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나라는 지난 2012년 6월에 ‘1인당 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 명 이상’을 달성한 나라에 자격이 주어지는 ‘20-50클럽’에 가입했다. 국제사회에서 연소득 2만 달러는 선진국 진입의 기준이며, 인구 5000만은 대국과 소국을 나누는 인구 기준이다.

출산율이 매우 낮은 우리나라가 이렇게 인구가 5000만 명을 넘어선 것은 다문화가정의 증가 덕분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다문화가정 수는 26만여 가구이며, 2020년에는 전체 인구의 5.5%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에 와서 처음으로 다른 민족이 유입된 것일까? 한국인은 어디에서 왔고 우리는 누구인가? 이런 의문은 누구나 한번쯤 가져보았을 것이다. 이러한 물음에 답하는 흥미로운 연구서로서 ‘한국인의 기원’이란 책을 들 수 있다. 서울대 의과대 교수로서 당뇨병의 권위자인 이홍규 교수가 썼다. 이 교수는 당뇨병 환자들을 진료하다가 당뇨병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동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추적하면서 한국인의 기원을 추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토콘드리아 이브

이 책이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의사인 저자가 과학적인 방법으로 한국인의 이동 경로를 추적했다는 데 있다. 1987년에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알란 윌슨이란 사람이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해 “유전학적 증거를 보면 모든 인류의 어머니가 되는 어떤 여성이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나타났고, 그 후손들이 세계 각 지역으로 이주해 모든 현생 인류의 어머니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 가상적인 여인을 ‘미토콘드리아 이브’라고 부른다.

그레고르 멘델(Gregor Mendel)이 완두콩 교배 실험으로 유전의 법칙을 밝힌 뒤 1세기가 지나서 유전학자들은 ‘세포의 핵이 있는 핵산(DNA, deoxyribonucleic acid)’이 유전을 매개하는 물질이라는 증거를 밝혔다.

사람의 몸은 60억 개의 세포로 구성돼 있으며, 유전 정보는 모두 이 세포 속 핵과 미토콘드리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 미토콘드리아에 있는 DNA는 ‘어머니로부터 딸에게만 전해진다’는 것이다. 윌슨은 바로 이 점을 역추적해 ‘미토콘드리아 이브’라는 아프리카 기원설을 탄생시켰다.



바이칼로 가야 한다

이 교수는 DNA 분석 결과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오래전에 아프리카를 떠나 해안을 따라 남부 지역에서 올라온 집단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시베리아를 통해 들어온 집단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결론은 일본인의 조상을 연구한 시노다 겐이치의 결론과 거의 같았다고 한다.

이 책에서 저자인 이 교수는 우리의 선조가 아프리카를 떠나 바이칼호 부근에서 원·몽골리안으로 새롭게 태어났고(북방계 70%), 빙하기가 끝날 무렵 남쪽으로 내려와 남방계 사람(30%)과 섞이면서 요하문명을 만들어 고조선, 고구려, 백제를 건설했으며 신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DNA 분석과 함께 그동안에 연구된 신화와 언어학 등도 고찰해 우리가 쓰는 알타이어의 고향으로 요하문명을 우리 선조의 가까운 고향으로 가정하고 있다. 저자는 책의 끝머리에 이렇게 쓰고 있다. “바이칼로 가야 한다. 요하로 가야 한다. 북방으로 가야 한다. 가서 우리의 흔적을 더 찾아야 한다.”



오래전에 귀화한 다문화 가족

또 하나의 책으로 박기현이 쓴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를 보면 일찍이 ‘한반도를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단군 이래 5000년 동안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과연 맞는 것일까?’라는 물음에 회의를 품으며, 씨족의 뿌리를 밝힌 족보를 통해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 우리 민족은 자랑스러운 ‘잡탕 민족공동체’임을 주장했다. 바이칼에서 내려온 북방민족과 해안선을 따라 먼저 정착한 남방민족이 어우러져 하나의 민족이 된 뒤에도 수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귀화인 중에서 대표적 사례는 다음과 같다. 베트남 망명왕족 화산 이씨 이용상, 흉노족 왕자 경주 김씨 김일제, 인도 아유타의 공주 김해 허씨 허창옥, 원나라 공주를 따라온 위구르 출신 덕수 장씨 장순룡, 이성계의 오른팔 여진족 청해 이씨 이지란, 조선을 사랑한 일본 장수 사성 김해 김씨 김충선, 조선에서 전사한 명나라 장수 소주 가씨 가유약, 조선에 뿌리내린 네덜란드인 파란 눈의 박연 등이다.

중국의 혼란기 즉, 위진남북조 시대, 당나라와 발해, 송나라가 멸망할 때, 임진왜란과 명·청 교체기에 한반도에는 대규모 귀화가 있었다고 한다. 한국 성씨의 46% 정도가 귀화 성씨이며, 인구로 보면 20~50% 정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성씨 275개 중에서 귀화 성씨가 무려 130개가 되며 신라 때 40개, 고려 때 60개, 조선 때 30개 정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귀화인의 역사

한반도 최초의 귀화인은 은나라가 망한 후 고조선에 망명한 기자(箕子)다. 학계에서는 기자조선이 고조선을 대체한 것으로 보지는 않지만, 고조선의 일정 지역을 다스리며 기자조선이라 불린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성씨 중 하나인 청주 한씨의 세보에 따르면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의 후대에 우성, 우평, 우량의 삼형제가 있어 기(奇)씨, 선우(鮮于)씨, 한(韓)씨가 됐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특히 귀화 성씨가 많은 것은 고려시대가 우리 역사상 가장 두드러지게 외부에 개방적이었음을 나타낸다. 고려는 ‘내자불거(來者不拒: 오는 사람은 거절하지 않는다)’라 해서 개방과 포용정책을 썼기에 나라 이름도 코리아(Korea)로 알려지게 됐다.

신라의 처용을 비롯해 남씨의 시조도 원래는 중국인 김씨로서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다가 풍랑을 만나 영덕 축산에 닿아 신라 경덕왕으로부터 남(南)씨 성을 사성 받았고, 수원 백(白)씨의 시조도 당나라 사람으로 신라에 귀화했다. 고려 때에는 쌍기가 귀화해 과거제도를 도입했고, 현풍 곽(郭)씨도 고려 인종 때 귀화한 포산군 곽경을 시조로 하고 있고, 송대의 대도독 하흠이 귀화해 달성 하(夏)씨가 됐다.

필자의 처가인 영양 천(千)씨의 시조도 임진왜란 때 명나라 무장으로 이여송의 휘하에 있으면서 조선에 파견와서 왜적을 무찔러 공을 세우고 청나라에 굴복하기 싫어 조선에 정착해 ‘화산군’에 봉해진 사람이다.

이들 귀화인들은 한반도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우리의 역사를 함께 일구어왔다. 귀화인은 바로 우리의 이웃이요, 우리들이다. 그래서 저자 박기현은 주장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국적과 출신지, 피부색이 다른 다양한 인종의 귀화인들도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 ‘민족=국가’라는 생각은 시대에 뒤떨어진, 빛바래고 경직된 낡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부강한 이유는 민족과 국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지식인과 과학자 등의 다문화인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다문화가정을 편견 없이 따뜻하게 포용해야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다.




전진문 (사)대구독서포럼 운영위원장
일러스트 허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