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공발전소 ‘노력 금지’

노력해도 될까 말까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노력 금지’라니, 이런 도발이 또 있을까. 헌데 ‘노력 금지’를 슬로건으로 내건 놀공발전소가 몸소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으니, 이쯤에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노력 금지’ 네 글자 안에 숨겨진 얘기들, 지금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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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호기 ‘통찰력’ 담당 박은현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새로운 세상에서 유영하던 때 한국에서 피터공과 대학 선후배들이 뭔가 재미있는 일을 꾸미고 있다는 풍문을 들었다. 귀국 후 놀공을 찾아가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했고, 이름이 없는 것을 만든다는 피터공의 마력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놀공의 핵심 멤버가 됐다.


1호기 ‘잠재력’ 담당 피터공
뉴욕의 게임회사 최고경영자(CEO)로 겉보기에 잘나가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회사 운영에 발목이 잡혀 디자이너로서 느꼈던 재미와 보람이 사라지고 말았다. 설레는 일을 찾아 한국으로 돌아왔고, 놀이의 즐거움과 ‘노력 금지’ 정신을 목청껏 외치며 놀공발전소를 세웠다.


3호기 ‘관찰력’ 담당 안지인
피터공의 수업을 듣는 학생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로 진화했다. 그저 열심히 과제를 했을 뿐인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놀공 역사의 산증인이 돼 있었다. 이제는 놀공에서 보낸 20대를 ‘우리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나는 여정’이었노라고 말할 만큼 득도에도 성공했다.


8호기 ‘추진력’ 담당 임애련
대기업 교육 담당자로 오랫동안 근무했다. 40대에는 나만의 사업을 하겠노라 결심하고 첫걸음을 내디뎠을 무렵, 우연히 같은 건물 2층에서 고군분투하는 피터공을 만났다. 교육을 놀이로 접근하는 모습에 그야말로 홀딱 넘어가 1년 후 사업을 정리하고 놀공에 합류했다.



놀공발전소(이하 놀공)가 이겼다. ‘노력 금지’ 타이틀 앞에 달린 부제가 ‘재밌는 게 이기는 거다!’이니 하는 소리다. 일차원적으로 평하자면 재밌다. 형식에 전혀 얽매이지 않은 편집도 신선하고, 그 안에 담긴 콘텐츠는 그야말로 펄떡펄떡 살아 숨 쉰다. 생각해보면 놀공이라는 기업의 히스토리이자 ‘소개서’ 같은 개념인데 이렇게 재밌을 수 있나. 이유는 간단하다. 놀공 자체가 재밌기 때문이다. 탄생 배경도, 모인 사람들도, 지금껏 해왔고 현재 진행 중인 일들도 어느 것 하나 재밌지 않은 게 없다. 당연하다. ‘노력 금지’를 내세우며 회의 대신 ‘놀 궁리’를 하고, 직급 대신 ‘능력’이 부여된 조직원들이 함께 이름 지어지지 않은 것들을 만들어내는 ‘놀력’ 충만한 집단이니까.

자, 그런데 놀공 자체가 생소하니 설명이 필요한 순간이다. 오해할까 봐 미리 해두는 말인데, 놀공에서 말하는 ‘노력’과 ‘재미’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것과는 색깔이 조금 다르다. 이에 대해서는 차차 설명하기로 하고, 그러니까 놀공은 한마디로 놀이와 교육이라는 개념을 조합해 새로운 경험을 창조하는 에듀테인먼트 기업이다. 강당에 모여 앉아 일방적으로 주입받는 교육이 아니라 목적에 맞게 개발된 게임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교육인 것이다. 게임이 시작된 순간부터 끝까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니 효과 백배. 놀공은 그걸 ‘빅게임’이라 지칭한다. 많은 사람이 큰 공간에서 하는 게임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또 하나는 경험의 확장을 뜻한다. 이쯤 해도 잘 모르겠다면 ‘런닝맨’을 상상하시길. 수단은 엔터테인먼트이되 목적은 에듀테인먼트인 ‘런닝맨’을.


‘노력’과 ‘재미’에 대한 새로운 정의
놀공의 중심에는 대표이자 ‘잠재력’을 담당하고 있는 피터 리가 있다. 미국 뉴욕에서 20년간 게임회사와 전 세계 최초의 게임 공립학교인 ‘퀘스트 투 런(Quest to learn·Q2L) 설립에 참여하며 ‘게임 & 러닝(game & learning)’을 지향해온 그는 2010년 서울 합정동에 ‘놀공발전소’를 열었다. 게임의 부정적 측면이 아닌, 전략적 사고와 흥미 유발을 통한 자발적 참여 등을 활용한 커리큘럼으로 일반 학교의 정규 교과 내용을 가르치는 Q2L의 성공적 오픈을 지켜본 그가 ‘학교 설립’을 목표로 귀국한 터였다. 놀듯이 공부한다는 뜻으로 이름을 ‘놀공’이라 한 것도 그런 이유다.

