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제 64호 (2010년 09월)





[최선호의 아트 오딧세이] 거미, 유년기 기억과 욕망의 조각

Louise Bourgeois

거대한 청동 거미조각 <마망>(Maman)으로 대표되는 20세기 대표적인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1911~2010)가 지난 5월 미국 뉴욕에서 영면했다. 향년 99세. 1세기를 바라보는 긴 세월이었다. 부르주아가 남기고 간 수많은 설치 작업과 조각 드로잉 등은 모두 20세기 현대미술의 새로운 획이었다.

1. 마망

, 1999년, 강철과 대리석, 927.1x891.5x1023.6cm, 개인 소장, 뉴욕">
그녀의 작품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유년시절의 불행했던 가족사 즉, 아버지의 불륜, 어머니의 죽음, 언니의 문란한 생활, 남동생의 새디스트 성향 등은 훗날 성장해 작가의 길로 나아가 유년의 기억으로 자리하게 된다. 유년시절의 기억과 욕망에 대해 “나는 나의 기억들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한다. 그것은 나의 사생활이다.

당신이 자신의 기억을 향해 가고 있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향수는 생산적이지 못하다. 만약, 당신의 기억들이 당신에게로 온다면 그것들은 조각을 위한 씨앗이 된다”라고 말했다. 부르주아에게 기억은 아픈 상처다.

프랑스어로 엄마를 뜻하는 <마망>은 철판 조각을 이어 붙여 거대한 거미다리를 만들고 몸통을 실타래같이 만든 다음 아랫배에 철망을 두르고 그 안에 대리석으로 만든 둥글고 거대한 알을 넣은 작품이다. 누가 봐도 알을 품은 거미다.

부르주아는 “알을 품은 암컷 거미를 통해 나의 어머니가 지닌 모성(母性)을 형상화한 것”이라며 “어머니는 거미처럼 실로 태피스트리(tapestry)를 짜던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그녀는 또 “이 작품은 나의 어머니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아버지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 어머니에 대한 연대감 등 유년의 기억을 불러와 자기 알을 보호하려는 모성과 경외감, 두려움을 거대한 크기로 표현했고 상대적으로 가늘고 약한 다리는 상처받기 쉬운 내면을 표현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8.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 야외 전시장에 서 있는 마망

, 1999년, 알을 품고 독을 잔뜩 올린 채 웅크리고 서 있는 거미의 모습에서 작가의 내면이 유감없이 표현된 명작이다.">
<마망>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 덴마크 코펜하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 일본 도쿄의 롯본기 힐스 등에 설치돼 있고 서울의 삼성 리움미술관에도 있다.

단순히 장엄한 크기의 조각이 아니라 모성을 간직한 여성의 강한 생명력의 표상이다. 부르주아는 어떻게 이런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었을까. 예술가의 삶은 곧 예술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에 받았던 내면의 상처는 커가면서 그녀에게 더할 수 없는 분노의 에너지가 됐다.

유년의 기억

2. 1996년 제작한 거미 4

를 안고 환하게 웃는 85세의 루이즈 부르주아. 연륜의 깊이가 거대한 거미의 징그러움도 부드럽게 삭힌다.">부르주아는 1911년 12월 25일 파리, 태피스트리를 수선하고 판매하는 아버지 루이 부르주아(Louis Bourgeois)와 어머니 조세핀 부르주아(Josephine Bourgeois) 사이에서 태어난다.
 
그녀의 어머니는 현명하고 포용력 있는 성격인 데 반해 아버지는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었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는 아이들의 영어 가정교사와 불륜 관계를 맺으면서 어린 부르주아에게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

조세핀은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스페인 독감에 걸렸다. 사춘기 소녀였던 부르주아는 어머니를 간병하며 공방 일을 도왔으나 어머니는 1932년 9월 14일 사망했다.

어린 시절부터 정서적 불안감을 느꼈던 부르주아는 수학의 예측 가능하고 안정된 체계에 끌려 파리 소르본대에서 수학과 기하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곧 수학적 관념이 불변의 진리가 아니며 이론적 구조일 뿐임을 깨닫고 예술의 세계에 들어서기로 결심한다.

