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에서 피카소가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었던 것처럼 중세시대에도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추구한 화가가 있었다. 히에로니무스 보슈(Hieronymus Bosch·1450~1516)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난해함을 느낀다. 그의 그림 속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상징이 등장해 보는 이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그러나 하나하나 뜯어보다 보면 어느새 헤어날 수 없이 그림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중독성도 있다. 보슈의 그림 속 주제는 주로 ‘바보’들인데, 쾌락과 탐욕에 빠진 인간군상을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한 나머지 섬뜩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바보들의 배(The Ship of Fools), 1490~1500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바보들의 배
바보들의 배
그림 속 배는 별로 크지 않은데 사람들로 빽빽하게 차 있다. 더구나 배 주위에는 그 배에 올라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맴도는 인간들도 있다. 위태위태한 것이 꼭 가라앉을 것도 같다. 그런데 그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복장을 보면 수도사와 수녀도 있다. 가운데 돛대 대신 세워진 나무에는 빵이 매달려 있고 그 밑에서 수녀와 수도사는 입을 벌리고 그걸 먹겠다고 아우성이다. 그 왼쪽 옆에 있는 수녀는 아예 한 손에는 술병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다른 이의 멱살을 잡고 싸우고 있다. 무엇이든 절제하고 금욕해야 할 수도사와 수녀들이 이러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말해 무엇하랴. 배 위에는 온통 탐욕에 물든 사람들뿐이다.

배는 돛대도 사공도 없으니 인생처럼 그냥 정처 없이 흘러갈 뿐이다. 어떤 목적도 없고 미래도 없이 그저 오늘의 쾌락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고 보면 르네상스 시대나 요즘이나 사람들의 모습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맨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바다에 먹은 걸 토해내고 있다. 그가 붙들고 있는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남자는 꽤 튀는 복장을 하고 있는데 보슈는 ‘바보들의 배’에 걸맞은 진짜 바보의 상징을 여기에 그려 넣었다. 남자가 쓰고 있는 모자는 당나귀의 귀를 달고 있으며 들고 있는 지팡이 위에는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그 시대 바보의 복장이었다고 한다. 이 남자야말로 이 배에 있는 바보들을 대표하는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겠다.

가운데 돛대 대신 서 있는 나무는 풍요의 나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 나무는 죽은 나무다. 나무 위에 걸쳐진 해골이 그것을 암시해 준다. 결국 이 배에 탄 사람들의 최후를 알려주는 것이다. 돛대나무에 매달린 고기를 먹으려고 칼을 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마치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몰래 사과를 따먹으려다 큰 죄를 지은 아담의 모습과 비슷하다.

배 뒤로 멀리 펼쳐지는 멋진 황금빛 풍경은 아름답기만 한데,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자기 욕심만 채우고 있다. 타락한 인류는 결국 가라앉고 말 것이라는 이 날카로운 풍자, 보슈가 주는 교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쾌락의 정원(Garden of earthly delights), 1500년경,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강지연의 그림읽기] 얽히고설킨 바보들의 세상
쾌락의 정원
쾌락의 정원
[강지연의 그림읽기] 얽히고설킨 바보들의 세상
보슈가 그린 이 세 폭의 제단화는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림을 읽어야 할지 당황한다. 그도 그럴 것이 수많은 인간 군상들과 도대체 알 수 없는 기이한 피조물들이 등장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들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 그림은 제단화의 형식을 빌려 제작됐지만 실제로 제단화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작품명인 ‘쾌락의 정원’ 역시 보슈가 직접 지은 것이 아니다. 너무나 적나라하고 초현실적인 그림 속 묘사 때문인지 이 그림은 원래 종교화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그럼 세 폭의 그림을 하나씩 차례로 살펴보자.

왼쪽 패널에 그려진 에덴동산에서는 잠이 들었던 아담이 막 깨어나 처음으로 이브를 마주하게 된다. 신은 잠든 아담의 갈비뼈를 빼내어 이브를 만들었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에덴동산에는 온갖 날짐승과 들짐승이 구분 없이 사이좋게 어울려 노닐고 있다. 그러나 선과 악의 구분이 없던 이곳에서 이브의 등장은 앞으로 어떤 사건을 몰고 올 것을 암시한다.



강지연 _ 교사. <명화 속 비밀이야기>, <명화 읽어주는 엄마> 저자. ‘귀차니스트의 삶 (http://blog.naver.com/oilfree07)’ 운영. oilfree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