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업계, 실적 악화에 틈새 상품 승부수
[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실적 하락에 신음하는 손해보험업계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틈새 상품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보험 가입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보험 소비자들에게는 위험 대비를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1. 직장인 김지은(가명, 36) 씨는 최근 유방암 보장을 강화한 보험에 가입했다. 김 씨는 “주변에서 유방암 발병이 잦은 것을 보고 유방암 담보에 관심이 많았다”며 “부위별 보장을 선택할 수 있어 다른 암보다 유방암 보장 금액을 높였다”고 했다.

#2. 고혈압과 당뇨가 있는 박돈규(가명, 47) 씨는 문턱을 낮춘 보험에 가입을 고려하고 있다. 5년 이내 암 진단·수술 등만 없으면 다른 질병을 앓고 있더라도 가입이 가능하다는 것. 박 씨는 “중장년이 되면서 보험 가입도 쉽지 않았는데 유병자도 가입할 수 있는 보험이 나오고 있어 관심이 많다”고 했다.

저금리 등 경영 환경 악화로 보릿고개를 겪고 있는 손해보험사들이 돌파구로 인(人)보험 강화를 내세우고 있다. 인보험은 상해, 질병 등 사람의 건강과 생명 등의 위험을 보장하는 것이 주목적인 상품이다. 손보업계에서 그동안 손해율 등을 이유로 주저하던 다양한 틈새 상품이 출시돼 보험 소비자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1가지 질문이면 OK’ 초간편심사보험
유병자, 고령자는 그동안 보험 시장에서 ‘찬밥’ 신세였다. 잦은 병원 방문으로 높은 손해율이 예상된 탓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위상이 달라졌다. 가구당 보험가입률이 98.4%에 달할 정도로 포화상태인 국내 보험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개척 가능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최근 손해보험사들은 간편심사보다 가입이 더 쉬운 ‘초간편심사보험’ 상품들을 잇달아 내놨다. 이른바 1가지 질문으로 가입이 가능한 ‘1Q보험’이다. 기존 간편심사보험은 ▲최근 3개월 이내 입원, 수술, 추가 검사(재검사) 없음 ▲2년 이내 질병이나 사고로 입원, 수술 없음 ▲5년 이내 암 진단, 입원 및 수술 기록 없음 등 3가지 알릴 의무가 있었다. 이에 반해 ‘1Q보험’은 5년 이내 암 등의 진단, 입원 및 수술 기록이 없으면 가입할 수 있다.

삼성화재는 지난 8월부터 유병자 보험인 ‘유병장수 플러스 초간편 플랜’ 판매를 개시했다. 초간편보험은 5년 이내 암, 뇌질환, 심장질환 등 주요 질병 이력만 없으면 누구나 가입이 가능하다. DB손해보험의 ‘1Q 초간편 건강보험’은 계약자의 알릴 의무를 최근 5년 이내 암, 뇌졸중, 심장질환의 진단·입원·수술 기록으로 간소화했다. 메리츠화재는 3개월 이내 입원·수술 관련 소견과 1년 이내 입원·수술 여부만 따지는 ‘간편한 3·1 건강보험’을 선보였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고지사항을 완화해서 더 많은 가입자를 받겠다는 것이 최근 보험 트렌드”라며 “다만 과열된 언더라이팅(인수심사) 완화로 손해율이 악화되면 판매 중단이나 보험료 인상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간편하다고 해도 ‘묻지마’ 가입은 신중해야 한다. 경미한 치료 이력이 있더라도 건강한 편이라면, 일반 보험 가입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유병자나 고령자를 위한 초간편심사보험은 질병 발생 확률이 높은 것을 전제로 보장 범위가 제한적이고 보험료도 비싸게 설계돼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원하는 보장을 골라 담는 ‘DIY형 암보험’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걱정하는 질환이 암이다. 암에 대해 든든하게 위험 대비를 해 두면 좋겠지만 자칫 보험료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최근 손해보험사를 중심으로 ‘DIY(Do It Yourself) 암보험’이 잇달아 출시되며 눈길을 끌고 있다. 가족력이 있는 암만 쏙쏙 골라서 가입할 수 있어 보험 가입자의 부담을 덜어준다. 암보험은 높은 손해률로 인해 한때 보험사들이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지만, 근래에는 2030세대를 겨냥한 미니 암보험, 부위별 보장, 암 전 단계 보장까지 영역이 넓어졌다.