부르주아는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 Arts)와 에콜 뒤 루브르(Ecole du Louvre)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몽마르트 및 몽파르나스에 있는 화가들의 스튜디오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 시절에 그녀를 가르쳤던 여러 화가들 중에서도 특히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는 부르주아에게 3차원에 대한 관념을 심어주어 훗날 조각가가 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

1938년 부르주아는 미국인 미술사학자인 로버트 골드워터(Robert Goldwater)와 결혼해 뉴욕으로 이주했다. 1940년대 말부터 기하학의 영향이 엿보이는 조각을 제작하기 시작한 그녀는 1949년 뉴욕의 페리도 화랑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그녀의 조각은 재료가 다양해지고 주제가 과감해진 1950년대와 60년대를 거쳐, 70년대에는 급속도로 부상한 페미니즘 열풍과 함께 더욱 강렬하고 파격적인 인상을 띠게 됐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 정점에 이른 1974년 작 <아버지의 파괴>(The Destruction of the Father)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아버지의 파괴>

부르주아는 악몽 같은 유년기의 기억을 더듬어 <아버지의 파괴>에 대한 작업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저녁식사 시간에 아버지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랑하고 과장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랑을 늘어놓을수록 우리는 점점 더 위축돼갔다. 갑자기 무서운 긴장감이 느껴졌다. 우리 셋-오빠, 언니, 어머니-은 모두 아버지를 붙잡고 식탁 위로 끌어당겨 아버지의 팔과 다리를 잡아 뜯었다. 우리는 매우 성공적으로 아버지를 물어뜯고, 먹어 치웠다.


부르주아의 남편 골드워터가 사망한 다음해인 1974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이 야기한 무시무시한 범죄의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짐승의 핏빛 내장과 엉덩이, 허리와 다리 형상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

신체 부분들이 아버지의 사지이고, 이 설치 작업이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가족 만찬에서 온가족이 아버지를 잡아먹는 장면을 암시한다. 끔찍한 근친살육의 비극은 가부장적인 권력에 대한 부르주아와 가족의 반란이다.

3. 아버지의 파괴

(부분), 1974년, 플라스터·라텍스·나무·천, 237.8x362.3x248.7cm 4. <연회를 위한 의상>(Costume for A Banquet), 1978년, 라텍스, 132x96.5x12.7cm">
설치 아랫부분은 중앙 남근 모양의 길쭉한 형태 주위가 유방 형태의 완만한 곡선들로 둘러싸여 있다.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유방들이 남성과 여성이 대치하고 있고, 마치 유방이 남근을 짓누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은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모티브다.

부르주아는 1978년 ‘연회·신체 부분들을 위한 패션쇼’에서 자신이 디자인하고 제작한 <연회를 위한 의상>(Costume for A Banquet)을 입고 퍼포먼스를 했다. 유방을 온몸에 주렁주렁 매단 이 특별한 의상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 옷은 힘 있는 여성성에 대한 작가의 욕망을 반영하고 있는데, 가부장적 학대에 맞서 투쟁하고 압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성의 젖가슴 모양을 한 형태들이 그녀의 작업에 반복적으로 드러나는데, 때때로 남근이나 손가락, 혹은 달걀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같이 부성을 거세한 모성적인 이미지는 고대 그리스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를 떠올리게 한다. 이 여신을 위한 의식에서는 황소를 거세하고, 남자들을 희생시켰다. 여신의 흉상은 여러 개의 비슷한 모양의 둥근 덩어리들이 튀어나온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거세된 고환들을 가슴으로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부르주아의 여성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91년 <유방>(Mamelles)에서 유방을 개나 돼지 같은 동물들이 주렁주렁 매어 단 것 같은 희극적 형태로 만들어 내고 있다. 엄청난 자학이자 페미니즘의 또 다른 표현이다.

<작은 소녀>

1982년 사진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1946~89)는 부르주아의 인물 사진을 여러 컷 찍었다. 그 가운데 1968년에 제작한 <작은 소녀>(Fillett)의 거대한 남근을 옆구리에 끼고 웃는 사진은 부르주아를 진짜 그녀답게 찍은 것으로, 오묘한 웃음 속에 그녀의 예술, 사상, 철학이 모두 녹아 있는 명품이다. 부르주아에게 남근은 여성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극도의 섬세한 물건이라는 의미에서 <작은 소녀>라는 제목을 붙였다.

