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오딧세이

몽블랑은 정상의 만년설처럼 영원히 지속 가능한 최고의 품질을 지향하는 독일인의 철저한 장인정신과 철학이 만들어낸 필기구의 혁신이다.

솔 마커스(Soul-Makers), 몽블랑
솔 마커스(Soul-Makers), 몽블랑
몽블랑 스타, 필기구의 대명사 MONTBLANC
몽블랑(Montblanc)은 만년필의 대명사다. 몽블랑은 100년 역사를 지닌 독일 만년필 제조회사의 이름이다. 육각형의 하얀 별 로고 ‘몽블랑 스타’는 몽블랑의 심벌이다. 몽블랑 만년필은 1990년 10월 3일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와 동독의 로타어 메데지에르 총리가 역사적인 동·서독 통일조약에 서명할 때 사용됐으며, 독일의 토마스 만 같은 대문호부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까지 근현대사의 굵직한 획을 그은 명사들의 애장품이자 역사였다.

정상에 덮인 만년설 때문에 ‘흰 산’이라는 의미의 몽블랑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국경 알프스산맥에 위치한 유럽 최고봉이다. 몽블랑은 정상의 만년설처럼 영원히 지속 가능한 최고의 품질을 지향하는 독일인의 철저한 장인정신과 철학이 만들어낸 필기구의 혁신이다. 몽블랑은 글자 그대로 몽블랑 스타가 됐다.
마이스터스튁 149, 만년필, 18K 골드, 1924년,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49, 만년필, 18K 골드, 1924년, 몽블랑
필기구의 역사

필기구의 역사는 문자와 함께했다. 인류가 말을 하고 글로 적어 무엇인가를 전하고 기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뭇가지나 돌멩이 같은 초보적인 도구에 의존했다. 서양에서 펜(pen)의 어원은 라틴어로 penna(깃털)다. 베토벤이 심각한 표정으로 작곡한 악보를 필사하기 위해 새의 깃털에 잉크를 찍어 썼던 영화 속 장면에 나오는 그것이다.

초기의 펜은 갈대의 줄기로 만든 갈대 펜이나 거위의 날갯죽지에서 뽑은 깃털 펜을 사용했다. 깃털 펜은 깃털을 물에 담가 불린 다음 건조시키고 뜨거운 모래에 담금질을 해 끝을 단단하게 만든 다음 깃의 끝을 비스듬하게 잘라 펜의 모세혈관을 이용해 글씨를 쓴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깃털 펜은 닳으면 써지지 않았기 때문에 책을 베끼는 필경사나 고관대작의 비서들은 작은 문구용 칼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촉이 망가지면 연필 깎듯이 깃털 펜을 손질해서 다시 쓸 수 있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몽블랑 스타, 필기구의 대명사 MONTBLANC
고대부터 중세를 거쳐 오랜 세월 동안 사용돼 온 깃털 펜이 금속 펜으로 진화하게 된 것은 18세기 중엽 이후다. 교육의 확대와 더불어 글을 쓰는 것은 더 이상 소수 지식인들의 특권이 아니었기 때문에 필기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780년 영국의 S. 해리슨이 오늘날의 강철 펜을 발명했고 J. 미첼이 기계 설비로 대량 생산해 실용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신문 보스턴 미캐닉은 보스턴의 페레그린 윌리엄슨이라는 사람이 금속 펜을 발명했다고 보도했고, 1808년에 발간된 독일의 정기간행물은 쾨니히스베르크의 학교 선생이 발명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어떤 프랑스 소책자에서는 프랑스 사람이 금속 펜을 처음 발명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초기의 금속 펜은 금속가공 기술 수준이 낮아 종이가 긁히고 찢기기가 다반사였다. 시간이 흘러 품질이 충분하게 향상된 후에야 금속 펜은 산업사회 최초의 소모품으로 완전하게 자리매김한다.
몽블랑 스타, 필기구의 대명사 MONTBLANC
몽블랑의 장인들
몽블랑의 장인들
만년필은 펜이 달린 몸통에 잉크를 저장해 모세관(毛細管) 현상에 따라 일정량의 잉크가 흘러나오도록 만든 것이다. 영어의 파운틴 펜(fountain pen)이라는 말은 잉크가 분수처럼 솟아 나오는 펜이라는 뜻이며, 일본말인 만년필(萬年筆)은 천년만년 마르지 않고 매우 오래도록 쓰는 펜이라는 의미다.

