지름이 50cm 되는 것. 1926년 출시된 PH5를 기본으로 수십 년에 걸쳐 다양한 크기의 PH 시리즈가 제작된다. 천장에 다는 펜던트 조명과 테이블 조명, 플로어 조명 등 크기와 형태에 따라 다양한 시리즈의 제품이 개발된다.

PH 시리즈는 아이언 소재 외에도 유리 소재를 사용하는데 현재까지도 여전히 수작업 방식으로 제작한다. 1000개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에서 단 500개만 만들어낼 정도로 제품 하나하나에 들어가는 품이 많다. 유리제품의 경우 블로(blow) 공법으로 장인이 직접 입으로 유리를 불어 만든다. 정교하게 만들지만 기계로 찍는 것과 달리 조금씩은 다르기 마련이다. 균일하지 않지만 이 점이 더욱 예술적 가치를 부여해주는 셈이다. 루이스폴센이 고가 정책을 펼 수밖에 없는 점이기도 하다.

PH 제품에 담긴 이야기

헤닝센의 작품 중 1958년에 출시한 PH아티초크는 마스터피스라고 추앙받는 걸작이다. 덴마크의 랑게리니 파빌리온 레스토랑을 위해 제작됐는데 현재까지도 17개의 펜던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여기에서도 타임리스 디자인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

헤닝센은 제품 개발을 위해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암실에서 무수한 실험과 계산을 반복했다. 이 같은 노력 끝에 빛이 가장 효율적이며 시각적으로 굴절·반사되는 방법을 연구해 PH아티초크를 완성해낸다.

북유럽의 주요 식재료인 아티초크를 본떠 만든 이 작품은 여러 겹의 잎으로 둘러싸인 모습을 하고 있다. 무려 72개의 갓과 100여 개의 부속품으로 만들어진 이 조명은 20여 명의 장인이 달려들어야 비로소 작품 하나를 완성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PH아티초크는 자연물을 닮아낸 외형도 뛰어나지만 기능적으로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72개의 갓이 빛의 황금분할을 만들어내며 빛 반사를 효과적으로 조절하는 것. 특히 이러한 기하학적인 디자인은 어느 각도에서 봐도 눈부심 현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헤닝센의 작품명 중 PH 뒤에 붙는 숫자는 작품의 크기를 의미하지만 PH80만은 예외다. 플로 램프인 PH80의 80은 헤닝센 탄생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붙은 이름이다. 오팔 아크릴 소재로 만든 이 제품은 상단 음영 부분을 붉은색으로 마감해 따뜻한 분위기를 더한다. 1974년 출시된 이 작품은 하지만 그의 생전 생일을 축하해줄 수는 없었다. 그는 제품을 보지 못하고 1967년 사망했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변천해 온 PH 시리즈
폴 헤닝센.
폴 헤닝센.
헤닝센의 제품들은 시대에 따라 소재와 색감을 달리하며 다양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분홍, 파랑, 초록 등 다양하고 과감한 색을 입히는 것에 주목했다면 지난해부터는 소재의 변화에 주목했다. 황동과 구리, 놋쇠 소재를 이용해 자연 소재 그대로의 느낌을 재현하고자 하는 것.

“테이블 조명과 펜던트 조명에는 별도의 코팅을 하지 않아요. 제품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변색이 일어나게 되죠. 그 이유가 빈티지적 가치를 발휘하기 때문이에요.”

박성제 루이스폴센 코리아 대표의 설명이다. 최근 트렌드가 컬러감보다는 자연 소재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는 1920, 1930년대 당시 제품의 느낌과도 비슷하다. 앞으로 루이스폴센은 구리, 청동, 유리와 같은 자연물의 소재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다.

조명에 사용하는 전구도 최근 들어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다. 기존에는 예전 방식 그대로 필라멘트 전구만 사용할 수 있었다. 이후 할로겐램프를 사용할 수 있게 했고, 최근에는 발광다이오드(LED) 전구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상대적으로 LED 전구 사용이 늦은 편. 조명의 외관을 먼저 디자인하는 것이 아닌 빛이 떨어지는 것을 먼저 디자인하기 때문이다. 할로겐이나 LED 전구처럼 기존과는 다른 광원은 연구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2000년대 중후반이 돼서야 LED 전구를 처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공간의 화룡점정 ‘폴 헤닝센의 조명’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7호(2019년 0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