창업한 지 갓 3년을 넘긴 지금까지 놀공이 이룬 역사는 작지만 큰 의미가 있다. 유니셰프와 함께 게임을 통해 기아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구호 게임’을 진행했고, 역시 게임을 통해 많은 기업들의 직원 연수 등을 하고 있으며, 조지 오웰의 ‘1984’에서 괴테의 ‘파우스트’까지 고전과 게임을 접목한 ‘놀공클래식’을 개발해 전파하고 있다. ‘세상을 변화시킨다’와 ‘이름 지어지지 않은 것을 만든다’는 놀공의 목표는 그렇게 진행 중이다.


‘노력 금지’라는 제목이 강렬합니다. 세대별로 반응이 다를 것 같아요.
“우리 회사의 슬로건이 그대로 제목이 됐는데, 우리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기 위해 어떻게 움직여가고 있는지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력 금지’에 대해 젊은 층들은 재밌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이런 방향성에 대해 동감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그동안 ‘미쳐라’, ‘독해져라’, ‘이겨라’ 등 독한 이야기만 듣다가 새로운 거죠. 반면 평생 노력하며 살아온 어르신들에겐 자기 삶의 부정과 같은 메시지이니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듯해요. 그런데 ‘노력 금지’라는 게 열심히 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지 않은데 인위적으로 하려는 것들을 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왜 소개팅에 나갈 때 너무 꾸미고 나가면 친구들이 ‘노력한 것 같다’고 하잖아요. ‘그건 너답지 않다’ 즉, 어색하다는 표현인 거죠. 결국 자신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것, 누구처럼 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 자기중심으로 하면 힘들더라도 ‘노력’이 아니라 ‘재미’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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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재미’도 일반적인 정의와 좀 다르지 않나요.

“맞습니다. 그냥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는 즐거움과는 다른 개념이죠. 나에게 의미 있는 경험, 의미 있는 활동을 말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는 밤을 샐 수 있잖아요. 다만 내가 이걸 왜 하는지 맥락(context)을 알아야 해요. 거창하지 않아도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맥락이 있고 목적이 있으면 작은 거라도 동기부여가 되고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겁니다. 내가 생각했을 때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 중요해요. 일상생활에선 내 행동에 대해 피드백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재미를 모르는 거예요. 그런데 게임은 다르죠. ‘중독’이라는 나쁜 표현도 쓰지만, 게임에서는 내 행동에 대해 특히 잘하고 있을 때 피드백을 주기 때문에 재밌는 겁니다. 하다못해 고스톱을 치더라도 그렇죠. 일이, 공부가 재밌어진다는 건 그런 차원입니다.”


피드백이 있어야 재미있다? 설명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사실 지금까지는 어떤 일을 할 때 경쟁 아니면 리워드(보상)라는 동기만 있었어요. 그런데 리워드는 과정보다 결과의 중요성만 부각된다는 점에서 위험하고, 경쟁은 확실하고 구체적인 피드백이기는 하지만 승리자 중심의 경험만 부각된다는 점에서 나머지 많은 사람들을 재미없고 떨어져 나가게 만들어요. 그게 교육이든 문화든 건강하지 않은 거죠. 스포츠를 예로 들어볼까요. 스포츠를 보는 목적이 ‘결과’라면 볼 이유가 없죠. 결국 재미란 기본적으로 과정에 있는 겁니다. 게임 용어로는 ‘코어 메카닉(게임 세계의 작동 방식을 규정하는 규칙)’이라고 하는데, 매순간 플레이어가 무엇을 하는가가 제일 중요한 거죠. 그 어떤 것보다도 지금 순간의 선택과 그로 인한 피드백이 최고의 동기가 되는 셈이에요. 우리의 두 가지 목표가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과 이름 지어지지 않은 걸 만든다는 것인데, 후자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차원이라면 전자는 각자가 자신의 피드백, 즉 어디에 반응하는지를 알게 되고 나름의 의미 있는 선택을 함으로써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결국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라는 믿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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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놀공스러운’ 새로운 방법론을 통해 많은 변화를 이끌지 않았나요.
“이제 조금씩 결과들이 나오고 있어요. 막연했던 것들에 대해 ‘아, 이런 거구나’ 하고 이해해주기 시작한 것 같아요. 처음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다가 2년 전부터는 기업 대상 교육을 많이 하고 있어요. 우리의 방식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왜 하나요?’, ‘사람들이 할까요?’인데 다들 합니다. 그것도 너무나 즐겁게. 놀공을 경험해본 기업 담당자들은 교육생들이 이렇게 흥겹게 몰입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아요. 우리가 만드는 교육 프로그램은 시장 같아요. 정신없어 보이지만 각자는 엄청나게 몰입하고 있죠. 교육이 조용히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이내믹한 환경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강사 중심 교육은 레벨이 달라도 한 가지 방식으로만 진행되지만, 각자 다르게 하면 서로서로가 멘토가 되고 멘티가 돼 모두에게 효과적이니까요. 놀공식 교육이 진행되면서 다른 강의에서도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것도 주목할 만해요. 게임을 통해 맥락이 생긴 거죠.”


