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박웅서 카카오 소셜서비스기획자]최근 구독이라는 말이 도처에서 다시 쓰이고 있다. 비단 유튜브만은 아니다. 뉴스도, 책도, 영화도 구독해 소비한다. 더 나아가 이제는 옷도 구독해서 입고 꽃도 구독해 향기를 맡으며 심지어 자동차도 구독해서 탄다고 하니 말 그대로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의 시대다. 어쩌다 우리는 구독에 빠지게 됐을까.
구독경제 시대, 습관을 팔다
구독이라는 개념은 예부터 존재했다. 어린 시절 아침마다 밥 먹기 전에 현관 문고리에 걸려 있는 초록색 바구니에서 흰 우유를 꺼내 마시던 경험도 구독이고, 문 앞에 대충 던져진 조간신문을 주워 아빠에게 가져다 드린 기억도 구독이었다. 신문을 지나 TV 방송이 대세가 되자 정기 구독이라는 표현은 점차 사라졌지만 대신 ‘본방 사수’라는 이름으로 탈바꿈돼 그 명맥을 유지했다.

본래 구독이라는 단어는 책이나 신문, 잡지 등을 구입해 읽는 것을 뜻한다. 다만 우리가 보통 구독이라고 할 때에는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구매의 의미가 더해져 있다. 이 개념이 요즘 자주 언급되는 서브스크립션(subscription)이다.

정기 결제로서의 구독은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온라인 커머스 시장이 활성화되며 사그라드는 듯했다. 온라인과 함께 등장한 초기 소셜커머스에서는 정기적인 판매보다는 저렴한 가격 한 방으로 박리다매 수익을 노리는 상품이 더 적합했기 때문이다. 결제로서의 기능이 시들해진 구독 시스템은 대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다른 계정의 소식을 받아보는 팔로우(follow) 개념으로 영역을 넓혀 활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2019년. 지금은 페친(페이스북 친구), 인친(인스타그램 친구)뿐 아니라 모든 게 다시 구독과 맞닿아 있다. 장르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재화와 서비스가 구독 경제로 빠르게 편입되고 있는 추세다.

서브스크립션이 보편화된 북미 시장은 물론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것들을 사지 않고 구독만으로 누릴 수 있다. 우선 커머스 시장에서는 반복적인 구매가 발생하는 일상용품을 시작으로 구독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가격 경쟁이 저점을 찍자 소비자들이 누릴 수 있는 효용성이 한계치에 이르렀고, 고작 몇 백 원 더 싼 상품보다는 조금 비싸더라도 반복 이용이 편리한 서비스로서의 상품(product as a service)이 더 가치를 얻게 된 것이다.

하루 3회 이상 분노의 양치질로 칫솔모가 곧잘 상하고 치약도 금방 떨어진다면? 대나무 칫솔을 만드는 ‘닥터노아’에서 구독 서비스를 신청하면 평균적인 칫솔 교체 주기인 2달에 한 번씩 칫솔 1개와 치약 2개를 정기적으로 배송 받을 수 있다. 매번 최저가를 검색하다 조금이라도 더 싼 면도날을 찾으면 면도기까지 통째로 바꿔 버리는 조삼모사 소비를 실천하고 있는 남성이라면? 면도기 제조업체 ‘와이즐리’가 제공하는 정기 구독을 통해 면도날과 셰이빙 젤을 매달 공급받을 수 있다. 우유 배송, 생수 배송은 이미 너무 흔해진 서비스라 생략하자고? 그럼 맥주는 어떠한가. 물보다 맥주를 더 자주 마시는 애주가들을 위해 ‘벨루가 브루어리’라는 업체에서 격주로 수제 맥주 4개를 배송해주는 구독 서비스를 만들었다.

매번 옷을 사도 매번 입을 게 없는 옷장을 갖고 있는 소비자들을 고려해 의류 상품에도 구독 개념이 도입됐다. 의류 배송 서비스 ‘트렌디’는 새 옷을 3개월에 최대 8벌까지 골라 입는 정기 구독을 선보였다. ‘위클리 셔츠’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매주 3장씩 셔츠를 배송해준다. 매일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직장인에게 딱 맞는 구독 서비스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다면 꽃과 그림으로 집을 꾸며보는 것은 어떨까. 매달 계절에 맞는 꽃을 배달해주는 꽃 배달 서비스 ‘꾸까와’의 국내 작가들의 원화를 3개월마다 교체해주는 ‘오픈갤러리’를 주목해볼 만하다.
구독경제 시대, 습관을 팔다
비단, 구독경제는 스타트업만의 도전적인 실험은 아니다. 현대자동차는 보험료나 주행거리 제한 없이 원하는 자동차를 월 2회 교체해 탈 수 있는 구독 서비스 ‘현대셀렉션’을 선보였다. 현대 외에도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셰, 캐딜락, 미니 등 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해외에서 이미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체격이 빨리 자라 신발을 자주 사야 하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아동신발 구독 상품 ‘나이키 어드벤처 클럽’을 출시했다.

