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진주’  홍콩의 경제 운명은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최근 홍콩 시위사태 장기화 등의 여파로 홍콩 경제가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홍콩 경제의 핵심인 금융업은 물론 그동안 불패 신화를 이어가던 홍콩의 부동산 시장도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한때 ‘동양의 진주’로 불렸던 홍콩의 경제 전망은 암울하기만 하다.

홍콩섬 북서쪽 빅토리아항 입구에 있는 중심가인 센트럴은 ‘아시아의 월스트리트’라고 불리는 곳이다. 센트럴 지하철역에서 좌우로 뻗은 퀸즈 거리에는 홍콩증권거래소(HKEX), 국제금융센터(IFC), 홍콩 주요 은행들, 글로벌 투자은행(IB)들과 자산운용사 등 각종 금융사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이곳에는 세계 100대 은행 중 79개를 비롯해 증권업을 하고 있는 법인만 900여 개나 된다. 이곳에서 일하는 인원만 해도 17만여 명이다. 홍콩이 아시아는 물론 글로벌 금융 중심지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경제 전문 잡지 포천은 영국이 홍콩의 주권을 중국으로 반환하기 2년 전인 1995년 6월호 커버스토리로 ‘홍콩의 사망(The Death of Hong Kong)’을 다룬 적이 있다. 지난 9월 8일 센트럴 지하철역 입구에선 홍콩 시위대의 방화로 불길이 치솟았다. 홍콩 시민들은 지난 6월 9일부터 시위를 계속해 오고 있다. 홍콩 시위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개정 반대에서 비롯됐지만 그 이면에는 중국 정부가 강압적으로 추진해 온 ‘홍콩의 중국화 정책’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불만 때문이다.

특히 중국 정부는 2047년까지 50년간 보장하기로 했던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지키지 않고 있다. 일국양제는 하나의 국가에 2개 체제, 다시 말해 국가는 사회주의 체제의 중국이지만 홍콩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와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 따른 각종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홍콩의 민주주의 체제와 자율성 및 정체성을 지키려는 홍콩 시민들은 거대한 중국의 힘에 밀릴 수밖에 없다.

시장조사 업체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는 “서방은 ‘중국의 홍콩화’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홍콩이 중국처럼 바뀌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칫하면 포천의 예측이 맞아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시위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홍콩 경제가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실제로 홍콩의 경제성장률은 지난 1분기 0.6%에 이어 지난 2분기 0.5%를 기록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 3분기 이후 10년 만에 기록한 최악의 분기 성장률이다.

폴 찬 홍콩 재정사장(재무장관)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0~1%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찬 장관은 3분기에도 비슷한 속도로 경제가 둔화한다면 기술적 불황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현재의 상황을 홍콩의 태풍경보 단계에 빚대면서 “이번 경제 태풍은 3단계다”라고 지적했다.

홍콩의 태풍경보는 최고 8단계까지 있으며, 8단계는 홍콩 주식시장의 거래가 중지되는 등 경제가 마비되고 도시 기능이 정지되는 것을 말한다. 홍콩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4.1%를 기록했지만,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지난해 말 1.2%까지 낮아졌다. 앞으로 시위사태가 계속되고 중국 정부가 무력 개입을 지속할 경우 홍콩의 경제성장률은 올 연말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 분명하다.
‘동양의 진주’  홍콩의 경제 운명은

