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도 멘토링도 다‘사기’, 의지대로 살라”
만화가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이름, 바로 우리나라 만화계의 전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현세 작가다.‘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아마게돈’, ‘버디’, ‘천국의 신화’ 등 숱한 히트작을 내놓으며 늘 화제에 올랐던 그답게 생애 처음 내놓은 에세이집 또한 관심이 뜨겁다. 그림 하나 없지만 이현세 특유의 강렬함은 그대로이니, 돌직구도 이런 돌직구가 없다. 간단히 말해 온 사회가 열광하고 있는 ‘힐링’에 대한 반기다. 힘들어하는 청춘들에게 모두가 아파도 괜찮다고, 위로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정면 반박이랄까. 절대로 괜찮지 않다고, 그런 식으로 해선 인생에서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고 강력한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건 전적으로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이다. 그렇다. ‘인생이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토네이도)라는 이 굵고 짧은 한 줄의 명제에는 이현세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작가의 삶은 고난과 시련, 그리고 투쟁과 극복의 역사였다. 연좌제로 인한 굴곡진 가족사와 그로 인해 꿈조차 마음껏 꿀 수 없었던 시절, 미대 입시를 준비하다 색약 판정으로 좌절된 후 금기시됐던 만화가의 길로 접어든 사연 등 결코 평탄치 않았다. 만화가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와중 ‘천국의 신화’로 음란물 시비에 휘말려 6년간의 싸움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아냈고, 2년 전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는 등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고비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60을 앞둔 나이에 벌써 죽음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할 정도로 “늘 죽음이 가까이에 있었다”고 고백하는 이 작가를 끌어온 힘은 오로지 하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었다. 허니 아무도 믿지 말라고, 멘토링도 힐링도 결국은 다 ‘사기’라며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하고 밀어붙이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라는 돌직구를 날릴 자격 충분하지 않은가.
만화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로 주목을 받는 기분은 또 어떻습니까.
“누구나 자기 경험은 특별하게 느끼는 법인데 과연 내 이야기와 생각이 울림이 있을까,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책을 냈어요. 욕이나 진탕 먹는 건 아닌지 불안감도 있었지요. 완전 새로운 글들은 아니고 신문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썼던 글들이 토대가 되긴 했지만, 단편적인 이야기를 싣는 것과 개인사를 모두 내놓는 건 다른 일이니까요. 관심들을 가져주니 약간은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이번 책이 개인적으로도 삶을 돌아보는 기회가 됐을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내가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 왔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 기회가 되기도 했고, 또 하나는 앞으로의 갈 길에 대해 자기 다짐을 받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겠다고 했으니 이제 지켜야 할 책임감이 생긴 거죠.”
‘청춘들을 위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데, 힐링이나 위로가 아닌 돌직구 스타일이란 점에서 기존 책들과는 좀 다릅니다. 독자 입장에선 불편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런 생각을 분명 했어요. 제가 젊었을 때를 돌아봐도 그랬거든요. 윗세대들이 ‘나는 이렇게 살았어. 너네 정도면 꽤 괜찮은 거야’라고 말하는 걸 정말 싫어했어요. 각 시대의 상대적 가치가 있는데 절대적 가치를 들고 들어오면 반발심이 들었죠. 그런데 저 같은 돌직구도 필요하다고 생각한 게 지금 온 사회가 너무 ‘힐링’에 집착하고 있다는 겁니다. 청춘들을 진짜 위한다면 치료가 필요하기 전에 미리 예방책을 알려 줘야 하지 않겠어요. 방치했다가 아프다고 하면 ‘괜찮다. 앞으로 기회가 있을 거야’라고 위로하는 게 무슨 소용입니까. 그런 식으론 어떤 것도 이룰 수 없어요. 절대로 괜찮지가 않은 겁니다.”
방식은 다르지만 어쨌거나 청춘들에게 메시지가 필요하다는 점이 이 시대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아닌가요.