구독과 더불어 배달 문화도 참신하게 변화하고 있다. 신선 먹거리를 주문한 다음 날 새벽에 바로 배송해주는 샛별배송 서비스로 식품 커머스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마켓컬리’는 ‘컬리패스’라는 무제한 무료배송 구독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음식 배달 하면 떠오르는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 역시 배달과 구독을 결합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물론 구독한다고 배달 음식이 공짜는 아니지만 대신 음식 주문 시 할인이 정기적으로 반영되는 개념이다. 배달의 민족도 다른 할인 혜택에 추가로 더해서 사용할 수 있는 더하기 쿠폰 5장을 묶어 쿠폰팩으로 판매하고 있는데 사실상 구독과 비슷하다. 쿠폰 이용 기간이 꽤 넉넉해 정기적으로 치킨과 짜장면, 떡볶이 등을 주문하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소비자라면 쿠폰 사용이 이득일 수밖에 없는데 쿠폰팩을 다 쓰고 주기적으로 재구매하는 습관이 생긴다면, 그게 곧 구독이기 때문이다.

“다운로드가 뭐예요, 먹는 건가요”
저작권을 무시하고 불법 복제와 무단 유포가 난무하던 콘텐츠 시장도 구독으로 인해 분위기가 반전됐다. 음악 산업이 시장 변화에 가장 빠르게 변화했다. 매일 아침 우유를 마시고 신문을 읽던 그때 그 시절, 우리는 좋아하는 음악을 라디오에서 틀어주길 기다렸다가 전주가 흘러나오면 재빨리 빨간 녹음 버튼을 눌렀다.

너무 옛날이야기 같다면 인터넷에서 mp3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 CD를 굽고, 아이리버 mp3플레이어에 옮겨 담던 추억을 이야기해볼까. 그 음악을 만든 뮤지션에게 정당한 저작권료를 지불한 기억이 없다면 라디오 녹음과 다운로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애플이 아이튠즈로 전 세계 음악 시장을 혁신하고, 우리나라에서도 먹는 게 아니라 듣는 멜론이 등장했을 때가 돼서야 음악은 구매해 듣는 거라는 인식이 자리 잡혔다.

이토록 어렵게 곡을 하나씩 구매하게끔 한 음악 시장도 지금은 모두 구독으로 돌아섰다. 애플 뮤직과 멜론, 그리고 유튜브 뮤직도 모두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제공하고 있다. 구독하고 바로 들으면 되는데 음악을 왜 다운로드씩이나 받아야 하는지 요즘 밀레니얼 세대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제 음악 파일을 다운로드 받는 건 비행기 탈 때나 필요한 것 아닐까(심지어 요즘 비행기는 와이파이도 된다고 하니 다운로드는 더 무색해졌다).

음악에 이어 구매의 개념을 벗어던진 건 영상 콘텐츠다. 내가 보고 싶을 때 보고 싶은 영상이 있는 서비스를 구독하기만 하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의 대표적인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가 진출하면서 본격적인 경쟁의 막이 올랐다.

음악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케이블 등에서는 여전히 영화와 TV 드라마, 예능을 건당으로 판매하지만 점점 그럴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최신 영화 한 편을 구매하는 가격이면 대략 한 달 내내 수백, 수천 개의 영상을 즐길 수 있다. 이 어마무시한 가성비는 공짜로 인식된 불법 다운로드마저 번거로울 뿐 아니라 돈 몇 푼에 떳떳하지 못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으로 여겨지게 만들었다. 요즘 스트리밍 서비스는 심지어 인터넷이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도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휴대 기기에 임시로 영상파일을 잠시 저장해주는 오프라인 다운로드 기능을 제공하기도 한다.

텍스트 콘텐츠 시장도 구독경제의 물결에 서서히 젖어들고 있다. 음악, 영상과는 달리 텍스트 콘텐츠는 구독 시스템을 적용하기 꽤 어려운 분야다. 독자들이 공짜 글과 공짜 뉴스에 만성적으로 익숙해져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람들의 시청각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영화, 웹드라마, 웹툰, 팟캐스트 등이 쏟아지는 요즘은 독자가 글을 읽을 시간 자체가 없는 시대이기도 하지 않은가.
구독경제 시대, 습관을 팔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전자책 구독 서비스의 성장과 고퀄리티 뉴스레터들의 등장은 충분히 눈여겨볼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리디북스와 밀리의 서재 등 전자책 전문 업체들이 구독 개념을 도입하며 전자책 구독 시장을 개척했다. 현재는 교보문고, 예스24 등 종이책을 주로 판매하던 업체들도 모두 전자책 정기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화에 이어 이제 책도 월정액 요금으로 개수 제한 없이 읽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스팸 광고로만 여겨졌던 이메일 뉴스레터도 이제는 새로운 뉴스 문화를 이끌어 가고 있다. 요즘 가장 핫하다는 밀레니얼 시사 뉴스레터 ‘뉴닉’은 평균 이메일 오픈율 50%를 자랑한다. 7만 명 이상의 구독자 중 최소 절반 이상이 실제로 이메일을 열고 뉴스를 읽고 있다는 의미다. 이외에도 25~34세 직장인 여성들이 관심 가질 만한 경제 이슈를 짚어주는 ‘어피티’, 40~50대 오피니언 리더들을 위한 뉴스를 소개해주는 ‘피렌체의 식탁’ 등 세밀하게 독자군을 설정해 발송하는 뉴스레터 전문 미디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내 유료 텍스트들은 아직 뉴스레터보다는 개별 서비스 형태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지식 콘텐츠를 지향하는 퍼블리, 책 콘텐츠의 깊이와 저널리즘 콘텐츠의 시의성을 결합한 북저널리즘 등은 모두 정기 구독 형태로 유료 콘텐츠를 판매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여러 뉴스레터들 역시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유료 구독을 포함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 중이다.

