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S CLOTHING CULTURE

재미, 창의성, 그리고 탁월함의 도시, 나에게 각인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모습이다. 바르셀로나는 오래된 역사의 바탕 위에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는, 살아 있는 도시다. 그곳에서 만난 가우디와 미로, 그리고 패션 이야기.

바르셀로나 중심가인 그라시아 거리에 있는 고품격 맨션인 카사 밀라.
바르셀로나 중심가인 그라시아 거리에 있는 고품격 맨션인 카사 밀라.
피렌체가 르네상스의 천재들을 탄생시킨 도시라면 바르셀로나는 현대예술의 천재들 가우디, 피카소, 미로, 달리 등에 의해 만들어진, 그리고 그들이 아직까지도 만들어가고 있는 도시랄 수 있다. 과거의 천재들이 탄생시킨 예술작품을 현대의 예술가들이 이어받으며 위트를 더하니 도시는 늘 새로움이 넘쳐난다.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고딕지구, 아르누보 예술, 럭셔리한 소비문화를 선도하는 그라시아, 많은 이들의 소통과 문화의 공간이 되는 라 람블라 거리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시크, 그리고 가우디를 만나다

이런 다양한 예술과 문화들이 오늘날 바르셀로나의 패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관찰하려 치면 그 요소요소에 빠져들어 정신을 놓기 십상이다. 고딕지구는 이 지방 특유의 카탈로니아 양식을 띠는데 카테드랄에서 산 하우메 광장 주변 거리가 모두 품위 있고 아름답다.

길 안내 이정표도, 집 문패도 세라믹으로 예쁘게 제작한 점이 재미있다. 별 것 아닌 듯싶다가도 우리나라의 초록색 철제로 만든 단조로운 이정표들을 떠올리면, 이 도시의 미적 감각이 새삼 놀랍게 다가온다.

개인적 견해로는 바르셀로나는 과일가게가 ‘예술’이다. 천혜의 날씨와 환경에서 거둬들이는 수많은, 그리고 너무도 예쁜 색을 띠는 과일들이 전시된 가게는 마치 세상 아름다운 색상을 다 모아놓은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생과일 주스를 판매하는 가게도 굉장히 많다. 싱싱한 여러 과일을 혼합해 만드는 주스까지 약 50개의 레시피를 가지고 판매하니 한번쯤 꼭 먹어볼 만하다).
가우디 특유의 형형색색 모자이크로 장식된 건물들과 자연이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구엘 공원.
가우디 특유의 형형색색 모자이크로 장식된 건물들과 자연이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구엘 공원.
고딕양식으로 가득한 이 도심에서 발견하는 현란하고 모던한, 초현실주의와 비슷한 구스토 바르셀로나의 메인 숍을 보면 누구라도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란하고 대담한 발상의 프린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옷에서 피카소, 미로, 가우디를 만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다. 자칫 경박해 보일 수 있는 이 옷들은, 그러나 바르셀로나의 예술감각과 만나 그 자체로 시크하다. 재킷, 티셔츠 등의 주 소재가 고급 스트레치 면이고 색감과 프린트 디자인이 화사하고 위트가 넘쳐 홈웨어로도 활용이 좋아 방문할 때마다 한두 개씩 구입하곤 한다.

강한 태양과 지중해, 화려한 꽃과 색색의 탐스러운 과일들, 그리고 밝고 청명한 날씨. 하늘이 스페인에 선물한 이 모든 것들이 색에 대한 영감을 자극하지 않을까 싶다.
라 람블라 거리에서는 아르누보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무언극 배우, 악사, 전위예술가, 가판대, 화사함이 가득한 꽃집, 과일과 수산물이 가득한 거대한 보케리아 시장은 활기차고 이색적이며 패셔너블하다.
라 람블라 거리에서는 아르누보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무언극 배우, 악사, 전위예술가, 가판대, 화사함이 가득한 꽃집, 과일과 수산물이 가득한 거대한 보케리아 시장은 활기차고 이색적이며 패셔너블하다.
바르셀로나 남성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필자가 제작해본 셔츠들.
바르셀로나 남성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필자가 제작해본 셔츠들.
좁은 골목골목에서 만나는 오래된 건물들에 빼곡히 들어선 프린트 의류, 가죽, 액세서리 소품 숍들은 또한 전 세계 옷쟁이들과 쇼퍼들이 바르셀로나를 찾게 하는 쇼핑 스폿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명품 숍과 편집숍 들이 늘어선 라 람블라 거리와 라이에타나 거리 사이 좁은 골목들에 자리 잡은 작은 가게들에서는 무스탕, 가죽 등 흔하게 볼 수 없는 다양한 희귀 아이템들을 살 수 있다.