5. 로버트 메이플소프, ‘작은 소녀’를 들고 있는 부르주아

, 1982년, 젤라틴 실버 프린트, 50.8x40.6cm, Photoⓒ 1982 the Estate of Robert Mapplethorpe 6. <작은 소녀>, 1968년, 플라스터 위에 라텍스, 59.5x26.5x19.5cm, MoMA, 뉴욕">
사진에서 부르주아는 자신이 좋아하는 원숭이 털로 만든 옷을 입고 있으며 남근은 과장된 크기로 기념비적인 느낌마저 드는데, 부르주아는 그것을 아주 정감어린 물건처럼 다루고 있다.

부르주아에게 남근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남편, 아들에 대한 모성본능이라는 복합적 감정을 함축하고 있는 대상이다. 여기에는 어머니다운 다정다감한 자세로 남성의 성적 기관을 갓난아이처럼 부드럽게 소중히 감싸 안고 있다.

이집트의 고대의식에서 여인들은 대지의 풍요를 관할하는 신인 디오니소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움직이는 남근을 흉내 낸 인조 남근을 아들들에게 가지고 다니게 했다고 한다. 부르주아도 어쩌면 여성에 대한 경의로 남근을 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은 소녀>는 조각의 함축적인 가치나 요구에 주어진 일종의 형식적인 도전이다. ‘남근을 들고 있다’는 사실은 여기에서 어떠한 남성다운 힘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첨가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남성의 취약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꽃>

7. 꽃

, 2009년, 종이에 구아슈, 59.6x45.7cm">2009년, 죽기 1년 전 부르주아는 새해를 기념하는 다섯 송이의 꽃들을 붉은색 구아슈(gouache: 고무를 수채화 그림물감에 섞어 그림으로써 투명한 수채물감과는 다른 불투명한 효과를 내는 기법)로 드로잉했다. <꽃>(Les Fleurs)은 그녀의 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내 꽃들은 부치지 않을 편지들입니다. 그 꽃들은 내가 좋은 딸이자 누나였고, 또한 좋은 아내이자 엄마였음을 보여줍니다. 꽃들은 다른 여인을 사랑했던 아버지의 경솔함을 용서합니다.

꽃들은 나를 유기했던 어머니를 용서합니다. 또한 병석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살려내지 못한 나의 죄를 용서합니다. 꽃들은 속죄의 편지입니다. 꽃들은 재생과 부활을 이야기합니다.

이 꽃들은 살아있습니다. 그들은 감각과 감성으로 충만합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연결돼 원만하게 움직이는 동맥, 정맥, 내부 기관들로 이루어진 살아 숨 쉬는 구조물입니다. 그들의 근원은 혈액, 내장, 정액, 양수입니다.

그들의 욕망과 임신, 성(性)에 대해 말합니다. 그들은 나의 연애편지입니다. 그들의 향기는 과거를 일깨웁니다. 그들은 내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기억입니다. 이 꽃들은 내 기억이 되살아나도록 도와줍니다. 현재와 과거를 잇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합니다.

기억과 욕망을 뒤섞습니다. 이들은 내가 유년시절에 보았던 태피스트리에서 나온 꽃들입니다. 이 꽃들로부터 어머니가 태피스트리를 보수할 때 사용했던 염료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꽃들로 나의 어머니는 푸토(putto: 르네상스시대의 장식적인 조각으로 큐피드 등 발가벗은 어린이의 조각상)의 성기가 잘려져 나가 생긴 구멍을 메웠습니다.


<꽃>은 마치 부르주아 자신의 피로 그린 내장기관 같기도 하고 펄펄 끓는 청춘의 용솟음 같기도 하다. 100년을 바라보는 그 긴 인고(忍苦)의 세월을 붉은색 하나와 붓질 몇 번으로 정리한 유언이다. 부르주아는 그렇게 붉고 붉은 마음으로 세상에 꽃 피우고 조용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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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0-09-1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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