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대국 일본의 연령별 자산관리는
[한경 머니 기고 = 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 노인대국 일본의 연령별 자산관리는 수명이 늘어나면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른 수건 쥐어짜듯 아껴서 저축을 늘려본들 지금처럼 수명이 계속 늘어나면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 아닐까. 지금은 아끼기만 하는 절약(節約)이 아니라 전략(戰略)이 필요한 때로 보인다.

어렵고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있을 때는, 먼저 이 문제를 겪은 사람이나 국가의 사례를 참고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이 잘된 사례라면 교사(敎師)가 될 것이고, 잘못된 사례라면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될 것이다.

전 세계에서 고령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20%를 넘어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지 이미 오래됐고, 지금은 70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도 20%를 넘어서서, 노인대국이라 할 수 있다. 일본 금융청 산하 금융심의회의 시장워킹 그룹에서는 지난 6월 ‘고령사회에서의 자산 형성·관리’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일본 금융청은 이 보고서를 통해 초(超)수명시대에 자산 형성과 관리에 있어 주의할 점을 연령대별로 제시하고 있다. 초고령사회로 향하는 고속열차를 타고 달리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 보고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인대국 일본의 연령별 자산관리는
공적연금만으론 부족

“노후 자금이 2000만 엔이 부족하다.” 지난 6월 일본 금융청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하자 일본열도가 들끓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과거 연금 개혁을 하면서 공적연금만으로 100세까지 거뜬히 버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해 왔는데, 보고서를 통해 일본 정부가 공적연금의 한계를 인정한 꼴이 된 셈이다.

하지만 일본 금융청은 100세 시대에 적합한 연령대별 자산 형성·관리 방법을 제시하면서 일본 국민들에게 ‘자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려는 목적이었지, 사회 불안을 조장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이 생각했던 대로 풀리지 않았다.

‘자조’의 노력을 촉구하는 금융청의 의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공적연금 부실과 관련된 논란만 가중시켰다. 부랴부랴 금융청이 나서 보고서를 철회하자, 이번에는 “보고서를 철회한다고 현실이 달라지느냐”는 볼멘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면 일본 금융청에서 노후 자금이 2000만 엔이나 부족하다고 제시한 근거부터 살펴보자. 먼저 필요 자금 측면에서 ‘장수화’를 들 수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일본인의 수명이 늘어나고 있다. 1950년 무렵 일본 남성의 평균수명은 약 60세였지만, 지금은 81세로 늘어났다. 60세인 일본인 4명 중 1명은 95세까지 살 수 있다고 한다. 65세에 퇴직하면, 은퇴 기간이 30년이나 되는 셈이다. 수명이 늘어난 만큼 준비해야 자금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치매 인구의 증가도 문제다. 2012년 당시 일본의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462만 명이었다. 여기에 기억력이 저하된 경도의 치매 환자가 400만 명이나 된다. 이 둘을 합치면 65세 이상 고령자 4명 중 1명은 치매를 앓고 있거나 판단 능력에 문제가 있는 셈이다. 고령으로 갈수록 치매 환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80대 초반(80~84세) 남성 6명 중 1명, 여성은 4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지만, 80대 후반(85~89세)에서는 환자 수가 배로 늘어난다. 치매 환자가 늘어나면 의료·간병비 부담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준비 자금 측면에서 근로소득과 퇴직금의 감소를 들 수 있다.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경기 침체를 겪는 동안 일본 근로자의 임금은 장기간 제자리걸음을 해 왔다. 지출 또한 수입에 연동되기 마련이어서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에는 퇴직금 제도를 가진 기업도 감소하고 있다. 1990년대만 해도 퇴직금 제도를 가진 기업이 90%를 넘었지만, 2018년에는 80%대로 떨어졌다. 정년퇴직자의 퇴직금 수령액도 평균 1700만~2000만 엔으로, 정점일 때와 비교해 30~40% 감소했다.

직장인들의 퇴직금에 대한 무관심도 문제다. 퇴직금 수령자를 대상으로 퇴직금 수령액을 언제 알았느냐고 물었더니, 응답자 중 30%는 ‘퇴직금을 수령할 때까지 몰랐다’고 답했으며, 20%는 ‘정년퇴직 6개월 이내’라고 답했다.

수명 연장과 치매 환자의 증가로 생활비와 의료비 부담은 증가하는 데 반해, 근로소득과 퇴직금의 감소로 준비 자금을 줄어들면 부족 자금은 커질 수 없다. 그러면 일본 금융청이 노후 자금이 2000만 엔이 부족하다고 한 구체적인 근거를 살펴보자.

일본 금융청이 무직 상태의 부부 가구(남성 65세 이상, 여성 60세 이상)의 가계부를 들여다봤더니, 공적연금을 중심으로 한 수입은 월 20만9198엔인 데 반해, 지출은 다달이 26만3718엔이나 발생했다. 매달 5만4520엔의 적자가 발생하는 셈이다. 앞서 60세 이상 고령자 4명 중 1명이 95세까지 산다고 했다. 그러면 노후 생활 기간이 30년은 족히 넘는 셈인데, 이 기간 동안 매달 5만5000엔 가까운 적자가 누적되면 2000만 엔에 이르게 된다.
노인대국 일본의 연령별 자산관리는
노인대국 일본의 연령별 자산관리는
공적연금에 더해 자조 노력이 필요
노인대국 일본의 연령별 자산관리는
그러면 노후 자금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본 금융청은 개인과 금융기관 모두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4가지 변화를 제대로 직시할 것을 주문했다. 첫째, 수명이 늘어난 만큼 자산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생애 전반에 걸친 자산 형성과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둘째,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면서 개인의 니즈도 제각기 달라졌다. 과거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해서 정년퇴직까지 한 회사에서 일하면서 결혼하고 출산하며 주택도 구입했었다. 그리고 퇴직한 다음 퇴직금과 연금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따라서 각자에게 맞는 라이프 플랜을 상정한 다음, 이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수입과 자산을 파악해 대응책을 수립해야 한다.

