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l 사진 서범세 기자 l 도움글 한국고전번역원] 공자 왈, 맹자 왈, <채근담>과 <탈무드>. 삶의 굽이굽이마다 꺼내드는 생의 지침서들이다. 그런데 왜, 우리 고전은 없을까.
‘지금’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고난에 처한다. 그럴 때 누구든 삶의 굽이굽이마다 꺼내드는 생의 지침서가 있다. 그것은 대개 옛 성인의 지혜가 녹아든 ‘고전’일 확률이 높다.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 사서에 <시경>, <서경>, <역경> 등 삼경. 여기에 수신과 처세의 고전 <채근담>까지. 동양에서 서양으로 세계관을 넓히면 고전의 범위는 더 확대된다. <성경>부터 시작해 <플라톤의 국가>, 그리스 신화인 <일리아스>, 서양판 채근담인 <탈무드>까지.

그런데 ‘생애 꼭 읽어야 할 고전 목록’ 속에 한국 고전은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오천년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한반도에 삶을 관통하는 지혜의 책 한 권이 없었을 리 만무하건만.

민족 지혜의 샘물이자 정신문화의 뿌리, 지적 유산의 총화. 어쩌면 내 삶의 길잡이로서의 고전 역시 밖이 아닌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뿌리이자 나보다 시대를 더 먼저 산 조상들의 이야기 속에 담겨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시대를 뛰어넘어 삶의 지혜를 전하는 고전, 그중에서도 민족의 혈맥을 잇는 한국 고전에 우리의 길을 물었다.
‘지금’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

현실 고민에 대한 선조들의 답은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했던가. 나를 둘러싼 인간,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때로 부조리하고 때로 부당하다고 느낄 때, 복잡다단한 관계와 문제들 속에서 해방되고 싶을 때. 수천 년 전에도 지금 이 땅에서, 지금의 나와 똑같은 문제로 고민했던 옛 성인들이 있었다. 선조들로부터 위안과 해답을 얻는 시간, 한국고전번역원의 도움을 받아 시대를 거스른 질의응답.

Q. 되는 일이 없고 번번이 실패합니다. 이런 제게도 희망이 있을까요.

견고하다 하지 마라. 갈다 보면 뚫리는 법이니.
勿謂堅 磨則穿(물위견 마즉천)
이가환(1742~1801년), <금대시문초(錦帶詩文抄)> 하(下) ‘윤배유연명(尹配有硏銘)’

【이승철 연구원】 조선 후기 문인 이가환이 윤배유의 벼루에 쓴 명문의 일부입니다. 옛사람들은 벼루, 연적, 거울, 지팡이 등 생활에 쓰이는 물건에 글을 새겼는데, 대부분 자신을 경계하는 뜻이나 물건의 연혁을 담은 내용이었습니다. 이 글은 끊임없이 갈다 보면 먹이 벼루를 뚫는 것처럼 아무리 어려운 학업이라도 성실한 자세로 끊임없이 연마하다 보면 성취를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커다란 성취를 이룩한 사례는 역사에서 종종 찾을 수 있습니다. 초서체(草書體)로 일가를 이룬 중국 한나라의 서예가 장지는 연못가에서 돌에 글씨를 썼다가 물로 씻기를 수없이 되풀이해 연못물이 모두 새까맣게 변할 때까지 글씨를 연마했으며, 추사체로 널리 알려진 조선의 서화가이자 학자인 김정희는 칠십 평생 10개의 벼루를 뚫었고 1000여 자루의 붓을 닳게 할 정도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Q.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이 쉽지 않습니다. 늘 화를 내고 나면 후회하게 됩니다.

사랑하여 가르친다는 것이 도리어 해치고 망가뜨리는 방법이 된다.
其所以愛而敎之者, 反爲賊害之術
(기소이애이교지자, 반위적해지술)
윤기(1741~1826년), <무명자집(無名子集)> 문고(文稿) 10책 ‘교소아(敎小兒)’

【김현재 연구원】 평소 아이를 사랑스럽게 대하다가도 아이가 부모의 바람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아이의 행동을 지적해 야단을 치고 호통을 치다가 아이의 행동에 변화가 없으면 체벌을 가하기도 합니다. 윤기는 이러한 행동의 원인이 부모의 조급해하는 마음에 있다고 보고 <논어>와 <맹자>의 글을 인용해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빨리 이루려는 생각을 품지 말고 조장(助長)하지 말라는 경계를 범하지도 말아야 한다. 반드시 힘써 노력하되 기대하지도 말고 잊어버리지도 말아야 한다.”
아이의 더딘 성장을 마냥 지켜보는 것은 분명 쉽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데 아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으면 속이 타고 답답합니다. 부모들이 체벌을 가한 뒤에 이를 당연하게 여기지 못하고 스스로 후회하고 반성하는 것은 아마도 체벌이 최선이 아니며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 했음을 스스로 인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정 아이를 위한다면 우선 순간의 화를 참아내고 차츰 아이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아서, 아이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고 성취해 갈 수 있도록 지켜주고 기다려주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Q. 술을 끊고 싶지만, 의지가 약해 유혹에 빠져듭니다.