◆‘황금알 낳던’ 홍콩의 추락 징후

국제신용평가기관인 피치는 홍콩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하고 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홍콩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것은 영국에서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되기 전인 1995년 이후 24년 만에 처음이다. 국제신용평가사들 가운데 홍콩의 신용등급을 처음 강등한 피치는 “홍콩 시위사태로 홍콩과 중국의 관계를 규정해 온 일국양제 체계의 범위와 유연성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지적했다. 피치는 “시위 장기화로 홍콩의 통치 체계, 제도, 정치 안정성, 기업 환경에 대한 신뢰가 땅바닥에 떨어지고 있다”면서 “일부 시위자들의 요구가 수용됐으나 중국에 대한 특정 수준의 불만이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홍콩 경제의 핵심인 금융업은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거래소 중 하나인 홍콩증권거래소의 올해 기업공개(IPO)는 지난해보다 3분의 1가량 줄어 88건에 불과했으며, 자금모집액도 108억 달러로 55.9% 급감했다. 특히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가 미국의 뉴욕 증시에 이어 홍콩 증시에 2차 상장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시장에서는 알리바바의 상장공모액이 최대 1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었다. 세계 최대 맥주 제조업체인 AB인베브도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업체인 버드와이저 브루잉을 홍콩 증시에 상장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청다바이오, 위닥터, 톈스리바이오 등 중국 기업들도 홍콩 증시 상장 계획을 연기했다. 중국 기업들의 잇달은 상장 연기와 취소는 중국 정부가 홍콩 경제를 지탱하는 금융시장을 흔들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6월 한 달 동안에만 총 110억5000만 달러 규모의 3개 기업의 대형 상장 계획이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에는 심지어 홍콩 증시에서 신규 상장한 기업 수가 15곳에 불과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30개)의 절반이다. 지난 8월에도 홍콩 증시에서 기업을 공개한 기업은 딱 한 곳이었다. 홍콩 증시는 지난해 IPO 공모액 규모 면에서 365억 달러를 조달해 세계 1위였지만 올 상반기 집계에선 뉴욕 증시와 나스닥에 뒤처진 3위였다.

홍콩 증시의 전체 동향을 보여주는 항셍지수도 추락하고 있다. 항셍지수는 올 들어 지난 4월 장중 3만280.12까지 오른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항셍지수는 연중 고점보다 15% 넘게 하락한 수준이다. 홍콩 증시에선 지난 6월 이래 모두 6000억 달러(724조 원)가 증발했다. 홍콩 증시 분석가들은 항셍지수에 편입된 종목의 영업이익이 올해 약 19%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다.

자금의 해외 이탈도 시작됐다. 자금 이동을 조사하는 업체인 트랜스퍼와이즈에 따르면 7월과 8월 두 달간 자금의 해외 유출이 현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 기간 홍콩으로의 자금 유입보다 홍콩 밖으로의 유출이 2.64배나 많았다. 홍콩 재벌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홍콩 내 자금을 대거 빼내 싱가포르로 이전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홍콩은 미국 달러당 7.75~7.85홍콩달러 사이에서 거래되는 고정환율제(페그제)를 채택하고 있어 과거 세계적인 금융위기 국면에서도 급격한 자금 이탈을 방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 미즈호은행의 아시아 외환 담당 켄 청 수석전략가는 “홍콩달러 환율이 7.84달러 수준까지 오른 데다 증시가 급락한 것은 투자자금이 해외로 이동하는 조짐이다”라고 분석했다.

홍콩 시민들 가운데 더 이상 홍콩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자칫하면 ‘제2의 엑소더스(대탈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해 이민을 떠난 홍콩인은 2만4300명으로 2012년 이후 가장 많았으며 2016년 6100명에 비해 4배나 늘었다. 1997년 홍콩의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기 직전까지 홍콩 주민들 중 30만여 명이 캐나다, 호주, 미국 등으로 ‘엑소더스’ 했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자칫하면 ‘헥시트(HK+exit)’가 현실화할 수 있다.

