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음(無用)의 쓸모있음(有用)

노자(老子)와 함께 도가(道家)의 두 기둥이 되고 있는 장자(莊子)의 철학은 당시 지배자의 지위에서 몰락하고 있던 사상가들이 뜻대로 되지 않는 사회 속에서 개인의 삶에 얽힌 근심과 고난으로부터 해방돼 관념론으로 도피하려고 했던 인생관을 표현했다고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은 당시 지배자 중심의 정치체제에 관심을 집중한 유가(儒家)의 허점을 냉정하게 지적하고, 후미진 이면의 모습을 거침없이 보임으로써 약자 또는 피지배자에게 새로운 시각의 지평을 열어주어 용기를 갖게 해주었고, 인간 전체를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위대한 역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장자>(안동림 역주·현암사)의 ‘인간세(人間世)’ 편에 있는 우화는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측면을 말해주고 있다.

장석(匠石; 큰 목수)이라는 사람이 제나라로 가다가 큰 사당나무를 보았다. 그 크기는 수천 마리의 소를 가릴 정도이며, 굵기는 100아름이나 되고, 높이는 산을 내려다볼 정도다. 구경꾼이 장터처럼 모여 있으나 장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 제자가 한동안 그 나무를 지켜보다가 장석에게 달려와 물었다.

“저는 도끼를 잡고 선생님을 따라다니게 된 뒤로 이처럼 훌륭한 재목(材木)은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그대로 지나쳐 버리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장석이 대답했다.

“그런 소리 말게. 그건 쓸모없는 나무야. 그것으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널을 짜면 곧 썩으며, 기물을 만들면 곧 망가지고, 문을 만들면 진이 흐르며, 기둥을 만들면 좀이 생긴다네. 그러니 저건 재목이 못 되는 나무야. 아무 소용도 없으니까 저처럼 오래 살 수 있었지.”

이 이야기는 세속적으로 유용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반드시 유용하거나,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꼭 무용한 것만은 아님을 지적하면서 유용과 무용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장자>에는 이러한 역발상의 이야기들이 무수히 많아서 가히 역발상의 보고라 부를 만하다. ‘새옹지마(塞翁之馬)’나 ‘등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라는 우리 속담도 이와 흡사하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나, 절대적으로 나쁜 것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빠져있는 고정관념에서 과감히 벗어나 그 이면을 보면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정관념에서 과감히 벗어나 그 이면을 보면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고정관념에서 과감히 벗어나 그 이면을 보면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3M의 ‘포스트잇’과 정신과 의사 우종민 교수

3M의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1980년대에 개발한 ‘포스트잇(Post-it)’이 있다. 아무 데나 척척 붙였다가 떼어낼 수도 있고 붙였던 자리에 아무런 자국도 남기지 않는 메모지. 그런데 실은 이 아이디어 상품도 연구자의 원래 뜻에 어긋난 실패작에서 탄생됐다고 한다.

3M의 연구원인 스펜서 실버는 종래의 접착제보다 강력한 접착제를 만들려고 했는데 개발과정에서 약품 처리를 잘못해 간단히 떨어지는 접착제를 만들고 말았다. 그런데 과거의 다른 접착제와는 달리 실패작인 이 접착제는 떨어진 곳에 자국이 전혀 남지 않았다.

이 실패작을 유용하게 만든 것은 바로 아트 프라이라는 동료였다. 그는 찬송가 페이지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이 접착제를 바른 종이를 붙여놓는다면 유용할 거라고 생각했다.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개발된 포스트잇은 전 세계로 팔려나갔으니, 이것은 전적으로 아트 프라이의 역발상의 효과라 할 수 있다.

<뒤집는 힘>(우종민 지음·리더스북)을 쓴 정신과 의사 우종민(인제대 서울백병원)의 처음 꿈은 외과의사였다. 그러나 군의관 시절 축구를 하다가 왼팔을 다쳐 절망하다가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절망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고 판단해 오른손만으로 할 수 있는 정신과를 택했다고 한다.

그는 “변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면 역발상, 즉 뒤집는 힘이 필요하다. 뒤집는 힘은 역경에 처했을 때 더 빛을 발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우리 주위에 널려있는 쓸모없을 것 같은 사물이나 실패한 사실의 이면을 뒤집어 보면 의외로 유용한 쓸모와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도 있다.

아프리카에서의 신발 세일

아프리카에 신발을 팔러 보낸 두 세일즈맨의 정반대의 보고는 마케팅 교육에서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한 사람은 “부장님, 큰일 났습니다. 이곳에 와 보니 이 부족들은 오랜 옛날부터 신발을 신지 않는 관습이 있습니다. 그러니 도저히 신발을 팔 수가 없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세일즈맨은 전혀 다르게 보고했다.

“부장님, 대박이 예상됩니다. 이곳의 부족들은 아직까지 한 번도 신을 신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어렵기는 하겠지만 잘 설득해 추장에게 샘플을 주어 신발이 얼마나 편리하고 좋은지를 알려주면 아마도 살 사람은 무궁무진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똑같은 현상을 해석하는 방법도 이렇게 정반대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신발을 팔고, 에스키모에게 냉장고를 팔 수 있는 것이 바로 역발상의 비즈니스다.

<역발상 마케팅>(여준상 지음·원앤원북스)에서 저자는 단순히 새로운 생각을 했다고 해서 모두 역발상인 것은 아니고, “이미 존재하는 생각, 관념, 상식에 대해 거꾸로, 바꾸어, 거슬러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식이나 고정관념, 그리고 습관이라는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의 유연성이 역발상을 낳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발상은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까. 아무나 역발상을 하고 싶다고 역발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창조적 기업의 10가지 발상전환>(후지자와 구미 지음·멘토르)에 보면, 스위치박스를 만드는 한 일본 회사는 1965년에 설립돼 직원 780명이 있는 업체인데 연간 휴일을 140일로 하고, 출근은 아침 9시 15분, 퇴근은 오후 4시 45분이다.

잔업은 전혀 없다. 그런데 이 회사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렸던 1990년대에도 20% 가까운 영업이익률을 올렸다고 한다. 그 원인을 조사해보니 바로 역발상으로 종업원들에게 여유를 줌으로써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효율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무시간 정책은 구글(Google)에서도 볼 수 있다. 구글에는 특별한 규칙이 있다. 적어도 업무시간의 20%는 무엇이든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는 규칙이다.

이 ‘20% 규칙’은 기업문화를 확립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 개발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가정이나 기업 등의 조직에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역발상을 위해, 그리고 사고의 유연성을 위해 자유 시간을 인정해주는 분위기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누구나 살다 보면 어렵고 힘들 때가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장자>를 꺼내들고 포스트잇을 붙여둔 면을 다시 펼쳐보면서 위안을 얻는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요(堯)나라 임금이 허유(許由)에게 천하를 넘겨주려고 하자 허유가 사양하면서 말했다는 다음의 구절이다.

“뱁새가 깊은 숲 속에 둥지를 틀더라도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고, 생쥐가 황하의 물을 마신다 해도 제 작은 배를 채우는 데 그친다( 巢於深林不過一枝, 偃鼠飮河不過滿腹).”

전진문 영남대 경영학부 겸임교수
일러스트·추덕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