작지만 개성 넘치는 숍들과 레스토랑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북적이는 모습에서 예전의 영화를 느낀다. 이 도시는 가로등마저 패셔너블하다. ‘가우디의 힘이구나!’ 실로 이 도시에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구엘 공원, 카사 밀라, 미로 미술관 등 도처에 가우디의 건축과 미로의 작품들의 동심과 환상의 세계가 흩뿌려져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거리의 예술가.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거리의 예술가.
재킷 ‘라펠’로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다

패션에서도 이 독특한 예술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구스토 바르셀로나(Gusto Barcelona), 데시구알(Desigual), 캠프(Camp) 등 로컬 브랜드들은 밝고 화려하며 동시에 이들의 라이프스타일답게 실용적이고 재미있다. 평범한 디자인에 입힌 강렬하고 다양한 색상들의 신비한 조화는 마치 마법과 같아 이들로 하여금 입을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는 것 같다.

바르셀로나의 예술적 감각과 새로움, 그리고 탁월함은 시민들의 패션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남성 시티 웨어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종류 라펠은 감격적이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귀찮아서 혹은 구입이 쉬워서) 유행하는, 즉 기성복에서 선정하고 많이 뽑아내는 일명 ‘그 해의 라펠’을 많이 입는데 이곳의 남자들은 본인의 취향과 개성에 맞는 제각각의 라펠이 달린 재킷을 입는다.

감격과 감탄이 몰려온다. 그 와중에도 나름의 유행은 있다. 현재는 중국 스타일이 유행을 선도하는지 차이나 스타일의 라펠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여러 색상과 소재를 섞어 몸통과 소매의 색상을 다른 컬러로 매치한 재킷 등 위트 있는 스타일도 많다. 품격 있고 세련된 그라시아 거리의 사람이나 밤이면 쏟아져 나오는 인파로 가득 차는 라 람브라 거리의 청춘들이나 밝으며 자유롭고 다양한 자기 표현을 하는 옷차림은 매일반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가우디가 설계, 건축감독을 맡았다. 그의 나이 서른 살 때인 1882년에 공사를 시작해 1926년 6월 죽을 때까지 교회의 일부만 완성하고 나머지 부분은 현재까지도 계속 작업 중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가우디가 설계, 건축감독을 맡았다. 그의 나이 서른 살 때인 1882년에 공사를 시작해 1926년 6월 죽을 때까지 교회의 일부만 완성하고 나머지 부분은 현재까지도 계속 작업 중이다.
라 람블라의 밤은 화려하다. 무언극 배우, 악사, 전위예술가, 가판대, 화사함이 가득한 꽃집, 과일과 수산물이 가득한 거대한 보케리아 시장(Mercat de Boqueria)(특히 시장 뒤쪽 레스토랑에서 먹는 하몽과 멜론 전채요리와 재료에 아낌이 없는 해산물 파에야는 잊지 못할 즐거움이다), 필자가 즐겨 묵는 에스파냐 호텔도 밤이 활기차고 모든 것이 이색적이며 패셔너블하게 다가온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각종 조명들로 연결해서 밝혀놓으니 이 또한 예술적이다. 아르누보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낄 수 있다.

바르셀로나와 이곳의 사람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색상들처럼 너무나 다르고 많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트렌드를 말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방식으로 자신을 표출하는 이런 문화가 자라(Zara), 망고(Mango) 등 전 세계 SPA 시장을 지배한 브랜드들을 낳지 않았나 싶다. 도시를 떠나면서 한 번 더 잠자는 나의 동심을 일깨우는 구엘 공원과 아직도 건축이 진행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돌아보며 바르셀로나 멋과 패션의 중심을 기억한다.


글·사진 이영원 장미라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