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그림 속 커플들은 다정하고 보기 좋은 모습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미스터리한 느낌에 ‘도대체 화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들의 그림을 그렸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그림들도 있다.

두 편의 그림을 읽어보면서 이 미스터리한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지 함께 생각해 보자.

얀 반에이크(Jan Van Eyck),<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The Arnolfini Portrait), 1434년,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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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초상화. 남자와 여자는 손을 경건하게 잡고 서 있다. 남자는 한 손을 가슴 언저리에 들고 무언가를 서약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여자는 한 손을 자신의 배 언저리에 가져다 대고 있는데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려진 이 그림은 마치 방 안에 우리도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림의 모델은 당시 부유한 상인으로 추정되는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다.

수많은 책과 매체에서 다룬 이 그림은 워낙 자체가 수수께끼투성이인지라 이것 외에 다른 가설들도 난무하지만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정설은 이 그림이 상인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며 그들의 결혼 서약 장면을 나타낸 그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이 결혼 서약 장면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화가는 그림 속의 여러 소품들을 사용해 관객들에게 힌트를 주고 있다.

먼저 그들의 발치부터 살펴보자. 발밑에 서 있는 강아지는 본래 주인에게 충실한 본성을 지닌 동물이다. 따라서 부부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 충실한 애정을 대표해주는 동물이라 할 것이다. 그들이 벗어놓은 신발은 성경 구절에 기초한 것으로 보이는데, 구약성경에 보면 출애굽기 편에서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대목이 나온다.

그때 하나님은 “이곳은 성스러운 장소이니 신발을 벗으라”고 말하는데 신발은 매우 세속적인 물건으로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경건한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기독교적 윤리관에서 나온 것이다. 이들이 신발을 벗고 결혼 서약에 임하는 것도 마찬가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림 왼쪽으로 시선을 옮겨보면 창가와 그 아래 탁자 위에 놓인 사과 몇 개가 보인다. 역시 최초의 부부인 아담과 이브가 지은 원죄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 확실하다. 천장에 매달린 화려한 샹들리에에 켜진 단 하나의 촛불은 인간이 지은 수많은 죄에도 불구하고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죄를 지었으되 하나님의 사랑으로 새롭게 태어나며 제2의 인생을 사는 결혼식에 어울리는 상징이다.


그림은 또한 성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이들 뒤편의 붉은색 침대는 그들이 부부임을 암시한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첫날밤의 순결을 의미하듯이, 지극히 전근대적이긴 하지만 침대의 붉은색 역시 첫날밤에 처녀막에서부터 흘러나오는 피로 침대가 물들 것을 암시하는 다소 성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쯤에서 자연히 여자의 배로 눈길이 가게 되는데 마치 임신한 것처럼 불러있는 여자의 배를 보며 ‘과연 처녀일까’ 하며 갸우뚱하는 관객들이 있을 법하다. 여자의 배는 속도 위반으로 불러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 유행하던 복식 중 하나라고 한다. 그림 속 수많은 상징들 중 마지막으로 벽에 걸린 거울을 살펴보자.
거울 속 반에이크와 그 위의 문구가 보인다
거울 속 반에이크와 그 위의 문구가 보인다
그림의 크기가 워낙 작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거울 속에는 놀랍게도 이 부부 두 사람 외에 다른 두 사람이 더 있다. 푸른 옷을 입은 남자와 붉은 옷을 입은 남자. 이 두 사람은 신성한 결혼 서약의 증인으로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바로 화가인 얀 반에이크 자신이며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은 그의 조수로 추정된다. 친절하게도 화가는 거울 위 벽에 자신이 함께 있었다는 증거를 남겨놓았다. 거울 위의 벽에 라틴어로 쓰인 문구는 ‘ 얀 반에이크가 1434년에 여기 있었다’고 돼 있다.

그랜트 우드(Grandt Wood), <아메리칸 고딕>
(American Gothic), 1930년, 미국 시카고 미술관 소장
<아메리칸 고딕>
<아메리칸 고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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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를 지나 현대로 훌쩍 뛰어넘어 또 하나의 미스터리한 커플을 만나보자. 그림 속에 서 있는 근엄하고 보수적인 모습의 남녀는 당시의 전형적인 미국 농촌 부부의 모습이다. 마치 청교도들처럼 금욕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이 남녀는 누구일까.

화가인 그랜트 우드는 미국 아이오와 주에 살고 있었다. 그는 어느 날 당시 유행하던 건축 양식인 카펜터 고딕양식(Carpenter Gothic)으로 지어진 흰색 농가를 보고 저 집 안에서 살고 있을 법한 사람들을 그리기로 결심한다.

전형적인 미국 농가에 살고 있는 전형적인 커플을 그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여동생과 마을의 치과 의사에게 부탁해 모델을 서게 해 이 그림을 완성했다. 희한하게도 모델인 여동생과 치과 의사는 서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화가인 우드가 한 명씩 따로 모델을 서게 해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림 속 남자는 안경을 쓰고 근엄한 얼굴로 쇠갈퀴를 들고 있다. 한눈에 봐도 고집스러운 얼굴. 쇠갈퀴는 강도 높은 노동으로 집안을 지켜나가는 가장인 그의 위치를 말해주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쇠갈퀴의 모양이 그림 곳곳에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남자가 입고 있는 옷에도 이 모양이 드러나 있고 뒤로 보이는 집의 위층 창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옆에 서 있는 여자는 남자와의 관계가 모호하게 남아 오늘날까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림을 보는 이들은 이들이 부부일 것이라 생각하고, 반면에 여자를 남자의 딸로 해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모델이 됐던 화가의 여동생은 실제 그림 속에서 자신이 너무 나이 들어 보이게 그려진 것에 대해 당혹감을 표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그림은 화가의 생각보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는 너무나 유명해져 몇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작품이 됐다. 언론은 일제히 이 그림이 당시 미국 중서부 시골 문화를 풍자한 작품이며, 답답할 정도로 보수적이고 금욕적인 시골 미국인들을 희화화해서 그린 작품이라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런 탓에 우드의 고향인 아이오와 주민은 몹시 분노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여자는 우드의 귀를 물어뜯어버리겠다며 협박하기도 했다. 정작 화가인 우드는 “나는 아이오와 사람들을 풍자해서 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미국인들의 건전한 모습을 그리고자 했던 것”이라며 항변하기도 했다.

강지연 _ 교사. <명화 속 비밀이야기>, <명화 읽어주는 엄마> 저자
네이버 블로그‘귀차니스트의 삶(http://blog.naver.com/oilfree07)’ 운영. oilfree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