셋째, 공적연금 이외에 ‘자조(自助)’ 노력이 필요하다. 공적연금 제도가 주요한 노후 소득원이라는 것에는 변화가 없지만, 저출산·고령화의 여파로 연금액 조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따라서 공적연금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자조 노력이 필요하다.

넷째, 인지·판단 능력 저하에 대비해야 한다. 이제 치매는 더 이상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 인지·판단 능력의 저하로 의사 능력이 불충분하거나, 그렇다고 판단되면 일상생활과 금융 행동에 많은 제약이 가해지므로 철저한 사전준비와 대응이 필요하다.

초수명시대를 이기는 생애주기별 자산관리

일본 금융청은 이와 같은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개인별 대응 방안을 현역기, 은퇴 전후, 고령기로 나누어 제시했다. 먼저 현역기부터 살펴보자. 오래 사는 위험에 대비하려면 현역 시절부터 장기·적립·분산투자로 자산 형성을 시작해야 한다.

이 시기는 수입도 적고 모아 둔 돈도 많지 않다. 이들이 가진 유일한 자산이라면 시간이다. 따라서 하루라도 빨리, 소액이라도 자산 형성을 시작해야 한다. 이 밖에 자신의 수입과 지출 현황을 종합해 라이프 플랜과 머니 플랜을 수립해야 한다.

현역기 대비책을 듣고 나면, 우리나라도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시큰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은퇴 전후 대응 방안에서는 몇 가지 눈여겨볼 만한 것이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인출’에 대한 관심이다.

죽기 전에 노후 자금이 떨어져 ‘무전장수(無錢長壽)’하지 않으려면 노후 자금을 계획적으로 인출해야 한다. 공적연금을 비롯한 정기적인 수입·지출과 자산·부채 현황을 파악해 노후 자금이 부족하지 않은지 파악해야 한다. 퇴직금이 있으면, 그 크기와 수령 방법(일시금, 연금)을 조기에 확인한 다음 플랜에 반영해야 한다.

노후 자금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계속 일하며 추가적인 수입을 모색하거나, 지출을 조정해 비용을 줄이거나, 보유 주택을 매각해 유동자금을 마련하거나, 주거비와 생활비가 저렴한 지방으로 이주하는 것도 선택지에 넣어 둘 것을 권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은퇴 이후에도 투자를 계속하라는 조언이다. 현역기부터 장기·적립·분산투자를 해 왔다면 그대로 유지하면 되고, 투자를 하지 않았던 사람도 은퇴하면서 투자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명이 늘어나서 은퇴 이후 삶이 족히 20~30년간은 지속되기 때문이다. 수명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돈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 같은 돈 문제를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젊어서부터 시간을 가지고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은퇴 시점부터 행동을 시작해도 너무 늦었다고 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고령기를 살펴보자. 나이가 들수록 심신은 쇠약해진다. 심신 상태에 따라서 의료, 간병에 거액의 비용이 들어가기도 한다. 노인 홈과 같은 시설에 입주하는 경우에도 상당한 금액이 필요하다. 따라서 고령기에는 각자 상황에 맞게 머니 플랜도 조정해야 한다.

인지·판단 능력의 저하와 상실에도 대비해야 한다. 인지·판단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자유롭게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일정한 제한이 가해진다는 점이다. 인지·판단 능력 저하·상실 이후에도 금융서비스를 받으려면 사전에 본인의 의사를 명확하게 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본인의 금융 정보를 정리하고, 금융계좌에 적절한 인출 한도를 설정해 과도한 지출을 방지해야 한다. 금융자산의 운용·인출·사용·상속 관련 관리 방침을 미리 정한 다음 이를 신뢰할 만한 사람과 공유해야 한다. 인지·판단 능력에 지장이 있거나 장애자의 생활이나 재산을 지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 중 하나가 ‘성년후견제도’다. 아직까지 이용자가 많지는 않지만, 치매 환자가 증가할수록 이를 이용하는 사람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 고령자를 위한 각종 신탁제도도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성년후견제도와 신탁제도 내에서 자산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금융서비스 제공업자들은 업권의 담장을 넘어 금융 이외의 상품과 서비스 제공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의료·간병 분야 서비스와 연계할 수 있다. 양 분야 모두 고객의 삶에 깊숙하게 개입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의료·간병 분야는 심신을 통해, 금융서비스 분야에서는 돈을 통해. 따라서 이들 분야가 연결되면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다.

지금까지 지난 6월 일본 금융청이 발표했던 ‘고령사회에서의 자산 형성·관리’ 보고서를 통해 초고령사회에서 자산관리 방법에 대해 살펴봤다. 일본은 고령화의 최전선에 서 있다. 선두주자로 나서 고령화와 맞서 싸우는 일본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은, 고령화의 해법을 찾아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2호(2019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