연필은 1564년 영국에서 흑연이 발견됨에 따라 연필심이 개발되고 1566년 이를 나무 조각에 끼워서 쓰기 시작한 것이 기원이 됐다. 현대적인 연필 제조법은 흑연과 진흙을 섞어 만든 심을 고온에서 가열하는 방법을 고안해 낸 프랑스 화학자인 니콜라 자크 콩테(Nicola Jcques Conte)에 의해 이루어졌다. 미술 재료에서 콩테(콘테)는 목탄과 더불어 많이 쓰는 화구로 굵고 진한 연필대용으로 쓰는데 그 뿌리는 현대식 연필을 개발한 사람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현대식 만년필은 1884년 미국의 루이스 에드슨 워터맨(Lewis Edson Waterman)이 실용화했다. 보험판매원이었던 워터맨은 중요한 보험 계약을 하려고 계약자에게 잉크를 찍은 펜을 건넸다. 그런데 그 펜에서 잉크가 쏟아지자 불길한 징조라고 믿은 계약자는 보험 계약을 엎어버렸다. 계약이 무산되자 워터맨은 잉크가 새지 않는 새로운 펜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만년필을 개발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
몽블랑 로고의 모티브가 된 만년설로 덮인 몽블랑.
몽블랑 로고의 모티브가 된 만년설로 덮인 몽블랑.
화이트 스타

몽블랑은 1906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탄생했다. 함부르크의 문구상인 클라우스 요하네스 포스와 은행가 알프레드 네헤미아스, 엔지니어 아우구스트 에버스타인이 공동으로 세운 만년필 공장이 그것이다. 1908년 심플로 필러펜 컴퍼니(Simplo Fillerpen Company)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한 후 다음 해 스탕달의 소설 제목 ‘루즈 앤 느와르(Rouge & Noir)’에서 이름을 빌려온 루즈 앤 느와르 펜을 출시하면서 당대 지성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1909년 ‘몽블랑’이라는 상표를 등록하고 회사에서 생산하는 전 필기구의 이름을 몽블랑으로 쓰고 1913년 육각형의 부드러운 모서리를 지닌 하얀 별 ‘몽블랑 스타’를 브랜드 로고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24년에 몽블랑 브랜드의 상징이 된 만년필 ‘마이스터스튁(Meisterstuck)’을 출시했다.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소비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마이스터스튁은 몽블랑의 가장 클래식한 제품이다. 펜을 손에 쥐었을 때 그 부드럽고 단단한 볼륨감과 우아한 자태는 심장 같은 따듯함이 있다.

뚜껑을 열고 잉크가 종이로 흘러나가는 자태는 정말이지 예술이다. 부드러우면서도 단정한 품격은 그대로 글자와 사인이 되고 시간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랑과 역사가 된다. 1929년에 마이스터스튁 펜촉에 몽블랑 산의 높이 4810m를 의미하는 숫자 ‘4810’을 새겨 넣었다. 몽블랑 정상의 품질과 자부심을 오롯이 담은 것이다.
몽블랑 만년필.
몽블랑 만년필.
몽블랑 정상의 여섯 봉우리를 상징하는 화이트 스타는 장인정신을 향한 몽블랑의 의지를 보여준다. 로고 하나의 이미지는 브랜드 전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몽블랑의 흰 산 이미지는 천년만년 변하지 않는 만년설처럼 순결한 종이 위에 펜에서 흘러나온 잉크가 영원성을 담보함을 상징한다. 몽블랑 만년필의 고급스러움은 만년필 뚜껑에 새겨진 몽블랑 스타의 하얀 봉우리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몽블랑 만년필을 가방이나 필통 주머니에 넣지 않고 와이셔츠의 가슴 상단 포켓이나 양복의 안창주머니에 꼽고 바람에 펄럭일 때마다 슬쩍슬쩍 보여주는 것을 즐겼나 보다. 굳이 실용적인 필기구가 아니라 갖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문기(文氣)와 여유가 흐르는 일종의 사치가 됐다. 실용을 넘어 사치로 발전하기까지 사람들에게는 몽블랑 만년필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만큼 실용적이고 그만큼 멋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몽블랑을 호기롭게 꺼내어 여유롭게 쓰고 싶은 욕망은 필기구 사치의 정점이다.

소설가 최명희는 1930년대 전라북도 남원의 몰락해 가는 양반가의 며느리 3대(代) 이야기를 다룬 대하소설 ‘혼불’의 원고를 몽블랑 만년필로 써서 탈고했는데 그의 심경은 자신의 소설이 최고의 가치를 지속하기를 염원해 최고의 필기구를 선택했을 것이다. 몽블랑을 선택한 것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저 인간 누구에게나 담긴 최고를 향한 염원이다.

‘무소유’로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무겁게 한 법정스님은 몽블랑 만년필 엑스트라 파인의 아주 가늘고 뾰족한 펜으로 원고를 썼다. 사람들의 성정으로는 보통 정도의 가는 펜도 날카롭다고 할 지경인데 스님의 펜은 창의 날카로움이었다. 백척간두 진일보의 대쪽 같은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대목이다. 왜, 글을 쓰든 문서에 서명을 하든 국가의 대사를 기록하는 데 몽블랑을 선택했을까. 답은 하나다. 정상을 향한 염원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몽블랑 정상의 여섯 봉우리를 상징하는 화이트 스타는 장인정신을 향한 몽블랑의 의지를 보여준다. 로고 하나의 이미지는 브랜드 전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몽블랑의 흰 산 이미지는 천년만년 변하지 않는 만년설처럼 순결한 종이 위에 펜에서 흘러나온 잉크가 영원성을 담보함을 상징한다.
몽블랑 정상의 여섯 봉우리를 상징하는 화이트 스타는 장인정신을 향한 몽블랑의 의지를 보여준다. 로고 하나의 이미지는 브랜드 전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몽블랑의 흰 산 이미지는 천년만년 변하지 않는 만년설처럼 순결한 종이 위에 펜에서 흘러나온 잉크가 영원성을 담보함을 상징한다.
장인의 손끝