아! 술이여, 사람에게 화를 끼침이 혹독하구나.
嗟哉麴糱 禍人之酷(차재국얼 화인지혹)
이황(1501~1570년), <퇴계집(退溪集)> 제44권 ‘주계 증김응순(酒誡 贈金應順)’

【권헌준 선임연구원】 이 글은 퇴계 이황이 문인인 김명원에게 준 잠명(箴銘)의 첫 구입니다. 잠명은 자신과 타인에 대해 경계할 만한 내용을 담은 글로, 이 잠명은 첫 구부터 제자를 경각시켜 바른 데로 이끌려는 스승의 뜻이 간절합니다. 이에 전문을 소개합니다.
“아! 술이여, 사람에게 화를 끼침이 혹독하도다. 장기를 상하게 하고 병을 일으키며 본성을 흐리게 하고 덕을 잃게 하네. 자신에 있어서는 몸을 상하게 하고 나라에 있어서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구나. 나는 그 독을 맛보았거니 그대는 술의 함정에 빠졌구나. ‘억(抑)’편에서 경계하였으니 어찌 함께 힘쓰지 않겠는가. 굳세게 자제하여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라.”
‘억’편은 춘추시대 위나라 무공이 95세에 스스로 경계하면서 지은 시인데, 내용 중에 술에 대한 경계가 수록돼 있습니다. 스승은 술을 즐기는 젊은 제자에게 엄한 훈계를 내렸고, 제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스승의 훈계를 깊이 가슴에 새겨 실천한 듯합니다. 그러기에 뒷날 정여립(鄭汝立)의 난과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데 큰 공을 세우고 좌의정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이 묻고 ‘고전’이 답하다
Q. 365일 옥죄는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일을 줄이고 욕심을 적게 하라.
省事寡慾(생사과욕).
황준량(1517~1563년), <금계집(錦溪集> 외집 제8권 ‘거관사잠(居官四箴)’

【김현재 연구원】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 많은 일을 벌여놓고 힘들어합니다. 하나의 일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일을 벌이고 두세 가지 일을 병행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심하면 병을 얻기도 합니다.
<명심보감>에 ‘生事事生 省事事省(생사사생 생사사생)’이라고 했습니다. ‘일을 만들면 일이 생겨나고 일을 줄이면 일이 줄어든다’는 말입니다. 일이란 것이 잘하려고 하면 계속해서 일이 생겨나고, 안 할라치면 뚝 끊어집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계속 일이 몰리고, 일을 못하는 사람은 늘 일이 없어 쉬고 있지요. 늘 바쁘고 여유가 없는 사람은 일을 줄이는 연습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잘하고 번잡한 일부터 시작해 하나둘 줄여 나가다 보면 점점 일을 줄이는 데 익숙해질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일을 모두 다 잘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사라지면 마음은 한층 여유로워지고 사고는 유연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한층 가벼워진 정신을 자신이 진정 원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로 돌린다면 보다 나은 삶을 꾸려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Q.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을까요.

모름지기 일을 만날 때마다 자신을 단속하여, 마치 엄한 스승과 존경하는 벗의 곁에 있는 것처럼 처신해야 한다.
須觸處斂束 若在嚴師畏友之側(수촉처염속 약재엄사외우지측)
이현일(1627~1704년), <갈암집(葛庵集)> 권17 ‘답훤손(答烜孫)’

【권헌준 선임연구원】 이 구절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갈암 이현일이 손자 지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입니다. 갈암이 한적한 산재에서 홀로 공부하고 있는 손자에게 먼저 당부한 것은 엄한 스승과 존경하는 벗을 대하듯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을 엄격히 단속하라는 말입니다. 이는 자칫 해이해지기 쉬운 손자의 마음을 다잡아주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을 단속하지 못해 나태함과 사욕이 자라게 되면 학문을 지속해 나가지 못할까 염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옛날 공자의 제자인 증자는 ‘남을 위하여 일을 도모해줌에 내 마음을 다하지 않았는가(爲人謀而不忠乎)’, ‘붕우와 더불어 사귐에 성실하지 않았는가(與朋友交而不信乎)’, ‘전수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傳不習乎)’라는 3가지로 매일 자신을 성찰해 결국 성인의 온전한 학문을 수수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단속이 선행된다면 타인의 시선이 있건 없건 자신이 부귀하든 빈천하든 한결같은 자기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3호(2019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