KB손해보험의 ‘KB암보험건강하게사는이야기’는 맞춤형 플랜으로 본인에게 더 필요한 부위의 암 발병 전후 단계 보장을 강화하고 건강관리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일종의 DIY 콘셉트의 암보험으로, 부위별 암 보장을 고객 스스로 선택해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암 환자의 생존율이 높아지고 예방과 관리가 중요하다는 인식에 따라 암 전 단계까지 보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위, 십이지장, 대장의 양성종양과 폴립(용종) 진단비, 갑상선기능항진증 치료비까지 보장한다.

한화손해보험의 ‘마음든든암보험(연만기 갱신형)’은 소화기관암 진단비, 호흡기관암 진단비(호흡기 및 흉곽내기관), 여성생식기관(자궁, 난소, 외음, 질, 태반)암 진단비, 남성생식기관(전립선, 음경, 고환)암 진단비, 비뇨기관암(요로암) 진단비 등을 특약으로 선택해 가입할 수 있다.

보험료 부담을 낮춘 ‘미니 암보험’도 눈길을 끈다. DB손해보험의 ‘프로미라이프 다이렉트 참좋은암보험’은 홈페이지와 모바일에서 가입할 수 있는 인터넷 전용 미니 암보험이다. 기존 암보험 대비 보험료를 낮춘 것이 특징이다. 본인이 원하는 부위별 암 보장을 선택해 가입할 수 있다. 흥국화재가 선보인 ‘실속플러스암보험’도 2050세대를 겨냥한 ‘미니암플랜’을 선보였다. ‘미니 여성특화플랜’에선 여성 특정(유방, 자궁, 난소, 외음, 질, 태반)암 진단비, 호흡기암 진단비, 소장 및 대장암 진단비 등을 보장해주고, ‘미니 남성특화플랜’에선 위 및 식도암 진단비, 간·담낭·기타담도 및 췌장암 진단비, 호흡기암 진단비, 남성생식기 관련(전립선, 음경, 고환)암 진단비를 각각 2000만 원씩 구성해 보장한다.

유의할 점은 암 보험은 다양한 보험 중에서도 민원과 분쟁이 많이 발생하는 상품이라는 점이다. 암의 종류와 치료 범위가 다양하고, 약관에서 정한 방법에 따라 보장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에 가입 전 보장 내용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암은 보험사에 따라 분류 기준이 다르다. 통상 암의 종류에 따라 소액암, 일반암, 고액암으로 분류하는데 이에 따라 보험금이 산정된다. 이는 보험사별로 차이가 있으므로 같은 암에 걸려도 보험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남성은 위암, 대장암, 폐암, 간암, 전립선암 순으로 발병률이 높고 여성의 경우 갑상선암, 유방암, 대장암, 위암, 폐암 순으로 나타났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가족력을 고려하거나 발병률이 높은 암을 중심으로 보험사별 분류를 확인해 암 발병 시 최대한 많이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보험료가 일반 상품 대비 저렴한 미니 암보험은 그만큼 보장 수준도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자동차·실손보험 대신 인보험 주목하는 이유
손해보험업계는 전통적으로 자동차나 주택 등 사람이 아닌 사물에 대한 보장에 강하다. 이러한 손보업계가 최근 인보험 시장에서 격전을 벌이는 것은 상반기 우울한 실적과 관련이 깊다. 자동차보험과 실손보험 손해율 상승으로 고민하는 손보업계는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됨에 따라 운용자산 이익률이 둔화하면서 인보험 공략을 정조준하고 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 상위 5개 손보사의 올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1조986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1조5423억 원 대비 28.77% 급감했다.

주목할 점은 업계 5위인 메리츠화재만 전년 대비 3.1% 늘어난 1361억 원의 순익을 내면서 선방했다는 점이다. 메리츠화재는 손해율이 높은 자동차보험료의 수입보험료 비중은 지난해 11.1%에서 올해 8.2%까지 줄인 반면, 장기 인보장 신계약 매출은 전년보다 32.9%나 늘렸다. 이에 메리츠화재의 누적 장기 인보험 원수보험료는 1093억 원으로 업계 1위인 삼성화재를 약 20억 원 차이로 턱밑까지 추격하는 형국이다.

손보사 관계자는 “문재인케어로 실손보험은 팔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인 데다 총선을 앞두고 자동차보험료의 인상도 막혀 있는 상황”이라며 “인보험은 충당금 부담이 적어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에 대비하기에도 유리하기 때문에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3호(2019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