“그런 측면이 있죠. 지금의 기득권인 50~60대는 유사 이래 젊은 세대가 만나 본 적 없는 가장 강력한 세대예요. 공부도 많이 했고 가진 것도 많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다 경험하며 자식에게 기대지 않겠다는 자립심도 강한 세대들이죠. 또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사회와 부를 만들었다는 자부심도 강합니다. 제가 젊었을 때 우리 아버지들은 자녀들이 대학에 가고 직장에 들어가면 ‘내가 뭘 알아. 니들이 알아서 해’ 하면서 의존하는 성향을 보였어요. 그런데 지금의 50~60대는 ‘니들이 뭘 알아. 아직 멀었어’라고 반응해요. 제가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건 아니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를 만든 50~60대 중 한 명이라는 점에서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육 제도나 사회적 시스템을 바꿔 줄 순 없는 일이잖아요. 그러니 이처럼 강력한 기득권을 상대로 20~30대가 전쟁을 하려면 괜찮다는 위로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거기 머물면 절대로 성장할 수 없어요.” 책 속에서는 ‘자신을 믿어라. 확신을 가져라’라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하고 있는데 문제는 그 믿음이나 확신을 갖는 방법조차 확신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근거 없는 확신이라도 자기 자신을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는 게 없어요. 사회적 시스템? 멘토링? 다 믿을 게 못 됩니다. 결국 판단도 자신이 하고 책임도 자신이 지는 거예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담하면서 가장 황당할 때가 ‘제가 만화가가 될 수 있을까요. 행복할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을 받을 때입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 답을 알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신밖에 없어요. 그럼 제가 반문합니다. ‘만화를 좋아하느냐. 미치게 좋아하는 거냐’고. 살면서 미치도록 만화를 좋아하고 잘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진 아이들이 만화가가 되지 못한 경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돈을 많이 버는 작가가 되느냐, 작가주의 정신을 가진 작가가 되느냐의 문제를 떠나 일단 작가가 되는 목표는 이루더라는 겁니다.”
“50대 여전히 인생 여행 중, 야성의 DNA 잃지 마라”
이렇듯 젊은이들에 대한 애정 어린 외침에는 세종대 애니메이션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하며 매일 이 시대 청춘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배경이 존재한다. 그러나 자신을 믿고 가는 일이 어디 청춘의 삶에만 해당되는 일일까. 20~30대를 넘어 중장년 독자의 눈에 들어와 박히는 ‘인생이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라는 한 줄 제목은 때론 두렵고 때론 외롭게 다가온다.
세대별로 느끼는 바가 다를 것 같습니다.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는 분명 다르게 느낄 겁니다. 사회에 나오기 전인 학생들은 무섭겠죠. 괜찮다고 포용을 해 줘야 나갈 수 있을 텐데 자신만 믿으라 하니 그만큼 살벌한 말이 없죠. 하지만 제가 볼 땐 그게 인생이에요. 삶이란 결코 행복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아요. 수없이 많은 험난함이 펼쳐지죠. 그러니 자기 의지대로 사는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는 겁니다. 태어날 때의 운명은 피해 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물론 운명의 벽을 눕혀서 밟고 지나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태어났을 때 주어진 그 패를 던져 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반대로 나이 든 세대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겠죠.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가, 종속적인 삶을 살았던가 하고 말입니다. 물론 주체적인 삶이 꼭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종속적 삶이 꼭 불행하란 법도 없어요. 다만 주체적이든 종속적이든 내 몸과 정신이 요구하는 대로 선택해 살아 왔다면 그걸로 된 거예요. 그 선택권을 남에게 맡기지 말라는 게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그건 세대를 막론한 겁니다. 야성의 DNA만 잃지 않는다면 40에도 50에도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거예요. 죽을 때까지 끝도 없이 도전하는 게 인생이잖아요.”
지금 작가님의 삶은 어느 지점쯤입니까.
“여전히 여행 중이고 걷는 중이죠. 종착지가 어딘지는 알 수 없고요. 저 또한 정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중이기 때문에 청춘들에게 고언도 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러니 이런 말을 해도 좀 덜 밉지 않겠어요.(웃음)”
올여름 40~50대 남성들의 로망을 다룬 웹툰을 연재할 계획이시죠.
“지난해까지만 해도 절대 웹툰을 하지 않겠다는 게 기본 생각이었는데, 창작 만화를 하려니 매체의 한계를 절감하겠더군요. 학습 만화나 정보 만화는 웹툰이 아니고도 방법이 있는데 창작 만화는 포털사이트만큼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매체가 없는 게 현실이잖습니까. 이미 선택을 했으니 연출이나 시스템을 연구해 최선을 다하는 일만 남았지요.”
보다 장기적인 계획이 있다면요.
“마지막 목표는 동화를 그리는 겁니다. 제가 새로 동화를 만든다는 생각보다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동화들을 가지고 손자 손녀에게 읽히고 싶은 동화를 그리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아직 형식에 대해선 구체적이지 않아요. 이 계획이 어떻게 실현될지 모르겠지만, 항상 그래왔듯이 의지대로 살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또 하나, 죽음 앞에 담담할 수 있기를 바라지요.”
죽음을 논하기엔 너무 젊은 나이 아니신가요.
“죽음이란 육체의 죽음뿐만 아니라 정신의 죽음, 삶의 죽음 등 다양하잖아요. 우린 삶에 대해선 집요하리만큼 교육을 받는데 죽음에 대해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아요. 하지만 죽음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저는 평생 죽음 앞에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 왔는데, 2년 전 위암 수술을 받을 땐 순간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평생 죽음이 늘 가까이에 있었어요. 건강에 위험 신호가 오면서 삶의 기조가 바뀌었는데 아프기 전엔 극단적 낙천주의자였고 이후엔 극단적 부정주의자가 됐어요. 오늘 하루를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죠.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고요.”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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