부동산 불패 신화를 이어가던 홍콩의 부동산 시장도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재 홍콩의 주택가격은 지난 4월 고점에서 평균 19% 하락한 상황이다. 지난 5년간 홍콩의 집값은 계속해서 상승세를 보여 왔지만,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갑자기 급락세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2003년 이후 지난해까지 5배나 치솟은 상황과 대비된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JP모건체이스는 보고서에서 “홍콩의 부동산 시장이 지속되는 사회적 불안,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JP모건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했을 때 집값이 30%까지 추가 하락할 수 있으며, 사무실 임대료는 40%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관광과 쇼핑의 천국이었던 홍콩이 관광객 급감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다. 도시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면세점으로 꾸민 홍콩은 언제나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중국 본토에서 홍콩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은 연평균 4400만여 명으로 전체 관광객들의 76%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대부분 홍콩에서 각종 세계 요리를 즐기고 명품들을 쇼핑한다. 글로벌 명품 기업들은 홍콩에서만 판매되는 홍콩 리미티드 제품을 내놓는다. 홍콩섬과 카오룽반도는 수많은 브랜드를 거느린 거대한 쇼핑몰들로 1년 내내 성황이다. 예년 같으면 지난 8월이 휴가 피크 시즌으로 홍콩 시내의 고급 호텔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하지만 올해는 관광객이 급감함에 따라 고급 호텔들이 개점휴업 상태다. 이 때문에 인터컨티넨털호텔, 미라호텔 등 홍콩의 최고급 호텔들이 직원들을 강제적으로 무급 휴가를 보내고 있다. 일부 호텔들은 자구책으로 가격 할인에 나서고 있다.

애드미럴티, 완차이, 코즈웨이 베이, 침사추이 등 시위대들이 자주 모이는 홍콩 중심가의 호텔들은 지난 8월부터 숙박비를 1년 전보다 50% 이상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일부 호텔들은 70%나 내렸다. 홍콩 호텔들의 객실 점유율은 대부분 50% 밑으로 내려간 상황이다. 홍콩 중심가의 5성급 호텔 숙박비가 1박에 1000홍콩달러(15만 원) 밑으로 내려간 곳도 수두룩하다.

찬 재무장관은 지난 8월 홍콩을 찾은 관광객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40% 가까이 줄었다고 밝혔다. 이는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유행했던 2003년 5월 관광객이 70% 가까이 줄어든 이후 16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이다. 그는 “지난 몇 달간 벌어진 사회문제가 안전한 도시라는 홍콩의 국제적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며 “가장 우려되는 점은 가까운 시일 내에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홍콩 최대의 항공사인 캐세이퍼시픽은 “앞으로 수개월간 항공편 예약 건수가 예년보다 두 자릿수 감소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호주 콴타스항공은 홍콩으로 향하는 관광객 수가 줄어들면서 홍콩행 여객기를 기존 여객기보다 작은 기종으로 바꾸고, 대신 관광객 수가 늘어난 싱가포르, 마닐라행 여객기는 더 큰 기종으로 바꾸기로 했다. 관광객 급감 등의 여파로 명품 업체, 패션 업체, 화장품 업체, 대형 식당도 심각한 매출 부진을 겪고 있다. 소매 부분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홍콩 소매협회에 따르면 8월 매출이 전년 대비 6.7% 급감했다.

중국 정부는 아예 ‘홍콩 죽이기’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광둥성 9개 도시와 홍콩, 마카오 지역을 연계해 세계적 혁신 경제권을 만들겠다는 ‘웨강아오 대만구(大灣區, Great Bay Area)’ 프로젝트에서 홍콩을 제외시켰다. 중국 정부는 선전을 ‘중국 특색사회주의 선행 시범구’로 지정하고 2050년까지 글로벌 금융과 비즈니스 도시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홍콩과 접경한 가난한 어촌이었던 선전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2조4222억 위안을 기록하면서 홍콩(2조4001억 위안)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홍콩의 주권이 2047년 중국으로 완전히 넘어가면 ‘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던 홍콩이 말 그대로 별 볼 일 없는 도시가 될 수도 있다. 아무튼 홍콩 시위사태가 진정된다고 하더라도 아시아의 금융 허브라는 홍콩의 위상은 추락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홍콩은 앞으로 더 이상 ‘동양의 진주’라는 말을 듣지 못할 듯하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3호(2019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