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e Magritte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1898~1967)는 초현실주의 화가다. 그의 그림에는 안과 밖이 없고,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없다. 사실 같은 초현실에 사람들은 눈을 빼앗기고 즐거워한다. 그의 작품은 분명히 허구임에도 웃으면서 속고, 언어의 유희에 철학자들조차 논란의 대상으로 삼는다.
1. <골콘다>(부분), 1953년, 캔버스에 유화, 81×100cm, 휴스턴 메닐미술관
1. <골콘다>(부분), 1953년, 캔버스에 유화, 81×100cm, 휴스턴 메닐미술관
마그리트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보통 예술가들과는 다른 철저히 사생활이 가려진, 비범한 평범인이었다. 그가 즐겨 그린 중산모를 쓴 점잖은 신사는 자신이었고, 그가 적었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철학적 명제가 됐다.
[최선호의 아트 오딧세이]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그림에 전통적으로 부여하는 회화의 덕목 즉, 원근법과 명암법, 구도, 색채, 질감 그리고 표현의 테크닉 같은 일반 회화의 범주를 경계하고, 사유의 힘과 언어의 유희를 캔버스에 올렸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차분하게 들여다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탁월한 사실주의 화가다. 사물이 가지고 있는 표정과 느낌을 풍부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그는 피카소, 브랑쿠시, 모딜리아니, 로트렉, 뒤샹 같은 예술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인, 비평가들과 어울렸다.

문인들과의 교유는 그의 작품에 문학적 감수성을 불어 넣었고, 시적인 작품 제목은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보다는 난해한 명제로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림을 그린 사람이나 그림 내용, 그림 제목 할 것 없이 모두 마그리트라는 초현실주의 DNA를 가지고 있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 화가가 맞다.

세상을 보는 상상력

마그리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가 <골콘다>(Golconde)다. 유럽의 전형적인 붉은 기와지붕의 복합주택을 배경으로 중산모를 쓴 신사들이 푸른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그림이다. 얼핏 보면 인물이 몇 개의 패턴으로 나뉘어 서 있는 듯 보이지만 표정과 자세가 모두 다르다. 그림 속 정장외투를 입고 모자를 쓴 중년 남성들은 모두 마그리트의 자화상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복제인간같이, 풍선처럼 서있는 하지만 풍선은 아닌, 마치 컴퓨터 그래픽의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로 만든 것 같은 인물들의 무표정은 현대사회의 고독이다. 전경의 인물은 건물에 그림자를 드리워 공간을 유지하고, 하늘에는 인물들이 점점이 눈송이처럼 멀어져 간다.

초현실주의 화파의 기괴함보다 서정적 장식의 따뜻함이 배어 있다. 이 그림의 제목인 ‘골콘다(Golconde)’라는 단어의 뜻을 알기 전에는 도무지 그림과 연결이 안 된다.

마그리트는 이 그림에 대해 “여기에 수없이 많은 다른 남자들이 있다. 하지만 군중을 생각할 때, 당신은 그 개인을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군중을 암시하기 위해 이 남자들은 모두 가능한 한 단순한 모양의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 골콘다는 인도의 부유한 도시, 경이로운 도시였다. 나는 내 자신이 하늘을 걸을 수 있는 것을 경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중산모는 아무런 놀라움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것은 모자라는 전혀 독창적이지 못한 물건인 것이다. 중산모를 쓴 평균의 남자는 익명의 보통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는 대중과 구별되고 싶은 욕구가 그다지 크지 않다”라고 적고 있다.
2. <보시스의 풍경> 앞에 선 마그리트. 모자 가게를 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가 즐겨 쓴 중산모는 파이프와 함께 마그리트의 아이콘이다.
2. <보시스의 풍경> 앞에 선 마그리트. 모자 가게를 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가 즐겨 쓴 중산모는 파이프와 함께 마그리트의 아이콘이다.
앞에 선 마그리트. 모자 가게를 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가 즐겨 쓴 중산모는 파이프와 함께 마그리트의 아이콘이다.">
그의 설명도 이해가 잘 안되기는 마찬가지다. 도대체 인도의 중세 도시 골콘다와 그의 그림에 어떤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골콘다는 16세기 전반부터 17세기 후반까지 인도 남부 데칸의 다섯 이슬람 술탄왕국 중 하나인 시아왕국의 수도였다.

수도 근처에 고급의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는 도시로 부와 힘이 넘쳤지만 결국 무굴제국에 의해 폐허가 된 역사 속 도시다. 골콘다의 경이와 그 자신이 하늘을 걷는 경이로운 비현실이 착각이라는 것을, 누구나 쓰고 자신도 쓰고 다니는 중산모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상징이어서, 경이로운 물건이 아니어서 어떻다는 말인가. 마그리트의 <골콘다>를 통해 우리의 사유가 얼마나 부족한지, 세상을 보는 상상력이 얼마나 팍팍한지 새삼 생각해 볼 일이다.

