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 LIFE]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지금 왜 손무의 ‘손자병법’이 생각날까?

최근 들어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북한 등 여러 나라에서 공교롭게도 대통령과 최고지도자가 바뀌면서 국가원수가 상호 방문하며 고도의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보고 있자니 마치 중국 전국시대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듯해 ‘손자병법’이 생각난다.

중국 춘추시대에 태어나 활동하던 손무(孫武·기원전 544년 경~496년 경)가 지은 ‘손자병법’은 초나라와 오나라가 대립할 때 자신을 알아주던 오왕 합려를 섬겨 패자로 만드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병서로 너무나 유명하다.

사마천은 ‘사기’, ‘손자오기열전’에서 손무가 합려를 만날 때 이 병법 13편을 이미 완성했다고 전한다. 필자는 전에 책으로만 읽다가 작년인가 중국 케이블 TV에서 드라마로 방영되는 것을 보고 실감나게 느낀 바 있었다.

‘손자병법’ 13편 6000여 자의 내용은 계(計), 작전(作戰), 모공(謀攻), 형(形), 세(勢), 허실(虛實), 군쟁(軍爭), 구변(九變), 행군(行軍), 지형(地形), 구지(九地), 화공(火攻), 용간(用間) 등이다.

일찍이 조조를 비롯해 무수한 지도자들이 극찬하며 응용한 ‘손자병법’은 오늘에 와서도 많은 영역에서 응용될 수 있는 불멸의 명저라 할 수 있다.



모략으로 적을 제압하라

이 ‘손자병법’ 중에서도 제3편인 모공(謀攻) 편 가운데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는 말이 있다. ‘모략으로 적을 제압하라’는 의미로 모공 편에는 다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여섯 가지 단계를 기술하고 있다.

첫째, 싸우지 말고 이겨라.
둘째, 성을 공격하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이다.
셋째, 용병의 몇 가지 원칙.
넷째, 군주가 장수의 일에 관여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다섯째, 승리를 알아채는 다섯 가지 방법.
여섯째,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태다.


‘손자병법’ 13편 중에서 손무의 평화 철학이 가장 잘 반영된 이 모공 편은 오늘에 와서도 가장 널리 적용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생각된다.

모공 편의 첫 번째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즉, 싸워서 국가를 파괴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승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는 차선책이고, 싸우지 않고 ‘나라를 온전히 하여 이기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이다(凡用之法 全國爲上 破國次之).

손무의 철학은 국가와 국가 간에는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툼이 없을 수 없지만 ‘싸우지 않고 해결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라는 기본적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다음의 전략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나라를 온전히 하면서 이기려면, 최상책의 용병은 적의 계략을 공격(伐謀)해 상대 국가로 하여금 아예 전쟁할 생각을 없애버리는 것이고, 그다음은 적의 외교관계를 공격(伐交)해 주변 국가와의 관계에서 압도해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며, 그다음으로 이런 평화적인 방법이 도저히 통하지 않을 때 취할 수 있는 하책이 군대를 공격(伐兵)하는 것이고, 성을 공격하는 것(攻城)이 최하의 전략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증강하고 국가 기강을 바로잡으며 외교력을 강화해 적국으로 하여금 아예 전쟁할 생각을 못 가지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이란 것이다.



상대의 군사력에 따라 전법이 다르고, 군주는 장수에게 맡겨야 한다

모공 편의 세 번째 내용은 적군과 아군의 군사력의 상대적 정도에 따라 채택해야 할 전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즉, 아군의 군사력이 적의 열 배가 되면 포위하는 것이 유리하고(十則圍之), 다섯 배가 되면 공격하며(五則攻之), 두 배가 되면 적을 분산시키는 것(倍則分之)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비슷하면 싸울 수 있고(敵則能戰之), 군사 수가 적으면 달아나며(少則能逃之), 그렇지 않으면 피해야 한다(不若則能避之). 그러므로 작은 군사력으로 굳게 수비만 하면(故小敵之堅), 강대한 적의 포로가 된다(大敵之擒也).

네 번째는 최고책임자인 군주가 장수의 일에 너무 세세히 관여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를 말하고 있다. 즉 첫째는, 군주가 군대의 진퇴 상황을 잘 모르면서 진군이나 후퇴를 명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군주가 삼군(모든 군대)의 사정을 잘 모르면서 삼군의 군정에 참여하면 군사들이 미혹되니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군주가 삼군의 권한을 알지 못하면서 삼군의 직책을 맡으려고 한다면 군사들이 회의를 품게 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군주는 구체적인 전쟁의 내용은 장수에게 믿고 맡기고 본인은 최고책임자로서 큰 방향만 잡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겠다.

다섯 번째는 승리를 알아차리는 방법으로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싸워야 할 때와 싸우지 않아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은 승리할 수 있다. 둘째, 병력이 많고 적음에 따라 용병법을 아는 자는 승리한다. 셋째, 위의 장수와 아래의 병사가 한마음으로 하고자 하면 승리한다. 넷째, 준비하고 있으면서 준비하지 못한 적을 기다리는 자는 승리한다. 다섯째, 장수가 유능하고 군주가 조종하려 들지 않으면 승리한다.

이것은 앞에서 구체적으로 열거한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

여섯 번째는 모공 편의 결론을 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다음과 같은 한 마디로 정리하고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는 것이다.

여기서 ‘적을 알고 나를 아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작건 크건 하나의 조직을 책임져 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먼저 우리 조직의 현재 상태와 전력을 냉정하게 알고, 다음으로 상대편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는 정보력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

자신의 상태와 병력이나 조건을 과대평가해 이를 믿고 기고만장한다든가, 상대방을 과소평가해 깔보거나 자만하는 태도를 갖는다든가,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상대방을 과대평가해 겁먹고 위축된다든가 하는 것은 모두 옳은 지피지기가 아니다.

정신 똑바로 박힌 지도자들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올바른 판단을 할 때만 나라를 위태롭지 않은 반석 위에 놓을 수 있고 전쟁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우리나라의 현 상황과 국력, 군사력을 냉정하게 알자. 그리고 우리 주변 국가인 미국의 궁극의 의도, 일본의 능력과 욕심, 중국의 입장과 세력, 러시아의 상황과 능력, 북한의 실정과 전력 등을 냉정히 파악할 수 있는 정보력을 바탕으로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외교력으로 최선을 다해야 비로소 우리나라의 평화가 아슬아슬하게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다소 시간이 걸릴 수도 있으므로 참고 기다리며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결과를 도출해야겠다.




전진문 (사)대구독서포럼 운영위원장
일러스트 허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