아무도, 아무것을 소유하지 않는 시대
구독경제는 현대인의 달라진 소비상을 반영한다. 상품과 서비스 자체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마다 신문을 읽고, 이틀에 한 번은 신선한 우유와 과일을 섭취하고, 매일 옷을 입고 빨래를 하고, 여가 시간에는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고, 이런 것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소비 방식이다. 2019년의 소비자에게는 가격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편리함과 효율성도 중요한 가치다. 원하는 상품을 필요한 기간에 이용할 수만 있다면 꼭 내 것이 아니어도 된다.

소유보다 소비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현대 구독경제는 과거의 구독과 차별성을 갖는다. 과거 신문 구독은 사실 정기적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받아보는 서브스크립션을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일간지를 일 단위, 적어도 월 단위로 계속 결제하게 하는 것보다 할인을 명목으로 1년 치를 한꺼번에 지불하게 하는 데 더 욕심을 부렸다. 신문 1년, 5년, 10년 치를 한꺼번에 구매하면 녹즙기, 자전거 따위를 주기도 했다. 신문을 구독해서 녹즙기를 받았는지, 녹즙기를 사니 신문을 덤으로 보내줬는지 모를 지경이다.

구독경제에서는 짧고 굵은 독자보다 가늘고 얇은 독자가 더 중요하다. 1년 치 비용을 한 방 통 크게 결제하는 독자보다 1달씩 12달 동안 구독을 유지하는 독자가 더 소중하다. 1년 구독자는 다음 해 결제를 유지할지 알 수 없지만 12달을 내리 구독한 독자는 13번째 달도 구독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업들이 사용자가 특정 상품을 처음 접하는 순간보다 상품을 접한 이후 만족도를 신경 쓰기 시작했다는 뜻이며, 소비자의 주머니 사정보다 취미와 취향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구독경제에 뛰어든 기업들은 습관을 판다. 제품 하나가 아니라 제품을 이용하는 서비스를 판다. 칫솔 하나, 면도기 하나에도 철저히 분석하고 정밀하게 겨냥한 ‘의도된 습관’이 들어 있다. 옷을 자주 사고 자주 버리는 것보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옷을 대여해 입는 습관, 큰 맘 먹고 새 차를 지르는 것보다 필요할 때 원하는 자동차를 바꿔 가며 타는 습관을 제공해 익숙해지게 한다. 사용자가 익숙함을 느끼면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구독료가 자동으로 빠져 나간다. 한 달 무료 체험자를 은근슬쩍 충성 구독자로 만드는 것이 기업들의 최종 미션이다.

편리함과 익숙함, 그리고 가성비까지 제공해줄 수 있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도 이득이다. 책을 더 많이 읽는 데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종이책의 물성과 질감을 좋아하던 독자가 스마트폰을 이용해 전자책을 읽게 되는 것도 나쁠 건 없다. 구독경제는 기업들에 고객 관리보다 고객 유지가 더 중요함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라면 고객 분석과 관리를 위해 서비스와 마케팅에 기술적인 요소를 결합해 철저하게 데이터를 분석, 성과를 측정하는 그로스 해킹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10명의 신규 가입자보다 1명의 구독 해지를 더 마음 아프다. 드디어 법인에도 개인과 같은 인간미가 생겼다고나 할까.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귀찮음이다. 구독경제의 경쟁 심화 여파로 피로를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 번 생각해보자. 소비자로서 나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얼마나 구독하고 있고, 구독료로 매달 얼마를 지불하고 있으며, 구독한 서비스와 콘텐츠는 얼마나 열심히 이용하고 있는지. 잘 쓰지도 않고 귀찮은데 심지어 돈까지 나간다면 구독 해지를 면하기 어렵다.

구독 시장이 커지고 서비스가 많아진 탓에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에서도 신규 구독보다 기존 구독을 관리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사람의 시간과 습관을 두고 제품과 서비스와 콘텐츠와 인플루언서가 경쟁하고 있다. 사용자의 일상에 습관처럼 깃들면 구독이고, 사용자가 구독을 의식하고 신경이 쓰인다면 바로 구독 해지다. 이미 구독 중인 것을 들키면 안 된다. 구독을 하나 해지해도 다른 대안이 차고 넘친다. 그래서 지금도 구독 경쟁은 최대한 친절하고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쉿. 누가 구독 소리를 내었는가.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3호(2019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