언제든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젊음
‘학교 설립’에서 기업 교육으로 방향이 약간 수정된 건 어른들의 변화가 먼저라는 판단에서였다. 문화적 차이였다. 미국에서는 게임 학교 하나가 갖는 상징적 의미가 컸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상징성보다는 실제적 교육의 변화가 수반돼야 했다. 현실적으로 학교 하나 설립한다고 해도 입시제도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어른들이 바뀌어야 한다,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서는 ‘게임 & 러닝’이 쉽지 않죠.
“처음에 다들 그랬어요. 정말 한국에서 되겠느냐고. 설명이 필요 없겠구나, 직접 경험하게 해주자고 해서 유니세프와 함께 한 구호게임을 비롯해 여러 가지를 시도했죠. 그 과정에서 기업들이 우리를 찾아왔는데, 결과적으로 기업 대상 교육을 하면서 긍정적인 부분을 많이 봤어요.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면서 교육이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게 첫 번째죠. 지속 가능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의미가 없잖아요. 우린 절대로 돈 벌지 말자가 아니에요. 좋은 일을 할 때 누군가의 후원으로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지속적으로 이끌어갈 수가 없어요. 또 하나는 20대부터 60대 이상 임원들까지 참여하다 보니 거의 모든 연령대와 소통하고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됐다는 점이에요. 문화적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반응하는 게 같다는 걸 확인했으니, 그걸 통해 우린 역으로 공교육이나 학교 쪽으로 들어가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사교육 시장에 들어가는 건 아니고 제도적 한계 안에서 우리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게임 & 러닝’을 표방한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긴 해요.
“우리가 생각한 ‘게임 & 러닝’은 아니에요. 우린 활동 자체가 즐거운 걸 하자는 것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눈앞에 목적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시간을 두고 해야 하는 부분이죠. 지난해에 모바일을 접목시킨 교육을 시작했는데, 300명 정도가 동시에 진행하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 의미 있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는 점에서 교육의 확장성을 확인하고 있어요. 그중 하나가 ‘놀공클래식’이에요. 2년 전 조지 오웰의 ‘1984’로 시작할 때 ‘아직 아닌 것 같다’는 반응이었는데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로 가면서 ‘좋다’라는 수준까지 발전했죠. 네 번째 프로그램인 괴테의 ‘파우스트’는 독일문화원의 눈에 띄어 글로벌 프로젝트로 진행 중이고요. 처음엔 우리끼리 인문학을 이야기했는데 결국 스케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겁니다. 지금은 변화가 많은 시대예요. 아는 걸 하는 게 오히려 위험해요. 모르는 걸 시도하는 게 경쟁도 피해갈 수 있죠.”


책에 언급된 것처럼 ‘판을 만들라’는 의미인가요.
“그렇죠. 대부분 남들이 만들어주길 원해요. 그럼 편하죠. 하지만 지속적으로 길게 하려면 스스로 판을 만들어야 해요. 물론 창업을 하란 얘기가 아닙니다. 스스로 뭔가 하고 싶을 때, 그걸 할 수 있는 환경까지 만들 수 있다는, 그만큼 강렬하게 원한다고 느끼는 게 중요한 거죠. 판을 만들 수 있다면 오히려 지금은 기회가 많은 시대죠. 변화가 많으니까요. 게다가 한국은 아직도 안 한 일이 많으니 자기 영역을 개척하기 쉽죠.”


젊은 층은 모르겠지만 나이 드신 분들에겐 남의 얘기처럼 들릴 것도 같아요.
“나이와 상관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한 겁니다. 저도 40대지만 죽을 때까지 뭔가 시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게 젊음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게 미국에서 사업을 10년 정도 했는데 9·11테러가 터졌어요. 사무실이 그 근처여서 6개월간 사무실에 못 갔죠. 그 후로도 한참 너무 힘들었는데 그때 생각한 게 내가 잘못한 게 아니어도, 그리고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도 얼마든지 생긴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니 긴 인생을 살면서 완벽히 준비하고 이제 됐다 하는 것보다 언제나 늘 시작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놀공’의 궁극적 지향점은 어딥니까.
“게임은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이에요. 게임 하면 성격 나온다고 하잖아요. ‘나는 이렇게 행동해야 해’가 깨어지게 만드는 것, 그게 게임이죠. 따라서 놀이를 하면 내 기본 틀을 열어 다른 사람과 만날 수 있게 해줍니다. 그 안에서 나를 다시 돌아보고 나를 알 수 있게 해주죠. 우린 우리가 만든 게임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알게 되고 그래서 다양한 직업을 갖게 되고, 다양성을 인정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다양성이란 건 모두 다른 일을 해야 한다가 아니라, 누군가 다른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하게 놔두는 것입니다. 놀공이 그 대표적인 예죠. 우리와의 경험을 통해 크건 작건 새로운 시도들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말이죠. 놀공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바로 그겁니다. 충분히 재밌으면서도 밥벌이 할 수 있다는 것 말이죠.”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