이미지의 배반

마그리트의 작품에 드러나는 이미지의 애매모호함은 현실 세계의 실제 공간과 화면 속의 가상공간에서 대립하는 무엇인가의 모순을 보여준다. 이미지의 모순을 대표적으로 그린 작품이 <이미지의 배반>(The Treachery of Images)이다.
3. <이미지의 배반>, 1928~29년, 캔버스에 유화, 62.2×81cm,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3. <이미지의 배반>, 1928~29년, 캔버스에 유화, 62.2×81cm,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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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는 캔버스에 하나의 파이프를 단순하게 그리고 바로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적음으로써 회화에서의 묘사 혹은 재현의 모든 과정에 의문을 불러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그려낸 이미지가 파이프라는 오브제를 나타낼 수도 있고, 잘못된 언어와 결합하면 이미지가 오히려 오브제 그 자체로 여겨질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화가의 묘사가 우선인지 철학자의 사유가 먼저인지 의문을 던진다. 화면에 파이프를 그려놓고 아무런 설명이나 문구 없이 작가의 사인만으로 마무리했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그 오브제를 담배 피우는 파이프라고 생각할 것이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하니 이것은 무슨 말인가. 여기서 사유의 혼란이 시작되고 회화의 본질이 흔들린다. 마치 그림 속의 꽃처럼 눈으로는 화려하지만 향기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허구의 세계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착각에 모두 속고 있는 것을 마그리트는 단순하고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다.

프랑스의 심리학자 미셸 푸코는 그의 저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서 “(말과 공간에서) 공통의 공간이 없으며, 그들이 간섭할 수 있는, 말들이 형상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림들이 어휘의 질서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없다”라고 하고, 평론가 김현은 이 말을 받아 “그것에 이름을 붙여주는 언표와 그것을 형상화해야 하는 그림 사이에 끼어 있는 파이프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파이프가 아니다.

그것은 파이프가 아닌 것이다. 있는 것은, 그림의 이름과 텍스트의 참조물을 동시에 증명하는 ‘어느 곳에도, 파이프는 없다’라는 언표뿐이다”라고 풀어 설명한다. 이어서 “말과 그림과 대상이 사라지고, 공 위에 자리 잡은 언표만이 있는 세계가 푸코가 묘사한 마그리트의 그림 공간이다”라고 정의한다. 철학은 비평의 고수가 알아주나보다.

착각

착각은 마그리트 회화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어다. 1936년 마그리트가 서른여덟에 그린 <자화상>(Clairvoyance)을 보자. 여기 한 남자(마그리트 자신)가 이젤 앞에 앉아 날갯짓 하는 새 한 마리를 그리고 있다. 이 남자가 모델로 바라보는 것은 새가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알이다.
4. <자화상>, 1936년, 캔버스에 유화, 54.5×65.5cm, 브뤼셀 및 파리 이시 브라쇼미술관
4. <자화상>, 1936년, 캔버스에 유화, 54.5×65.5cm, 브뤼셀 및 파리 이시 브라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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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움직이는 새가 아니라 아직 태어나기도 전인 새알을 보고 다 자란 새의 날갯짓을 그리고 있다. 이건 분명 착각이다. 진지한 화가의 무표정에서, 새와 알과 이젤 이외에 어떤 장식도 배제한, 철저히 초현실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장치만으로 이렇게 경이로운 이미지를 선사하다니.

마치 지금 막 우주선 발사기지에서 굉음과 연기 불꽃을 내뿜으며 발사 카운트다운을 마치고 기지를 떠나는 찰나를 발사전망대에서 한 화가가 이젤을 펼쳐놓고 그 장면을 그리는데, 화면에도 눈으로 보이는 실황과 똑같이 우주선이 발사기지를 막 이륙하는 장면이 천연덕스럽게 그려져 있는 것같이, 사실 같은 착각은 마그리트의 힘이다.
5. <강간>, 1934년, 캔버스에 유화, 25×18cm, 브뤼셀 및 파리 이시 브라쇼미술관
5. <강간>, 1934년, 캔버스에 유화, 25×18cm, 브뤼셀 및 파리 이시 브라쇼미술관
, 1934년, 캔버스에 유화, 25×18cm, 브뤼셀 및 파리 이시 브라쇼미술관">마그리트의 강렬한 초현실주의 이미지들 중 하나가 <강간>(The Rape)이다. 마그리트의 절친한 친구이자 프랑스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조르주 바타유는 이 그림을 마주할 때마다 흥분해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그 웃음은 바타유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웃게 만든다. 새벽의 여명이 대지를 밝히는 듯 단순한 배경에 얼굴을 가슴과 배꼽, 치골로 눈, 코, 입을 만든 대범함은 욕망으로 똘똘 뭉친 강렬한 청춘을 상기시킨다.

안경을 쓴 듯, 뭐라 뭐라 주절거리는 표정에서 그야말로 즐거운 초현실의 초상이다. 이렇게 구성된 얼굴은 화가와 관람자들의 은근한 욕망, 즉 어떤 여성들은 그들이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대로 자신들의 성적 관심을 전할 수 있음을 반영한다.

대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회화예술에서 우리 삶의 매 순간 지속적으로 흔적을 남기는 성적 매력을 이렇게 인상적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는 걸작이다. 마그리트는 얼굴의 진실을 몸으로 대체해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이미지의 구현으로 완성했다.