독일은 전통적으로 장인의 힘을 사랑하는 나라다. 독일은 양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난 다음 군수물자와 기계공업 부문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오늘날 독일 제품의 우수성은 카메라에서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의 명성을 구가한다. 그것은 독일인의 과학적 사고와 창의성, 그리고 장인정신과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몽블랑의 펜촉 하나에도 독일 정신과 독일의 장인정신이 담뿍 깃들어져 있다.

몽블랑의 펜촉은 금(gold)과 이리듐(iridum)을 사용해 제작한다. 펜촉의 가장 기본 소재는 우수한 탄성과 유연성을 지니고 있는 금이다. 금 펜촉은 실용 이전에 부와 권력의 상징이다. 하지만 금은 무른 성질 때문에 전체를 금으로 제작하면 펜촉의 끝은 점점 무뎌진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매우 단단하고 부식이 되지 않는 이리듐을 펜촉의 끝 부분에 용접해 골드로 이뤄진 펜촉의 끝이 무뎌지지 않도록 해준다. 또한 가장자리를 연마해 종이의 긁힘을 방지하고 잉크를 순조롭게 흘려보낼 수 있도록 만든다.
1963년 독일-프랑스 우호조약이 맺어질 당시 독일을 방문한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에게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49 만년필을 건네는 콘트라 아데나워 독일 총리.
1963년 독일-프랑스 우호조약이 맺어질 당시 독일을 방문한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에게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49 만년필을 건네는 콘트라 아데나워 독일 총리.
높은 기술이 요구되는 이 작업은 수작업으로 원을 그리는 움직임을 무수히 반복해 펜촉의 끝이 완벽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여기에 광학용 정밀 돋보기를 이용해 보기 힘들 정도로 아주 작은 흠집까지도 찾아내는 검사가 이루어진다. 그야말로 장인정신의 발로다. 펜촉 하나에 100년 기업의 철학과 품질을 담는 것이다. 몽블랑의 사랑은 열정의 산물이다. 몽블랑 펜은 디자인과 수요에 따라 금 이외에도 백금과 로듐 등의 첨단소재로 만들어지고 있다.

하나의 완성된 몽블랑은 전체 100단계 이상의 공정을 거치고 한 달 반의 시간이 소요된다. 18K 골드 펜촉을 제작하는 데 35단계의 공정과 15종류의 각기 다른 테스트를 합격해야만 하나의 완성된 제품이 탄생한다. 예를 들면 기후변화 테스트는 사막과 극지, 열대우림기후 등 열악한 환경 조건을 설정해 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테스트하는 것이다.

만년필은 배럴 안에 공기가 잉크를 밀어내면서 잉크가 새어나오는 원리로 작동하기 때문에 높은 지대의 낮은 기압은 배럴 내부의 압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져 잉크가 외부로 새어나올 수 있다. 따라서 얼마의 기압까지 펜에 이상이 발생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지 테스트한다.
토마스 만과 몽블랑 만년필.
토마스 만과 몽블랑 만년필.
토마스 만 만년필, 2009년 1만2000개 한정, 몽블랑
토마스 만 만년필, 2009년 1만2000개 한정, 몽블랑
고도가 높은 비행기 안에서 기압의 차이로 잉크가 새지 않을까를 염려해 시행하는 비행 시뮬레이션 테스트가 그것이다. 점잖은 신분에 몽블랑 만년필을 양복 포켓에 꼽았다가 잉크가 새어 얼룩이 지면 그야말로 낭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 완성된 최고의 결정체니까.

몽블랑의 닙(nib) 테스트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팔(8)자를 그리면서 진행하는 테스트는 어디서, 어떤 스타일, 어떤 각도로 필사를 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완벽한 부드러움을 보장한다. 몽블랑에서 제작, 출시되는 모든 만년필에 시행되는 일종의 제품 통과 시험이다. 몽블랑은 명품이다. 몽블랑의 모든 작업은 단순히 숙련된 경험만이 아니라 정교함과 완벽함을 추구하는 강한 열정의 소산이다. 손으로 직접 연마해 만들어진 펜촉은 전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다. 몽블랑 만년필을 소유한 모든 이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펜을 갖게 되는 것이다. 명품의 조건이다.


몽블랑의 지독한 사랑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으로 잊힌 연애편지를 쓰는, 성공한 최고경영자(CEO)의 영원한 로망이다.
몽블랑 스타, 필기구의 대명사 MONTBLANC
최선호 111w111@hanmail.net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동 대학원, 뉴욕대 대학원 졸업.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시카고 스마트뮤지움,
버밍햄 뮤지움 등 작품 소장. 현재 전업 화가. 저서 ‘한국의 미 산책’(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