마그리트의 또 다른 대표작 <빛의 제국>(The Empire of Lights)을 보자. 저택의 정원에 등이 켜져 있고 정원 연못에 반사된 불빛이 고요하다. 창문으로는 불빛이 흘러나온다. 깊은 밤의 풍경인데 하늘은 대낮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의 벽지 같은 ‘마그리트 구름’이 하늘에 떠다닌다. 푸른 가을 하늘 같은 선명함이다.
6. <빛의 제국>, 1954년, 캔버스에 유화, 146×113.7cm, 브뤼셀 벨기에왕립미술관(Musee Royaux des Beaux-Arts)
6. <빛의 제국>, 1954년, 캔버스에 유화, 146×113.7cm, 브뤼셀 벨기에왕립미술관(Musee Royaux des Beaux-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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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의 풍경 속에 마음을 가둔다. 마그리트는 이 그림에 대해 “나는 <빛의 제국>에서 서로 다른 개념, 즉 밤의 풍경과 낮에 보는 하늘을 한 화면에 재현했다. 이 풍경은 우리로 하여금 밤의 어둠과 낮의 하늘을 동시에 생각하게 한다.

내 생각에, 이 낮과 밤의 동시성은 낮과 밤의 허상을 깨고 마음을 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힘을 시(詩)라고 부른다” 라고 적고 있다. 시인이 언어로 보는 상상의 세계나 예술가가 이미지로 읽는 초현실의 세계는 같다. 시적 감수성은 회화적 상상력의 에너지다. 시인도 화가지만 그도 시인이다. 마그리트는 사물을 바라보며 시적 세계를 거닐었다.

마그리트의 부인 조르제트 베르제를 모델로 제작한 <영원한 증거> (The Eternally Obvious)는 몸에 대한 단편적인 관점을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보여준다. 각각의 그림은 각각의 이미지만 존재한다. 얼굴은 얼굴, 가슴은 가슴, 배는 배 등으로 독립된 개체다.
7. <교장>(Le maitre d’ecole>, 1955년, 캔버스에 유화, 80×60cm, 개인 소장 8. 마그리트의 부인 조르제트 베르제를 모델로 제작한 <영원한 증거>, 1948년, 캔버스에 유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최선호2010ⓒ
7. <교장>(Le maitre d’ecole>, 1955년, 캔버스에 유화, 80×60cm, 개인 소장 8. 마그리트의 부인 조르제트 베르제를 모델로 제작한 <영원한 증거>, 1948년, 캔버스에 유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최선호2010ⓒ
(Le maitre d’ecole>, 1955년, 캔버스에 유화, 80×60cm, 개인 소장 8. 마그리트의 부인 조르제트 베르제를 모델로 제작한 <영원한 증거>, 1948년, 캔버스에 유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최선호2010ⓒ">하지만, 이 다섯 작품을 적당한 간격으로 배열하면 하나의 완전한 이미지로 보인다. 안 그려진 부분은 마음으로 보고 다 보인다고 착각한다. 명백한 착각이지만 엄연한 전신 누드화다.

마그리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같이, 차원이 완전히 왜곡돼 있음에도 동시적으로 그려낸 것같이, 노출과 은폐를 적당히 혼용해 사람들로 하여금 상상케 한다.

마치 현실에서 완전한 전체를 보는 것같이…. 그가 가진 예술의 수수께끼는 무궁하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아는 평범한 일상의 오브제를 완전히 새롭게 해석해 새로운 조형의 세계를 만들어낸 마그리트의 착각은 이후 시인 화가들과 영화, 연극, 문학, 철학 심지어는 광고에 이르기까지 문화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마그리트는 1898년 11월 21일 벨기에의 에노에서 태어나 1967년 8월 15일 브뤼셀 자신의 집 침대에서 말기 췌장암으로 69세의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한다. 그는 익숙한 우리의 감각을 뒤집고 관습을 거부하며, 실제 세계를 시험하기 위해 화면과 애쓰며 일생을 보냈다.
[최선호의 아트 오딧세이]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전 생애 동안 성공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었다. 작품으로 인한 성공이나 그에 대한 반감은 개의치 않고, 항상 터무니없는 계획과 부조리한 개념에 젖어 일상을 보냈다. 그는 고통과 모든 불행의 근본인 우울증으로 괴로워했으며, 기존의 회화작품이 가지고 있는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극도로 혐오했다.

특히, ‘예술가’라는 이름을 거부하고 자신은 ‘생각하는’사람이며, 작곡가나 문인들이 자신의 음악과 글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듯이 회화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그는 예술가이기 전에 몽상가였다. “나는 마치 나 이전에 그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생각한다”고 하는 그의 관념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묘사한 자신의 이야기였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파이프다.

[최선호의 아트 오딧세이]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최선호 111w111@hanmail.net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동 대학원, 뉴욕대 대학원 졸업.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시카고 스마트뮤지움, 버밍햄 뮤지움 등 작품소장. 현재 전업화가. 저서 <한국의 미 산책>(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